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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째 증언자는 S학생(남,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이었다. 사고 직전 4층 우현 갑판에서 친구들과 바다를 구경하고 있던 그는 배가 기울자마자 "본능적으로" 실내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좌현 쪽으로 미끄러져 레크리에이션룸 앞으로 떨어졌다.

S학생과 함께 레크리에이션룸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10명 정도였다. 이들은 배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앞쪽부터 차례대로 좌현 갑판으로 나갔다. S학생과 친구들 곁에는 승무원 고 박지영씨가 있었다. (관련 기사 : "지영이는 죽을 때까지 무전기를 놓지 않았다") 그는 밖으로 나올 때까지 박씨가 자신들을 도와줬지만 다른 선원이나 해경은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S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4층 중앙 우현에서 좌현으로 확 미끄러져"

[검찰 측 신문]

"숙소는 S-4번방(4층 선수 다인실)이었다.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4층 우현 갑판에서 친구 여러 명이랑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배가 기울어질 때 바로 안으로 들어갔는데, 출입문 쪽에서 왼쪽으로 미끄러졌다. 레크리에이션룸(4층 좌현 중앙 쪽) 앞에까지 떨어졌다."

"사람들이 떨어져서 쿵 하는 소리도 들렸다. 레크리에이션룸 쪽 창문으로 화물이 바다에 떨어져 있는 것을 봤다. 그 뒤 방송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레크리에이션룸 앞에서 대기했다.구명조끼는 입고 있었다. S-4번방쪽에서부터 구명조끼를 전달해줬다. 거기서 대기한 시간이 몇 분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좌현 갑판에서 물이 차오를 때 출입구 앞에 있던 애들이 나가서 나도 따라 나갔다. 그때는 발목쯤 물이 찼다. 누가 나가라고 하진 않았고, 그냥 그쪽에 있던 친구들이 나가니까 따라갔다."

"박지영, '빨리 나가라'면서 애들 먼저 내보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숨진 승무원 故 박지영(22·여)씨의 영정이 4월 22일 오전 인천시 중구 인하대병원 장례식장 분향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 '당신의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숨진 승무원 故 박지영(22·여)씨의 영정이 4월 22일 오전 인천시 중구 인하대병원 장례식장 분향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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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할 때 도와준 여자 분이… 이름은 잘 생각 안 난다. 아, 이름이 박지영이다! 그냥 빨리 나가라면서 (학생들을 좌현 출입문 쪽으로) 밀어주고, (그 쪽에) 있던 애들을 먼저 (밖으로) 내보냈다. 다른 사람은 없었다. 배가 침몰 중이라고 알려주거나 대피하라는 방송도 없었다. ('그랬다면 더 많은 승객이 살아났을 것으로 보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임)"

"다친 곳은 없고, 3주 정도 입원했는데, 병원에 있을 때까지는 정신적으로 괴로웠다. 선원들에게 가장 강한 벌을 줬으면 좋겠다. 꼭 처벌해 달라."

"선원들에게 가장 강한 벌을... 꼭 처벌해 달라"

[변호인 측 신문]

"처음에 밖에 있었는데도 배가 기울었을 때 안으로 들어온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본능적으로 들어왔다."

"(대기할 때) 레크리에이션룸 근처에는 10명 정도 있었다. 사람들은 박지영씨가 나가라고 해서 나갔다. 그는 내가 (막 실내로 들어와서) 키즈룸(4층 우현 중앙) 쪽에 있을 때 레크리에이션룸으로 떨어지더라. 이후 탈출할 때까지 같이 있었다."

"박지영씨가 무전기를 갖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다른 분은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선원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 분이 그냥 무전기를 갖고 다른 곳에다가 보고하는 듯이 얘기하는 걸 들었다.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어두운 색 옷을 입었냐는 질문에도) 기억이 안 난다."

"갑판으로 나가자마자 바로 앞이 바다였다. 그냥 자연스럽게 바다로 들어갔다. 거기에 6명쯤 있었다. 모두 학생이었고, 한 명은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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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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