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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에 세상을 등져야 했던 이크발의 생전 모습.
 15살에 세상을 등져야 했던 이크발의 생전 모습.
ⓒ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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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지난해 6월, 뜨거운 여름날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이크발은 2개월 후인 8월 초에 사망했습니다. 이크발을 다시 찾아가기로 한 날 걸려온 전화의 저 편에서 들려온 단 한 마디의 말, "이크발이 오늘 아침에 죽었습니다."

아빠는 결핵으로 사망하고 엄마는 암으로 사망한 뒤 바라나시의 유명한 수공사리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한 달에 700루피를 받았지만, 이크발도 결핵 진단을 받은 뒤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한 채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나이든 두 명의 이모님이 사리에 장식 술을 다는 일을 하고 열 살 어린 여동생이 이모님을 도와 일을 했지만, 세 사람이 버는 돈은 하루 50루피가 전부였습니다. 이 돈으로는 이크발의 결핵치료는커녕 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인도에서 결핵은 아프리카의 에이즈와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가 인간의 삶을 위협해온지 벌써 20년이 넘었고, 에이즈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아프리카에는 에이즈는 물론 취약한 생활여건과 의료시설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무료 진료 의료단이나 의약품들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인도는 높은 성장률과 풍부한 자연·종교·문화적 자원을 자랑하며 강한 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정부의 직접적인 의료지원이나 의약품 제공은 물론 질병과 보건 실태의 정확한 현 주소를 드러내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세 사람이 일해서 하루 50루피... 결핵치료는 남의 나라 이야기

결핵이나 소아마비처럼 저개발국가에서 높은 발생률을 보이는 질병에 대해 인도 정부는 선진 국제기구들의 지원이 매우 성공적으로 실행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06년 월드뱅크는 인도 정부에 대한 의료지원을 삭감했습니다.

기금이 실행되는 과정을 점검한 결과 정부에서 제출한 보고서가 조작되고 그 과정에서 부패가 목격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결핵환자 진단과 치료에 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에서 한 환자의 검사 샘플을 가지고 여러 환자를 검사하고 치료한 조작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세라지 우딘. 움푹 패고 휘어진 등골에도 남아 있는 건 바로 결핵이다.
 세라지 우딘. 움푹 패고 휘어진 등골에도 남아 있는 건 바로 결핵이다.
ⓒ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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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고서가 보여주는 수치나 사례와 상관없이, 결핵과 같은 가난한 자들의 질병은 그 질병 발생률이 높은 곳으로 들어가는 게 우선적이고 바람직합니다. 인도 정부도 매년, 여전히 발생하는 결핵사망자 수치를 줄이는 데 있어 빈곤지역과 시골지역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929년 결핵 퇴치 국제연합 회원으로 가입한 후 인도 정부는 결핵 감염을 줄이고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결핵 백신을 개발하고, 갈수록 저항력이 강해지는 약을 보완하기 위해 또 다른 약들을 개발하거나 여러 약들을 동시에 복합적으로 복용해 퇴치하는 방법들을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인도 정부는 1956년 첸나이 지역에 결핵화학치료센터를, 1959년에는 국립결핵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치료법과 의약품 개발이 이뤄지면서, 인도 정부는 1990년대 들어 치료법과 의약품 개발에서 실제 환자들을 어떻게 제대로 완치할 것인지로 무게중심을 옮깁니다.

월드뱅크의 지원 중단, 그리고 DOTS

결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생활환경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위생시설을 갖추고 환경을 쾌적하게 하며,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은 물론 최소 6개월 간 꾸준히 의약품을 복용하면서 강도 높은 노동을 피해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결핵이라는 것에 질병으로서 접근하기보다는 예방으로서 접근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결국 실제적으로 결핵을 퇴치하는 데 있어 취약점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1992년 국립결핵통제프로그램을 갱신하고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DOTS(Directly Observed Treatment-Short course) 시스템을 운영하게 됩니다. 이는 말 그대로 의사나 관련 의료 종사자가 결핵 환자를 직접 관찰, 감독하면서 완치될 때까지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2007년도에 발간된 인도의 결핵보고서는 2006년 한 해 동안 670만 명의 결핵환자가 이 시스템으로 관리되었고, 2006년 3월에 이미 인도 전 지역을 관리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결핵환자 관리 목표의 85%를 넘어섰다고 자신감 있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보건 시설이나 의료기관에서 종사하는 의사들, 의료도우미들, 수많은 NGO들이 DOTS 시스템에서 움직이고 있고 각 주 정부의 의료기관과 마을 단위를 연결하는 사회보건활동가라고 할 수 있는 '아샤(ASHA)'들도 이 시스템을 위해 훈련과 교육을 받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결핵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연 50만 명에서 37만 명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핵에서 희망이라고 말하는 DOTS 시스템이 도입된 지 벌써 1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진단을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2007년 12월 바라나시에서 열린 '직조공들과 수공업 장인들을 위한 민중재판'에 모인 직조공들은 결핵에 대한 진단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했습니다.

모두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모두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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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법정에 참석한 직조공들

수백 명의 직조공이 참석한 이 민중재판에서 많은 직조공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벼랑 끝으로 계속 내몰리면서 자신들에게 불어 닥친 삶의 위협과 절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습니다.

무슬림과 힌두교도, 달리트들과 후진 카스트들이 뒤섞인 이 자리에서 모든 직조공은 귀를 기울이며 다른 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내 삶과 다를 바가 없고, 당신의 남편이 결핵으로 사망했다면 그 다음은 내 남편이 될 수도, 세 살배기 내 아이가 될 수도, 그리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오랫동안 아팠어요. 병원에서 의사는 남편이 결핵이 아니라고 했고 남편은 결국 죽고 말았어요. 남편이 죽은 뒤에야 결핵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재판에 참석한 모비나 비비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채 사리 직조공이었던 남편이 제대로 된 결핵진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치료를 생각할 여지도 없이 사망한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47세의 세라지 우딘은 바라나시의 슬럼 바제르디하에서 사리를 짜는 직조공이었지만 결핵에 감염된 후 2년 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의 수술과 오랜 고통은 그의 등에 깊은 홈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큰딸이 바느질을 하면서 근근이 버는 하누 35루피로 온 가족이 먹고 삽니다. 빈곤층을 위한 식량 배급 카드로 발급받지 못해,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진해온 결핵 퇴치 프로그램은 왜 이처럼 결핵에 쉽게 노출돼 있는 이들에게는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개발 국가에서 실시율이 높은 DOTS 시스템에서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수행 방식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민중재판에 모인 수백 명의 직조공들처럼 결핵에 더 많이 노출돼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시골 지역에서 살고, 먼지와 실밥으로 가득한 좁은 공간에서 긴 시간 동안 움직임 없이 앉아서 일해야 합니다. 한 번 결핵에 걸리면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그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의사가 제대로 공급되지도 않습니다. 시골에서 가장 가까운 보건소의 의료진들은 공식보고서와 달리 제대로 훈련받지 않았으며, 의사들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도 적지 않습니다.

설령 결핵 감염을 진단받은 경우라도 이 가난한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고 장기간 치료를 받으면서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한 가족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수공예 사리 시장이 급락한 지금, 이들에게 빈곤층을 위한 식량배급카드조차 발급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치료가 아닌 죽음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DOTS 프로그램에 의해 의약품이 무료로 지원되더라도 누군가 결핵감염자들을 위해 손발이 돼줘야 하지만, 이들 곁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단지 한 명의 결핵감염자가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버려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비나 비비와 그의 아이.
 모비나 비비와 그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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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현실의 경계... 치료 대신 죽음이 강제되는 현실

민중재판에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 정부에서 수공 직조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수공예 직조공들을 위한 정부의 혜택을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 건강보험제도, 직조공 조합개발 제도, 직조공들을 위한 건강보험 제도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두 2005년 새로 도입된 제도들입니다. 이 제도들은 사망 때 보험금을 받거나 조건부 의료비 지원 제도인데, 이미 악화된 대로 악화된 이들의 생계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조합개발제도를 활용하면 정부 보조금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원재료를 구입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제도가 현실로 내려왔을 때 그 가격은 이상하게도 올라가 있습니다. 현장을 담당한다는 정부 직원들은 몇 명의 직조공들이 제대로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제도와 현실 사이를 누가 이렇게 갉아먹고 있는 것일까요. 아시아인권위원회는 결핵으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수공예 직조공들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일할 의사를 찾아 마을에서 직접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기로 계획했습니다. 인도 정부는 그 안이 썩어가고 사람들이 죽어가도 외부의 지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태그:#결핵, #바라나시, #DOTS, #민중재판, #아시아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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