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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외출을 할 일이 있어서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동네 슈퍼에서 종이 상자 하나를 구해 들고 오셨다. 적당한 크기의 그 종이 상자를 어머니가 우리 집 문 앞에다 놓는 것을 보며 나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 우체국과 군청에 있는 농협출장소를 들르고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갈고 두 시간쯤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집에 들어가면서 문 앞의 벽에 기대어져 있는 종이 상자 안을 보니 고양이 두 놈, 다정한 오누이가 들어가 앉아 있었다. 종이 상자 바로 옆에 작은 플라스틱 물통이 있어서 그것을 밟고 종이 상자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두 놈 오누이는 정말 다정한 모습이었다. 내가 얼굴을 바짝 내리고 들여다보는데도,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수놈조차도 종이 상자 안에서 몸을 빼지 않았다. 아침에 밥을 줄 때 어찌하나 보려고 밥 냄비를 들고 잠시 서 있어 보면 가장 열심히 야옹 소리로 재촉을 하는 녀석이었다. 밥을 먹지 않을 때도 내가 손을 뻗으면 앞발로 내 손을 두어 번 톡톡 치고 뒷걸음을 칠 뿐 노란 털이 섞인 암코양이나 한배 새끼가 아닌 다른 수놈처럼 획 달아나지는 않는 녀석이었다.

남산 사돈댁에 이 녀석을 갖다 주는 것이 훨씬 용이하지 않을까? 나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고양이를 잡아 상자 안에 넣는 수고를 생략할 수도 있고, 나와의 친숙성이 그 겁쟁이 암놈보다 앞서니 사돈댁에 도착해서 놈을 넘겨주는 과정도 좀더 순조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마음을 정하고 얼른 종이 상자의 덮개를 덮었다. 한 손으로 덮개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초인종을 눌러 집안의 어머니께 도움을 청했다. 어머니가 갖다 주신 스카치 테이프로 종이 상자의 덮개를 손쉽게 밀착시켰다.

그리고 나는 종이 상자를 내 승합차에 실었다. 집에 들어가서 남산리 사돈댁에 전화를 걸어 지금 고양이를 가지고 간다고 하니, 좀 전에 사위 차로 집에 돌아가 계신 안사돈 님은 반색을 했다.

나는 10리밖에 있는 남산리 사돈댁을 향해 차를 몰았다. 종이 상자 안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 다정한 오누이가 함께 들어 있지만, 나는 수놈만을 꺼내 넘겨주고 장애 암코양이는 다시 데려올 생각이었다. 심각한 장애를 지닌 고양이까지 줄 수는 없는 일이고, 그 놈은 내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녀석이었다.

마음속에 갈등과 섭섭함이 없지 않았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는 그 수놈을 보지 못하는 것이 섭섭할 것 같았다. 한배 새끼들 중에서도 특히 다정한 오누이를 분리시키는 것이니, 녀석은 물론이고 장애 암코양이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녀석이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잘 적응해 줄지 의문과 걱정도 없지 않았지만, 남산리 사돈댁에서 녀석을 잘 보살펴 줄 거라는 생각이며 분양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정말 잘된 일일 거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안했다.

나는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낮에 거실에서 한창 작업을 하는데, 현관에서 고양이의 이상한 비명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아직 채 자라지도 않은 수놈이 장애 암코양이의 머리털을 물고 몸을 덮치고는 수컷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이 다 자라지는 않았지만 지금 사춘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제 누이를 괴롭히면서 수컷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직 발정이 먼 장애 암코양이는 영문을 모르는 채 뒷머리를 물린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본능적으로 뭔가를 알고 오라비의 수컷 연습을 감수해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 순간 고양이들의 방만한 번식을 걱정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며, 근친 교배를 차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것의 구체적인 행동까지야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하여튼 막연하게나마 그런 생각이 내 뇌리에 집혀든 것이었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다정한 오누이 고양이들의 분리가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야생 고양이들의 방만한 번식을 적절히 통제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밥을 주고 있는 놈들 가운데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근친 교배만큼은 사전에 차단을 하게 되는 셈이라고 생각하니, 좀더 위안이 되는 것도 같았다.

이윽고 나는 남산리 사돈댁에 도착했다. 야산 언덕 아래 띄엄띄엄 세 집이 있는데, 맨 아랫집이 사돈댁이었다. 사돈댁을 제외한 두 집은 육식용 개들을 기르고 있는데, 가운데 집에 특히 개들이 많은 것 같았다. 낯선 차량을 본 그 집의 개들이 궤짝 안에서도 시끄럽게 짓고 있었다.

나는 사돈댁에는 개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차안에서 상자를 내렸다. 마중을 나오셨던 안사돈 님이 집 앞의 비닐 하우스로 나를 안내했다. 그 비닐 하우스에는 문이 없었다. 문이 없는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서 상자를 내려놓은 나는, 그때 좀더 신중했어야 했다.

생각하면 내가 너무 경솔했다. 그리고 너무 우둔했다. 사람들의 좋은 마음을 알 리 없는 고양이들에게 너무 큰 것을 기대했다. 고양이들이 나를 믿고 내 뜻에 고분고분 따라주기를 바랐고, 또 그러리라고 믿은 건지도 몰랐다.

두 내외만 살고 계시는 사돈댁에는 빈방들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헛간으로 쓰는 방으로라도 들어가서 방문을 닫아놓고 종이 상자를 열었어야 했는데….

안사돈 님은 빈 푸대를 들고 있었다. 일단 그 푸대 속에 고양이를 집어넣었다가 바깥사돈 님으로 하여금 고양이를 고리로 매놓게 하겠다는 말씀이었다. 서로 친숙해질 때까지는 고양이를 묶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었는데, 나는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일단 고양이를 꺼내고 보자고 생각하며 종이 상자를 열었다.

그 순간 종이 상자 안에서 펄쩍 뛰어나온 수놈 고양이는 순식간에 비닐 하우스 안을 나가더니 잽싸게 내가 온 방향으로 마구 달아나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나는 깜짝 놀라며 얼른 종이 상자의 덮개 하나를 마저 닫았다. 장애 암코양이도 종이 상자의 덮개를 비집고 뛰어나오려는 실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장애 암코양이가 한번 동작으로 뛰어나오지 못한 것은 상자의 덮개들이 모두 열려져 있지 않은 데다가 뒷발 하나의 장애 때문이기도 할 터였다. 그 순간 나는 참으로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애 암코양이가 뛰어나가려는 것을 순간적으로 막은 것은, 정말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장애 암코양이까지 잃었다면 내 상심은 참으로 컸을 것이다.

수놈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종적도 없었다. 집에서 나오며 그 광경을 보신 바깥사돈 님은 달아난 고양이가 '가뭇이 없다'는 표현을 했다. 흔적도 없다는 뜻이었다.

사돈 내외분은 내게 몹시 미안한 표정이었다. 저 언덕 바로 아래 끄트머리 집에 구이(고양이)가 있으니 달아난 놈이 그 집에 나타날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나는 나중에라도 배고픈 고양이가 밥을 얻어먹으려고 집 근처로 다시 올지 모르니 고양이 소리가 나나 바짝 신경 좀 써 주시고 고양이를 보게 되면 연락을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는 맥없이 그곳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차를 돌려서 그곳을 떠나오려니 가운데 집 궤짝 속의 모든 개들이 참으로 요란스럽게 짖었다. 그 개 짖는 소리 때문에도 그 수놈 고양이는 한없이 멀리로 정신없이 달아났을 것만 같았다.

장애 암코양이마저 잃을 뻔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수습하여 장애 암코양이만이라도 다시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 다시 한번 정말 다행스런 가운데서도 수놈 고양이를 그런 식으로 '버리고' 가는 것이 한없이 마음 무거웠다. 그 수놈 고양이가 정신을 차리고 개들이 없는 유일한 집인 사돈댁에 언제라도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서 상자를 내려 들고 현관 안으로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상자 덮개를 여니 장애 암코양이 녀석이 납작 엎드려 있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손으로 들어내 놓으니 몇 번 빠른 걸음을 했던 녀석은 곧 제가 살던 낯익은 곳임을 알아차리고 발을 멈추며 야옹 소리를 질렀다. 내게 고맙다는 뜻인 것도 같았다.

나는 너무도 심란하여 저녁 밥술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저녁에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내고 레지오 모임을 하는 동안에도 분심 속에서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다. 그리고 밤에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상심을 안 아내가 나를 위로했다.
"별 일 없을 거예요. 집에서 기른 고양이가 아니잖아요. 사람에게 밥만 얻어먹으면서 쭉 밖에서 산 고양이니까 제 나름대로 헤쳐 나갈 거예요. 야생 고양이가 완전히 야생으로 돌아간 셈 쳐요."

하지만 나는 아내의 위로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몸피야 다 자랐지만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는 그 녀석이 그 낯모르는 황야 같은 곳에서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고 이 밤을 견딜지, 앞으로 그 녀석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정말로 걱정이 되고 내 상심이 커지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어머니가 색다른 제안을 했다. 그 수놈 고양이가 그렇게 걱정되고 안 됐다 싶으면 건강한 또 한 마리 암놈 고양이도 그곳에 가져다가 방출을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하면 혹시 두 놈이 만나 가지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 갈 것 아니냐는 말씀이었다.

그럴 듯하게 느껴져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에는 그저 그 수놈 고양이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나는 곧 고양이들에게 아침밥을 주고 나서 종이 상자를 놈들 옆으로 바짝 옮겨놓고 덮개를 열어놓았다. 고양이들은 아주 맛있게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들을 잠시 보자니 이 자리에 없는 그 수놈이 더욱 생각나고 한없이 가엾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윽고 나는 건강한 겁쟁이 암놈을 반듯이 두 손으로 잡아 올렸다. 놈은 가만히 있었다. 놈을 종이 상자 안에 넣은 다음 재빨리 덮개를 덮었다. 그리고 팔로 덮개를 누른 채로 미리 준비한 스카치 테이프를 떼려고 하는데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테이프는 일부가 갈라져서 떨어졌다. 다시 제대로 떼려고 지체하는 사이, 그리고 덮개를 누르고 있던 팔을 잠시 올린 순간 놈이 덮개를 밀치고 뛰어나와 버렸다.

일단 순식간에 현관 밖으로 달아났던 녀석은 잠시 후에 돌아와서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녀석의 서슬에 놀라 함께 달아났던 장애 암코양이와 딴 배 새끼인 잿빛 얼룩무늬 수놈 고양이도 돌아와서 다시 밥을 먹었다. 그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고 밥 먹기에만 열중하는 건 어미고양이 뿐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시도했다. 밥을 먹는 녀석을 쉽게 잡아 다시 상자 안에 넣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자 안에 내려놓는 순간 녀석이 박차고 뛰어나와 버렸다. 순간적으로 상자 덮개를 덮던 나는 녀석의 발톱에 손가락이 찍혀서 피가 났다.

또 한번의 그 소동에 놀란 고양이들은 다시 순식간에 현관 밖으로 달아났는데, 그 판국에도 어미 고양이는 전혀 동요를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

잠시 후에 고양이들은 다시 돌아와서 밥을 먹는데, 나는 일단 포기를 하고 종이 상자를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다. 그런데 그 녀석은 나를 바짝 경계하면서 내가 종이 상자에 손을 대는 순간 또 달아나는 것이었다. 보통 예민한 녀석이 아니었다.

나는 내일쯤 다시 시도하기로 하고, 그때는 종이 상자를 이용하지 말고 내 승합차에다가 녀석을 곧바로 싣는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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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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