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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31일 오전 12시 20분]

"못 나가요, 거의. 너무 기울어서 방문까지 갈 수 없었어요."

28일 두 번째 증인으로 나선 B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물이 차오르기 전에 방에서 나갈 수 있었냐'는 판사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날 B학생은 유일하게 화상 증언을 했다. 원래는 여섯 명 모두 화상 증언을 할 예정이었지만 '법정 증언이 재판 진행에는 더 좋다'는 재판부의 말에 다섯 명은 마음을 바꿨다.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도 없고 방청은 매우 제한된 상황이었지만, B학생은 그래도 마음이 불편했는지 법정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증언 장소와 상관없이 차분하고 상세하게 4월 16일을 증언했다. B학생은 줄곧 배가 갑자기 기우는 바람에 누군가의 도움 없인 빠져나오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고 초기에도 "밖에서 밧줄이나 사다리 같은 걸 안 내려줬다면 (방에서) 못 나올 상황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빠져나올 때 친구들이 도와주긴 했지만, 그건 물이 차서 몸이 어느 정도 떠올랐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사고 당시 그의 위치 역시 4층 좌현 선미 쪽 다인실인 SP-1번방이었다.

다음은 B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방에서 쉬고 있었는데... 다 창가 쪽으로 미끄러져"

[검찰 측 신문]

"4월 16일 아침에는 밥 먹고 숙소(SP-1번방)에 돌아가서 쉬고 있었다. 방에 돌아온 시각은 기억 안 난다. 방에서 음료수 마시고, 친구들하고 같이 있었다. 그냥 각자 쉬고 있었다."

"배가 기운 시각은 모르겠다. 애들이 앉아 있었는데 다 창가 쪽(좌현)으로 미끄러졌다. 캐리어 가져온 것도 다 쏟아졌다. 창문 밖으로 큰 컨테이너 하나가 떠다니는 것도 봤는데 쿵쿵거리거나 쇠 긁히는 듯한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사고 직후 안내방송에선 '구명조끼 입고 가만히 있으라' 방송이 나온 시각은 기억이 잘 안 난다. 거의 똑같은 말만 했다. 지금 배가 침몰 중이라거나 어떤 상태라고 설명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어디로 대피하라, 탈출하라'는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해경이 와서 나오라고 방송을 하거나 소리를 지른 기억도 없다."

"앞쪽부터 구할 것 같아서 구명조끼 입고 기다렸다"

"그냥 반 애들이 다 구명조끼를 입기에 나도 입었다. 방송에서 (구명조끼 입으라고) 했고, 반장도 얘기해서 입었다. 우리 방이 좀 구석진 데에 있어서 앞쪽 방부터 구하겠다 싶어서 우리는 (구명조끼 입고) 다 기다렸다. 그냥 밖에서 사람들이 막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는 게 우리 방까지 들리니까 애들이 좀 기다리자고 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잘 안 들렸다."

"기다리고 있는데 창가에 있던 애들이 물이 점점 들어온다더라. 그래서 반장이 구명조끼 입었으니까 물이 차면 몸이 뜬다, 그럼 문으로 빠져 나가자고 했다. 그렇게 나왔다. 당시 방이 아예 다 물에 잠긴 건 아니라서 문까지 못 갔는데, 먼저 밖으로 나간 애들이 끌어당겨줬다. 그 친구들은 방안에 가구가 있었는데 그걸 밟거나 아니면 문턱 같은 것을 밟고 올라간 것 같다. (선실 사진을 본 뒤) 캐비닛이었다. 저는 캐비닛을 밟으면 가라앉아서…. 물이 많이 들어왔을 땐 그것만 밟고 올라가기 힘들었다."

"사고 초기에도 밧줄이나 사다리 없었으면 못 나왔다"

"사고 초기에도 밖에서 밧줄이나 사다리 같은 걸 안 내려줬으면 못 나올 상황이었다. (만약 내려줬다면) 그걸 잡고 올라갈 수는 있었을 것 같다."

"(증인도 친구들을 구해줬냐는 질문에) 구했다기 보다는 그냥 애들이 다 방문에서 끌어줘야 했는데,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가서 한 명 잡고 끌어올려줬다. 그러다 다시 선실에 빠지더라도 그때는 물이 거의 방에 차서 다시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탈출과정에서 선원이나 해경이 도와준 적 있는지는) 기억 안 난다. 내가 (배 밖으로 나올 때) 마지막 비상구 앞에서 물에 한 번 잠겼는데, 그때 눈을 감고 있어서 누가 끌어올려줬는지도 모르겠고…."

"멍 하나 든 것 말고는 다친 데는 없다. (사고 당시 상황이 생각나서 정신적으로 힘드냐는 질문에는 고개만 끄덕임)… 선원들을 엄벌에 처해 달라."

"처음 배가 기울었을 때에도 방문까지 갈 수 없었다"

[변호인 측 신문]

"방에서 쉬고 있을 때, 그 캐비닛이 칸막이 같아서 가려진 쪽 아이들은 몇 명인지 안 보였다. 제 쪽에는 저를 포함해 5명 정도 있었다."

"(사고 초기에 방을 나갈 수 있었냐는 질문에) 못 나가요, 거의. 너무 기울어서 방문까지 갈 수 없었다. 방문이 캐비닛 바로 위에 있는 게 아니라 떨어져 있어서 (캐비닛을 이용해도 출입구 쪽으로) 가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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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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