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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31일 오전 1시 20분]


참사 이후 생존자와 그 가족, 유족들은 끝없이 아프고 또 아팠다. 4월 16일 그날만이 아니라 참사를 교통사고에 빗대고, 생존학생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29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401호 법정 증인석에 선 L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그 고통을 털어놨다.

"이 사고 때문에, 다른 분들이 하는 욕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는 "누리꾼들이 포털 같은 데에서 그냥 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단순히 수학여행을 가던 길에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그 대처가 잘못돼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이라며 이런 걸 교통사고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참고 또 꾹 참아온 한 마디였다.

사고 당시 숙소 B-22번방(4층 중앙 좌현 8인실) 침대 위에서 놀고 있던 L학생은 친구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선실 안에 있던 8명 모두 복도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L학생은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올 때, 내 침대 건너편에 있던 친구랑 눈이 마주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 친구는 못 나왔다"고 말했다. 자꾸 그 눈빛이 떠오른다는 뜻이었다.

다음은 L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방송 나오기 전에 Q학생이 구명조끼 꺼내줬다"

[검찰 측 신문]

"사고 당시에는 숙소로 배정받은 B-22번방에서 친구들이랑 침대에서 놀고 있었다. 배가 기울어지자 짐들이 다 왼쪽으로 내려갔다. 침대에 있던 애들 몇 명은 짐 때문에 불편하니까 짐을 다 던지고 침대에서 버티고 있었다."

"충격음은 못 들었고, 컨테이너가 떨어진 것도 못 봤다. 그냥 맨 처음에는 '배가 기울었으니까 움직이면 더 위험하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렇게 방송이 나왔다."

"어떤 남자애가 안내방송이 나오기 전에 구명조끼를 다 꺼내줘서 애들도 입었다. Q학생이다. 그 애가 다른 방들도 돌아다니면서 구명조끼를 꺼내줬다. 사고가 난 시점으로부터 꽤 지난 때였다. 방송이 나오고 한번 불이 꺼졌다가 가만히 몇 분 정도 있다가 와서 구명조끼를 꺼내줬다."

"헬기 타겠다고 손들어...해경은 그때만 도와줬다"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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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 있는 친구가 손을 잡고 끌어줘서 방밖으로 나왔다. B-22번방에는 모두 8명이 있었는데, 나는 먼저 나와서 헬기를 탔다. 안에 있던 애들은 복도로 나오도록 (다른 친구들이) 끌어올려줬는데 그 뒤는 모르겠다. 선원이나 해경이 이때 도와준 적은 없다. (해경이) 헬기 탈 때만 끌어올려줬다."

"친구가 헬기를 탄다고 해서 나도 타려고 했다. 전해 듣기로 떨어질 위험 있으니까 헬기를 탈 수 있는 사람만 올라오라고 했다고 해서 나는 타겠다고 했다. 애들이 위에서 말을 전해준 거라 (탈 수 있는 사람만 올라오란 얘기는) 누가 그런 건지 모르겠다."

"해경이나 선원이 구해줄 것으로 알고 대기했다. 나는 그냥 쉽게 나올 줄 알았다. 사고 초기에 침몰 상황 알려주고 대피하라고 했다면 많은 학생들이 탈출 시도를 했을 것 같다."

"(로프 등에) 매달려서 나오는데 어깨랑 허리에 충격이 왔고 위로 올라가면서 다리에 타박상을 입었다. 지금은 괜찮다. (정신적으로 힘들진 않냐는 질문에) 마지막에 방에서 복도로 나올 때, 내 침대 건너편에 있던 친구랑 눈이 마주친 다음에 나왔는데 그 친구는 못 나왔다…."

"선원들이 그냥 가벼운 징역 살다가 시간이 흘러서 나오길 바라진 않는다. 그리고 이 사고 때문에, 다른 분들이 하는 욕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누리꾼들이 포털 같은 데서 욕을 많이 했다. 우리는 그냥 수학여행을 가다가 단순히 사고가 난 게 아니다. 사고 후 대처가 잘못돼 이렇게 많이 죽은 것이다. 이런 걸 교통사고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해경은 묻지도, 들어가지도 않았다"

[변호인 측 신문]

"B-22번방 근처에 좌현 갑판으로 나가는 출입문이 있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쪽) 앞까지 물이 다 차올라서 그쪽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방에서 애들이 창문 보면서 물이 차오르고 있다고 해서 (물이 들어오는 걸) 알았다. 잘 보진 못했는데 (좌현 갑판 쪽으로) 물이 올라오는 거 같았다. 그쪽이 기울어진 쪽이라 나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밖에 (구명정이) 오고, 물이 그렇게 많이 차오르지 않았다면 나갈 수 있다. 당시에는 물이 많이 차올라서 나갈 생각을 못했다. 친구들한테 그렇다고 들었다."

"계단 난간 잡고 올라가서 배 외벽을 밟고 좀 걸은 다음에 헬기를 탔다. 해경이 있던 외벽과 복도(B-23번방~28번방 사이)가 거리가 좀 있어서 (승객들을) 보지 못했을 것 같다. 친구들 소리도 헬기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헬기 바람이 세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헬기에 올라타는 걸 도와주거나 그 안에 있던 해경에게 '남아 있는 승객이 많다'고 얘기해준 적은 없다. 해경이 물은 적도 없었다. 해경이 선내로 들어가는 모습도 못 봤다. 들어가지 않고 외벽 쪽에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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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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