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한국영화가 박스오피스를 주도한 10월이었다. 마동석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범죄도시>를 선두로 현실 국제정세와 절묘하게 맞물리는 사극 <남한산성>, 역사적 상처를 색다른 각도에서 돌아본 <아이 캔 스피크>가 박스오피스 1, 2, 4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할리우드 대작 <킹스맨: 골든 서클> <토르: 라그나로크>와 함께 10월 한 달 100만 관객 이상을 모았다.

한국영화의 선전은 지난 8월 이후 3개월째 이어지는 중이다. 전반기 내내 한두 편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놓지 못한 한국영화는 7월 말부터 <택시운전사> <군함도> <청년경찰> <살인자의 기억법> 등이 흥행하며 영화계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2017년도 남은 달력이 두 장뿐인 상황에서 할리우드와 한국영화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연말개봉을 위해 비워 놓은 자리에 유망한 감독의 내실 있는 작품이 여러 개봉을 앞두고 있다.

<부라더>를 통해 연타석 홈런을 노리는 마동석과 <침묵>으로 오랜만에 복귀하는 최민식이 11월 첫 주부터 격돌을 벌인다. 방은진 감독의 <메소드>, 진모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올드마린보이>, 작지만 강한 영화 <폭력의 씨앗> 등도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는 작품이다. 히어로 영화에서 장기인 로맨스로 돌아온 마크 웹의 <리빙보이 인 뉴욕>을 필두로 멜로영화도 메뉴판에 오른다. 과연 어떤 영화가 관객의 선택을 받게 될까.

아래 미틈달 기대작 다섯 편을 소개한다.

[하나] <침묵>

침묵 포스터

▲ 침묵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색깔 있는 스릴러 <해피엔드> 이후 18년 만에 만났다. 그때보다 한층 단단해진 정지우 감독과 한국을 대표하는 명배우 최민식의 의기투합이 어떤 결과물을 끌어낼지 한국영화계의 관심이 쏠린다.

<침묵>은 한 건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다. 성공한 재력가의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범인으로 그의 딸이 지목당하며 사건은 예기치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한순간에 소중한 것을 모두 잃은 남자의 고뇌 가운데 삶의 몇 가지 진실이 얼굴을 드러낸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검사와 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변호사의 날 선 공방은 진중한 이야기 가운데 법정 드라마의 재미를 더한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좇는 이들의 시선이 관객의 시선과 합쳐질 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수면 위로 떠 오른다.

검증된 명배우 최민식과 함께 하는 귀한 기회를 통해 박신혜, 류준열, 이하늬, 이수경 등 젊은 배우들이 자신의 기량을 발돋움하는 계기를 가졌을지 지켜보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가 되겠다.

학원 강사와 수강생의 사랑을 다룬 <사랑니>, 싱그러운 젊음을 지닌 소녀에 매혹된 노교수의 이야기 <은교>에 이어 젊은 여배우와 나이든 재력가가 약혼 관계로 등장하는 <침묵>이 정지우 감독의 특징을 드러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다만 <침묵>에 깃든 감독 정지우의 색깔이 오직 이만은 아닐 것이다. 2일 개봉.

[둘] <폭력의 씨앗>

폭력의 씨앗 포스터

▲ 폭력의 씨앗 포스터 ⓒ 찬란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가 발견한 귀한 가능성을 나눌 기회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 경쟁부문 대상과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한 <폭력의 씨앗>이 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감독인 임태규는 이 영화가 데뷔작으로 지난해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에 이어 한국영화계의 커다란 발견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영화는 외박을 나온 군인이 하루 동안 겪는 여러 사건을 통해 군대와 가정 등 한국사회에 만연한 폭력문제를 깊이 있게 돌아본다. 83분의 길지 않은 상영시간 동안 폭력이 어떻게 움트고 번식하는지 그 기원을 탐구한다. 가정부터 학교와 군대, 직장 등에서 하루가 멀다고 폭력사건이 터져 나오는 요즘, 폭력이 만들어지고 퍼져나가는 과정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이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상영시간 내내 이어지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최근 영화에서 익숙하지 않은 4:3의 화면비가 인물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가섭, 정재윤, 오규철 등 얼굴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예들의 연기도 색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당신은 과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셋] <직쏘>

직쏘 포스터

▲ 직쏘 포스터 ⓒ (주)코리아스크린


2014년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획기적인 영화 <타임 패러독스>로 전 세계 영화팬들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호주 출신 감독 스피어리그 형제가 제임스 완 사단에 합류했다. 이들은 21세기 가장 성공한 공포영화 시리즈 <쏘우>의 여덟 번째 속편으로 알려진 <직쏘> 연출을 맡아 시리즈를 새롭게 출발시키는 중책을 맡았다.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스피어리그 형제의 재능이 탄탄한 지원 아래 꽃을 피웠을지 주목된다.

<쏘우> 시리즈는 지난 2010년 <쏘우 3D>를 끝으로 7년 동안 공백을 가졌다. 이는 타성에 젖어간다는 평가를 받은 시리즈에 새로운 힘을 싣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제임스 완을 비롯해 제작자 오렌 쿨스, 마크 버그는 총력을 기울여 획기적인 속편을 만들 적임자를 물색했다. 스피어리그 형제는 이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재능으로 이들은 제임스 완의 제안을 받아들여 할리우드에 본격적으로 입성하게 됐다.

<인시디어스> <컨저링> <애나벨>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21세기 가장 성공한 공포영화 제작자이자 연출자로 평가받는 제임스 완에게도 스피어리그 형제의 성공이 필요하다. 리 워넬, 대런 린 보우즈만, 케빈 그루터트, 존 레오네티, 다비드 산드베리 등 다양한 감독이 그의 사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제임스 완을 대신할 수 있는 재능을 확실히 보여준 이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스피어리그 형제가 <쏘우> 시리즈 최고의 캐릭터 직쏘의 부활과 함께 할리우드에 안착할 수 있을지는 오직 이 영화의 성패에 달려 있다. 2일 개봉한다.

[넷]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포스터

▲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미스 리틀 선샤인>의 감동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다. <미스 리틀 선샤인>을 연출한 조너선 데이턴과 발레리 페리스가 네 번째 장편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을 들고 16일 찾아오는 것이다.

영화는 1960, 1970년대 활약한 걸출한 여자 테니스 선수이자, 평생을 여권신장을 위해 싸워온 빌리 진 킹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1973년 당대 최고의 여자 테니스 챔피언 빌리가 남자 윔블던 챔피언 출신으로 은퇴한 상태였던 바비 릭스와 벌인 경기로 최근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배우 엠마 스톤과 스티브 카렐이 각기 빌리와 바비 역을 맡아 연기했다.

실제 이 경기는 달 착륙 이후 미국 내 역대 최고 TV 시청률과 북미지역 테니스 최다관중 기록을 가진 유명한 사건이다. 스포츠의 영역에서 최고의 여자선수가 평범한 남자선수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란 편견과 마주해 단순한 이벤트 경기를 넘어선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혹자는 이 경기를 가리켜 '스물아홉의 여자선수와 쉰다섯의 중년 남자가 벌인 쇼'라며 폄하하기도 했으나 이 사건이 낳은 여러 담론은 미국 사회의 평등의식을 진일보시켰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함께 영화를 만들어 온 조너선 데이턴과 발레리 페리스는 이 영화를 가리켜 자신들의 영화목록에서 가장 도전적인 작품이라 표현했다. 이 영화를 위해 넉 달 이상 혹독한 훈련을 했다는 엠마 스톤과 스티브 카렐에게도 대단한 도전이었음이 분명하다.

마이클 잭슨의 명곡 'Billie Jean'의 제목은 이 위대한 여성 빌리 진 킹을 가리킨다. 16일 개봉.

[다섯] <시크릿 레터>

시크릿 레터 포스터

▲ 시크릿 레터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오는 11월 23일, <시네마 천국> <스타 메이커> <피아니스트의 전설> <말레나> <언노운 우먼> <베스트 오퍼> 등 영화사에 기록될 전설적인 작품을 차례로 내놓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열네 번째 연출작 <시크릿 레터>가 한국에 선보인다. 만약 당신이 이 영화를 본다면 그건 세상에 나와 있는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단 열네 편의 영화 가운데 하나를 만나는 것이다.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오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았고 명배우 제레미 아이언스, 올가 쿠릴렌코가 주연했다. <베스트 오퍼>에서 압도적인 화면을 만들어낸 마우리지오 사바티니 미술감독이 힘을 보탰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당대 최고의 영화인들이 빚은 걸작을 극장에서 볼 귀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런 영화는 결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침묵 폭력의 씨앗 시크릿 레터 기대작을 소개합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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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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