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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31일 오전 1시 5분]

단원고 K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4월 16일 세월호에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다. 그는 29일 법정에서 긴박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배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그는 숙소인 SP-3번방(4층 우현 선미 다인실)에서 바로 나와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2분쯤 아는 언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낼 때에도 K학생은 복도에 있었다. 처음에는 대기하라는 방송 때문이었지만 나중에는 헤엄을 쳐서 바로 옆 우현 갑판쪽 출입문으로 나가기 위해 물이 차오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물살은 우현이 아닌 중앙통로를 지나 선수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물살도 셌다. K학생은 바닷물에 휘말려 물에 빠졌다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계속 휩쓸려 내려갔다. 그는 힘껏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잡으려고 했다. 어느 순간 물이 멈췄고, 그때 K학생은 겨우겨우 갑판으로 나왔다. 어디로 나왔는지 기억을 못할 정도로 상황은 긴박했다. 함께 물살에 휘말렸던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사투 끝에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살아남은 고통'을 남겨줬다. K학생은 법정에서 "선원들은 자신이 한 행동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빨리 진상이 규명되고…처벌 받을 것은 빨리 받았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입가를 가리는 왼손 손목에선 'remember 0416'이 새겨진 노란팔찌가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은 K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사고 직후 복도에 나왔지만 계속 대기했다"

[검찰 측 신문]

"사고 당일엔 친구들하고 일어나자마자 씻고 준비하고 밥 먹고, 선실(SP-3번방)에서 친구들이랑 앉아서 놀고 있었다."

"배가 기울었을 때 선실 안에 있는 짐들이 다 밑으로 떨어졌다. SP-3번방에 있던 짐들이 문쪽으로 떨어져서 SP-2번방으로 날아가고. SP-3번방에 있던 친구들은 3~4분 정도 있다가 다 복도로 나오고 SP-2번방 애들은 그냥 그대로 있었다. 쿵 소리는 못 들었다."

"그 뒤에 계속 선실 안에서 있다가 (방송에서) 안전바를 잡으라고 해서 애들이랑 복도에 나와 있었다.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까 복도에서 계속 대기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는데 안 나가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안전바를 잡고 우현 쪽에 있는 출입문으로 나갈 수 있었다. 또 선미 쪽으로도 이동할 수 있었는데 그냥 가만히 대기하라고 해서…. 혹시 모르니까 방에서 구명조끼 꺼내 와서 일단 입고 있었다. 내가 가져왔다. 방에 칸막이 같은 게 있어서 그걸 잡고 올라간 다음 캐비닛 밟고 방 우현 끝까지 올라가서 구명조끼를 꺼내왔다."

"선원들이 구조해줄 것으로 믿고 가만히 있었다. 초반에 뭐가 도착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서 '아 이제 안전하겠다'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뭔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는데, '10분 뒤에 도착한다'고 들어서…. 정확히 (도착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못 들었다. 그 사이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때까지도 선원이나 해경을 믿고 기다렸다."

"(사고 당일 10시 2분경에 카카오톡으로 '96도로 기울었대요, 아예 못 일어나요'라고 보낸 것을 제시하며 어떻게 기울기를 알았냐는 검사에게)애들이 그렇게 기울었다고 얘기해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아는 언니한테 메시지를 보낸 거다. 이 메시지를 보낼 때에도 복도에 앉아 있었다."

"(또 다른 메시지에서 '근데 밖에 있는 애들이ㅠㅠ'라며 걱정한 이유도 묻자) 그때(사고 당시)가 자유시간이라서 아예 맨 위층(선상)에서 놀고 있는 애들이 있다고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갑자기 배가 기울어서 (친구들이) 바다로 튕겨져 나갔을까봐 무서웠다."

"물살에 휩쓸려... 친구는 나오지 못했다"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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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시각은 10시 2분에 카카오톡 보낸 뒤에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한 20분, 30분 뒤?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그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엄마랑 전화도 했다. 그 다음엔 어차피 통화가 안 되니까 (주머니에) 휴대폰을 집어넣었고, '물이 찬다'는 소리를 들어서 물이 SP-2번방 앞쪽으로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물이 차니까 (서있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잖아요. 그래서 친구 두 명이랑 나까지 셋이서 물로 뛰어들었다.

내 생각에는 물이 우현까지 차면 갑판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미처 B-28번방 쪽 통로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쪽 물살이 세서 거기서 밀려서 잠수하다 말다 하면서 계속 쭉 휩쓸려 내려갔다. 어느 순간 멈춰서 그때에 위에 있는 것 아무거나 잡고, 계속 끄집어내면서 올라왔다. 아마 4층 로비로 나와서, 우현 쪽 출입문을 거쳐 갑판으로 나간 걸로 추측하고 있다. 많이 잠수하고 계속 물살에 휩쓸려가서…(정확히는 모르겠다)."

"나랑 같이 있던 친구 두 명 중 한 명은 SP-3번 방 근처 우현 출입문으로 나왔고 나랑 같이 휩쓸렸던 친구는 같이 나오지 못했는데… 그때 복도엔 아예 물이 다 차서, 시야가 안 보였다. 계속 학생들끼리만 있었다."

"탈출할 때, 위의 것 잡으려고 할 때 손을 좀 긁힌 것 말고는 크게 없다. 하지만 그때 기억으로 많이 힘들다. 선원들은, 그 사람들이 한 행동에 맞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빨리 진상이 규명되고…처벌 받을 것 빨리 받았으면 좋겠다(울먹이면서 왼손으로 입가를 막음, 손목에는 노란 팔찌가 보임)."

"빨리 진상규명되고, 처벌받을 건 받았으면 좋겠다"

[변호인 측 신문]

"('96도'를 다시 묻자) 그때 사실 친구한테 들은 거다. 솔직히 96도가 얼마나 기운 것인지는 모르겠고, 친구들이 한 얘기라 나도 확실하지 않다. 물이 복도까지 완전히 다 차올랐을 때에 배가 90도 정도 기울었다고 느꼈다. 카카오톡을 보낼 때에는 90도까지 기운 상태는 아니었다. 물이 다 차기 전에 보냈다."

"'위에 친구들이 있다'고 한 곳은 맨 위에 갑판, 불꽃놀이 하는 데…. 서너 명? 나도 다른 애들이 말해줘서 알았다. 나중에 나와서 들은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아까 거기 (애들) 있었는데'라고 해서… 근데 밖에 있지 않았다더라.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SP-2번방 쪽 통로에 있을 때, 그방 아이들이 물이 차오른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내가 앞쪽 복도, 좌현 쪽으로 물이 차는 걸 살펴봤다. 선미 쪽 통로에는 애들이 쭉 앉아 있었고, 나한테는 먼 편이었다. 그쪽으로 나간 사람이 있는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내가 있던 SP-3번방에는 10명에서 20명 정도 있었다. 그 중에 나 포함해서 두 명 나왔다(방청석에선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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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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