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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그 녀석이 스스로 제가 태어나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내심 수없이 바라고 기대했다. 개 같으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옛날 소년 시절 개장수에게 팔려 차에 실려 갔던 우리 집 누렁이가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 다음날 돌아온 것을 보신 아버지가 개를 팔지 않기로 하고 개값을 되돌려준 일도 내 기억 속에 온전히 남아 있어서 그 수놈 고양이에게도 그 같은 일이 생기기를 바랐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개 같으면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10리 정도의 거리지만, 그 사이에는 건너야 할 큰 도로도 세 개나 되고, 읍내도 통과해야 하고, 곳곳에 개들도 많으니, 몸피는 다 자랐지만 아직 어린 그 고양이가 저 살던 곳을 스스로 찾아온다는 것은 사실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바란 나머지 이른 아침에 가로등을 끄러 집밖으로 나갈 때는, 그리고 외출에서 돌아올 때는 그 녀석을 혹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은근히 기대를 하곤 했다. 그 녀석을 보게 되면 그 놀라운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한없이 반가울 것 같았다. 그 녀석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각별히 위해 줄 것 같고, 정말 그러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손으로 밥을 주어온 한 마리 수놈 고양이를 내 현명치 못한 처사로 어이없이 잃은(녀석을 불행한 곤경 속에 빠뜨린)데서 오는 상심이 물론 우습고 하찮은 것이긴 하겠지만, 나는 나의 이런 마음을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신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세상에 태어나 산다는 것은, 결국 그 모든 것은 신의 뜻일 수밖에 없다. 모든 생명은 신에게서 왔으니 신의 뜻대로 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온정을 갖고 사랑을 나누며 사는 일이다. 나와 인연 지어진 것들을 사랑하고,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돌보고, 사람이 돕고 보살펴야 할 사물들에게 정을 주고, 무릇 의로운 일들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 진정한 신의 뜻이다. 그 사랑하는 일, 의로운 일들 속에는 생명을 가진 동물들을 소중히 여기는 소박한 자연 사랑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얼마 전에 어머니의 친구 분들인 할머니들을 따라 근처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은 일이 있었다. 할머니들께 종종 차량 봉사를 해 드리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그날은 집에 있던 내가 선뜻 할머니들을 따라나선 것은 먹고 남은 음식을 싸 가지고 올 요량에서였다.

나의 그런 행위 때문에 또다시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한 할머니가 그 까짓 고양이들이 사람에게 무슨 이(利)를 준다고 그렇게까지 공양을 하느냐고 내게 핀잔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당신 집에도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었는데 너무 귀찮고 양식이 많이 축나서 사람을 시켜 상자에다가 담아 묶어 가지고 먼 산벌에다가 버렸노라고 했다. 당연지사인 것처럼 그런 말을 아주 태연히 했다.

홀로 사시지만 돈이 많은 부자 할머니였다. 나는 너무도 충격적인 이야기여서 무슨 말로 대응을 해야 할지, 참으로 아득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너무도 슬픈 마음이었다. 그 슬픔 속에서도 나는 농담을 하듯 웃으며 한마디했다.

"어이그, 그러시구두 천당 가실라구 교회 댕기시는구먼유."

그 할머니가 팔순이 넘으신 연세에도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동물에 대해서 그런 생각 그런 마음밖에 못 가지고 사신다는 것이 참 딱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고양이의 번식을 통제하지 못하는 독거 노인으로서는 그게 어쩔 수 없는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밥을 주어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종이 상자에 담아 묶어가지고 산벌에다 버렸다는 그 고양이들에게 그 노인이 아무런 측은지심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내 차에 치어 심각한 장애를 입게 된 암코양이가 유독 나를 따르고 내게 정을 표해 주는 것을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녀석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어딜 갔다가 우리 집 현관에 오면 꼭 나를 찾고, 어디서든 나를 보기만 하면 야옹 소리를 낸다. 내 다리 사이를 빙빙 돌뿐만 아니라 발에 제 얼굴을 비비고 내 바지 자락에 매달리기도 한다.

나는 녀석의 불편과 고통을 이해한다. 통풍환자로서 최근에도 며칠 동안 통풍 발작에 시달렸던 나는 그 때문에 장애 암코양이가 더욱 측은하다. 옛날 시골 병원에서의 자궁 적출 수술이 잘못되어 도시 대형병원에서의 재수술에도 불구하고 방광 속에서 오줌이 새어 늘 기저귀를 차고 사시는 내 어머니의 불편을 생각하면 장애 암코양이가 한결 가엾고, 나와의 인연이 오묘하게도 느껴진다.

고양이 가족이 어디에서 밤을 넘기고 이른 아침마다 우리 집 현관으로 오는 것인지, 녀석들의 밤 처소가 참 궁금하다. 물론 그곳을 쉽게 알 수도 없겠지만,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녀석들이 추운 겨울에도 밤을 넘길 수 있는 비밀 처소가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녀석들의 비밀 처소가 온전한 상태일지 궁금하다. 장애 암코양이 때문에 어쩌면 그곳이 불결하고 젖어 있는 상태일 테니, 겨울밤에는 꽁꽁 얼어붙지나 않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오줌이 흘러서 젖어 있는 때가 많은 녀석의 사타구니 엉덩이 뒷다리를 그대로 두면 겨울철에 무사할지도 걱정이 된다 밤에 얼어붙기라도 해서 동상에라도 걸리게 되면 더욱 큰일이다.

어제는 서산의 김신환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다. 김신환 원장이 출장 중이어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나로부터 자세히 설명을 들은 김 원장은 전에 내게 충남도 수의학과 병원에 기증을 해보라고 했던 태도와는 달리 자신이 한번 상태를 보겠다고 했다. 자신이 상태를 보면 치료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으니 한번 데려와 보라는 얘기였다.

나는 희망을 갖고 있다. 녀석의 장애를 고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이다. 그것을 위해서 녀석이 특히 내게 친숙해지고 단단히 정을 들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며칠 안에 녀석을 데리고 병원에 갈 작정이다. 녀석은 종이 상자에 넣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차안 운전석 옆자리에다 종이를 깔고 녀석을 앉혀놓고 쓰다듬어 주면서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이 긴 고양이 이야기를 일단 여기에서 마무리하지만 다음에 또 한번 쓰게 되면 그때는 독자 여러분께 장애 암코양이의 치료 소식을 전해 드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깊은 관심을 갖고 나의 고양이 이야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지금 현관에서 장애 암코양이가 나를 찾고 있다. 저녁때가 돼서 배가 고픈 모양이다. 어제 아내가 학교에서 가져온 밥과 조기가 남아 있으니 적당히 데워서 맛있게 비벼 줄 생각이다. 장애 암코양이 덕분에 다른 녀석들도 복터진 팔자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녀석들에게 밥을 주면서 나는 또 그 가엾은 수놈 생각을 하겠지만….

독자들의 많은 의견 중에 고양이에게 짠 음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있었다.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는 사람의 생선 찌개 국물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또 간을 한 생선을 넣을 경우 음식을 일단 끓여서 국물을 버린 다음 다시 물을 부어 짜지 않게 해서 줄 생각이다.

고양이들의 번식에 대한 문제는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이만 몸을 일으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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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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