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대체 :31일 오전 1시 18분]

P학생(남,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사고 당시 4층 중앙 통로에 있었다. 그는 여자화장실에 있던 친구와 함께 있다가 '안 나갈 거냐'는 일반인 승객의 말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커튼과 소방호스로 탈출을 도와줬다.

그러나 함께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여학생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P학생은 '사고 당시 기억으로 힘들지 않냐'는 검사의 질문에 "많이 생각나는 게… 화장실에 같이 있던 애가 못 나왔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게 괴롭냐'는 재판장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P학생은 다시 고개를 들고 "방송만 제대로 했다면"이라고 입을 뗐다. 하지만 울음이 터져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은 P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점프 시도한 남성은 좌현 쪽으로 떨어졌다"

[검찰 측 신문]

"처음에 B-13번방을 배정받았는데 잠은 그 옆방인 B-12번방에서 잤다. 사고 당일엔 밥 먹고 남자 샤워실에서 씻고 우현 갑판에서 애들하고 장난치다가 기울기 직전에 실내로 들어왔는데, 배가 기울어서 S-6번방(4층 우현 중앙 첫 번째 다인실) 선수 쪽 벽에 있는 홈을 잡았다. 그런데 홈이 너무 작아서 통로로 넘어가려고 했다.

B-28번방 쪽에 여자 한 명이 있고 저 혼자 밖에 없었다. S-6번방 문이 안 열리는데, B-28번방 앞 여자애가 구명조끼를 나눠주기에 나도 가서 받아 왔다. (다시 S-6번방 쪽으로) 오는 도중에 여자화장실에 여자애 한 명이 있어서 구명조끼 주고 같이 있었다. 그냥 여자화장실 문 앞에 같이 있었다."

"계속 중앙 로비를 보고 있었다. 40분 정도 S-6번방 쪽에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내 쪽으로 넘어오려는 남성분도 있었다. 그는 점프했는데 좌현 쪽으로 떨어졌다. 또 선원 누나(고 박지영)가 S-5번방 쪽에서 올라왔다. 친구 1명이 도와줬는데도 누나가 힘들어서 떨어졌다. 떨어지는 걸 봤는데, 그때 레크리에이션룸 쪽에서 쿵 소리가 났다. 쿵하는 소리는 좀 많이 들었다. 배 밖에서도 나고, 안에서도 났다."

"레크리에이션룸 쪽에는 사람이 좀 많았다. 선생님 두 분인가 한 분이 계셨고, 애들도 10명 정도 있었다. B-19번방(4층 우현 선수 8인실)쪽 통로에도 애들 많았고, 키즈룸 근처에도 많았다. 자판기에 쓰러져서 여자애들이 다섯 명 정도 갇혀 있었다. 내 쪽으로 오려던 남성분이 떨어지는 걸 보고 무서워서 계속 S-6번방 쪽에 있었다."

"선내방송에선 우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가, 정전 이후로는 해경이 다 왔다고 했다. 혼자 있어서 무섭긴 했는데,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통로 뒤편에 위치한) 화장실 쪽에 있는데, 아저씨 세 분이 나보고 오라고 했다. 안 갈 거냐고 물어봐서 갔다. 아저씨들이 거기에 있는 커튼을 묶었는데, 갑판 출입구까지가 3미터쯤 됐는데 커튼이 안 닿았다. 그래서 헬기로 오신 분이 호스를 내려서 5, 6명이 함께 나왔다."

"나올 때 다치진 않았다. 내가 많이 생각나는 게 화장실에 있던 애가 못 나왔다고 그래서…(고개만 숙임, 그게 괴롭냐는 재판장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임)"

"선원들 처벌은 당연히 해야 된다. 방송만 제대로 진짜…정말 행동만 제대로 했다면…(울면서 말을 잇지 못함)"

- (재판장) 친구들이 많이 살았을 것 같나.
"네."

"방송만이라도 진짜 제대로 했다면..."

28일 오전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법정 증언을 나선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안산지역에 살고 있어 광주까지 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안산에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진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법정.
▲ 세월호 생존 학생 증언 위한 법정 28일 오전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법정 증언을 나선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안산지역에 살고 있어 광주까지 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안산에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진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법정.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변호인 측 신문]

"B-28번방 앞에 있을 때 해경이 (우리 쪽으로) 내려다보긴 했다.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아저씨들이 해경한테 아무 얘기도 안 한 걸로 기억한다. 자기들끼린 얘기한 것 같다. 혼잣말하듯이 우리한테 '너 친구들이 저기 있는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B-23번방 앞쪽에 친구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계속 S-6번방 쪽에서 대기하다가 나올 때 (그쪽까지 보이는 통로를) 지나가기만 해서 소리는 못 들었다."

"S-5번방 쪽에서 뛰다가 떨어졌던 누나는 뚱뚱한 체형이었다. 그때는 사고가 나고 20분, 30분이 넘었고 방송이 나온 뒤였다."

"누나가 떨어진 뒤에도 계속해서 방송이, 남자목소리로 여러 번 나왔다. 구조대나 해경, 헬기가 거의 다 왔다는 방송도 들었다."

[관련 기사]

[생존 학생 증언①] "비상구 문 열어준 사람은 해경이 아니라 친구였다"
[생존 학생 증언②] "왜 친구들이 그렇게 됐는지 근본적인 이유 알고 싶다"
[생존 학생 증언③] "파란바지 아저씨가 나를 끌어올렸다"
[생존 학생 증언④] "애들도 '가만히 있으라잖아' 하면서 대기했다"
[생존 학생 증언⑤] "4월 16일 9시 58분, 창문 밖은 바다 속이었다"
[생존 학생 증언⑥] "선원들 엄벌에 처하길 원하는가" - "네"
[생존 학생 증언⑦]"박지영 언니가 복도에서 로비로 훅 떨어졌다"
[생존 학생 증언⑧]"지금도 잠잘 때 가위에 눌린다"
[생존 학생 증언⑨]"올라가 헬기 타겠다고 손 들고 나왔다"
[생존 학생 증언⑩]"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증인석에서 터진 울음
[생존 학생 증언⑪] '4층의 영웅' 남학생의 일갈 "선원들 1600년형도 부족하다"
[생존 학생 증언⑫] 물살과 사투를 벌인 끝에 살아남다
[생존 학생 증언⑬] "사고 후, 가만히 있어도 내가 90도로 휘는 것처럼 느껴"
[생존 학생 증언⑭] "나는 친구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렸으니까..."
[생존 학생 증언16] 꾹꾹 참아온 한 마디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인가"
[생존 학생 증언17] "머리 감다가 물이 쏟아질 때, 숨이 턱 막혔다"
[생존 학생 증언18] "좌현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가만히 있었다"
[생존 학생 증언19] "물이 차올라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생존 학생 증언20] "박지영 누나말고는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
[생존 학생 증언21] "선원들, 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졌으면"
[생존 학생 증언22] "탈출하다가 두 번이나 빨려들어갈 뻔했다"


태그:#세월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