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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옛날에 고양이를 길러본 적이 있습니다. 안면도 매형 댁에서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며 한 마리 가져다가 길러보라고 해서, 내가 일삼아 버스 타고 가서 겨우 주먹만한 크기의 예쁜 암코양이 한 마리를 들고 와서 길렀지요.

고양이가 사람 체온을 좋아한다는 것, 주인을 알아보고 정을 표시하며 배고프면 밥 달라고 온 몸으로 조를 줄 안다는 것, 어릴 적부터 배설을 꼭 같은 장소에다 하고 흙으로 덮는다는 것, 매일같이 앞발에 침을 묻혀서 깔끔하게 세수를 한다는 것 등을 그때 알았지요.

다 자라서 어른이 된 고양이가 어느 날 홀연히 집을 나가더니 며칠 동안 나타나지를 않더군요. 집을 나가버렸는가 보다는 생각도 했고, 쥐약 같은 걸 잘못 먹고 어디 가서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요. 너무 섭섭해서 고양이는 다시 기를 만한 짐승이 못된다는 생각까지 했고….

그런데 하루 이른 아침에 고양이가 집 마당으로 들어오면서 야옹 소리를 유난히 크게 내지르더군요. 그 소리는 제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반가움에 겨운 소리라는 것을 우리 가족은 직감할 수 있었지요. 모두 깜짝 놀라 마당으로 나가서 고양이를 반겼지요. 고양이는 이 사람 저 사람의 발목에 제 몸을 비비고, 발등 위에서 뒹굴기도 하며 반가움을 표시하는데, 영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알고 보니 고양이는 발정이 나서 짝을 만나러 며칠 동안 집을 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짝과 만나서 어느 은밀한 곳에서 실컷 사랑을 나누고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우리 가족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부터 우리 집 고양이가 과연 새끼를 낳게 될 것인지, 낳게 되면 몇 마리를 낳을 것인가가 가족 모두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지요.

그 후 우리 집 고양이는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아서 잘 길렀지요. 모든 짐승이 다 그렇지만, 고양이가 제 새끼를 얼마나 아끼며 알뜰히 챙기는가를 그때 실감하며 재미있게 지켜볼 수가 있었지요.

그런데 어미 고양이가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부엌 구석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서 꼼짝도 못하는데, 코와 입에서 거품 같은 것이 생기더군요. 가축병원으로 안고 가서 수의사에게 보이고 주사까지 맞혔는데도 별무 소용, 결국 죽고 말았지요.

고양이가 죽었을 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 가운데 남동생이 훌쩍거리며 울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고양이가 죽었다고 눈물까지 흘리는 사내 꼭지가 다 있다니….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는 나도 마음이 몹시 아팠답니다. 졸지에 어미를 잃고서도 천지 분간을 못하고 저희들끼리 마루 위를 빠르게 뛰고 뒹굴며 노는 새끼들을 보자니 더욱….

어지간히 자란 새끼 세 마리를 남에게 주고 이번에는 수컷을 한 마리 남겨서 길렀는데, 이 놈도 어른이 되자 곧 제 어미 같은 식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큰 쥐를 한 마리 잡았는데, 수컷이라서 그랬는지, 쥐를 잡기만 하고 먹지는 않았던 제 어미와는 달리, 쥐를 뺐으려는 사람들을 피해 어디론가로 가서는 쥐 한 마리를 다 먹은 모양이었습니다. 그게 그만 체했는지 부엌 구석에서 꼼짝 못하고 웅크리고 앉아 코와 입에 거품을 물더니 곧 죽고 말더군요.

정들었던 고양이 모자를 어이없이 연거푸 잃은 후로 우리 가족은 다시는 고양이를 기르지 않기로 작정했지요. 주인을 알아보는 예민한 고양이가 낯선 손님이 예쁘다며 안으려고 하자 순간적으로 손을 할퀴어 상처를 입힌 일이며, 집 처마 밑에 지은 제비집을 노리다가 사람들의 감시를 피해 처마 한 옆의 선반으로 올라가서 끝내는 놀라운 점프력으로 제비집을 부순 일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작용해서 우리는 그 후 정말 다시는 고양이를 기르지 않았지요.

그로부터 20년하고도 수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 가족은 고양이라는 동물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아온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가족은 또 다시 고양이에게도 밥을 나누어주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가족이, 특히 어머니가 정성들여 밥을 주는 고양이는 자그마치 네 마리나 됩니다. 어미 고양이와 중간 정도로 자란 새끼 고양이들이지요.

어미 고양이는 애초부터 우리 집에서 기른 고양이가 아니랍니다. 비좁은 23평 연립주택이어서 집에서 고양이를 기른다는 건 아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고양이를 집 밖에다 놓고 밥만 주면서 키우는 방법 같은 것도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그런 우리가 새끼 때부터 기른 것도 아닌 고양이 가족에게 밥을 나누어주는 생활을 하게 되리라는 것은 달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지요.

주변에 고양이는 흔하지만, 우리로서는 처음 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연립주택 현관 근처에 와서 얼쩡거릴 때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뉘네 집 고양이가 잠시 집밖을 돌아다니는 거겠지 하는 정도로만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그 고양이는 우리 집 현관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보아도 피하지 않고, 사람을 볼 때마다 가냘프게 야옹 소리를 내곤 했습니다. 그 고양이의 동태를 가장 먼저 살펴본 이웃집 친구가 아무래도 먹을 것을 달라는 소리 같다며 고등어 토막 하나를 갖다 주었습니다.

고양이는 고맙다는 뜻인지 뭔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등어 토막을 맛있게 먹었고, 그 광경을 내 어머니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고양이가 홀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새끼를 밴 야생 고양이가 배가 고파서, 또는 새끼 낳을 때를 대비해서 좀더 안전한 곳을 찾아 인가 근처로 온 것인지, 어느 집에서 살다가 박대를 견디지 못해 가출을 한 것인지, 하여간 홀몸이 아닌 고양이가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 사정을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고양이의 과거 사연이 어찌되었든 더 중요한 것은 고양이의 현재였습니다. 고양이가 우리 집 현관을 새로운 거처로 삼고 살아갈 눈치임은 누가 봐도 분명한 것 같았습니다.

고양이에게 그만의 무슨 특별한 '감'이 있어서 우리 집 현관으로 이끌려오고 새 거처로 삼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양이의 그런 마음을 무조건 거부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주 박절하게 호통을 치고 발이라도 구르며 쫓아버린다면 기겁을 하고 달아나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차마 그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고양이가 낯선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우리 집 현관을 새 거처로 삼는 것을 기특하게 여겼고, 더욱이 그가 새끼를 밴 몸이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지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고양이를 먹이는 일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음식상에 생선 음식이 오르는 날엔 고양이에게 줄 것을 따로 챙겼고, 하다못해 고추 졸임 속의 멸치라도 골라서 생선 국물이나 찌개 국물로 밥을 비벼 아침저녁으로 고양이에게 주곤 했습니다.

현관 문 앞에는 고양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이 따로 마련되었는데, 어머니는 물그릇도 항시 마르지 않도록 수시로 신경을 쓰곤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고양이 팔자야말로 상팔자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처럼 목줄에 매이지도 않고, 소나 돼지처럼 우리 안에 갇혀 살다가 푸줏간으로 가는 신세도 아니고….

그런데 고양이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더군요. 어머니는 고양이가 아주 어디로 가버린 게 아니라, 아무래도 비밀 장소에서 새끼를 낳은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새끼를 낳은 후 며칠 동안은 산후 조리도 하고 갓난 새끼들을 보살피느라 꼼짝도 하지 않을 거라며….

어머니의 예상대로 3일쯤 후에 다시 나타난 고양이는 몸이 홀쭉해진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몸을 푼 고양이가 새끼들에게 수시로 젖을 빨릴 것을 생각하고 고양이 먹이에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우리 가족은 고양이가 어디에서 새끼를 낳았는지 그 은밀한 장소가 몹시 궁금했지만 부러 찾아보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한 열흘쯤 후부터 우리는 새끼 고양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새끼는 모두 세 마리였습니다. 검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놈이 두 마리, 흰색과 노란색이 뒤섞인 놈이 한 마리였습니다.

그런데 새끼 고양이들은 처음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인지 사람들을 무서워했습니다. 현관에까지 어미를 따라와서 젖을 빨고 있다가도 사람만 나타났다 하면 잽싸게 달아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꽤 자라서 사람이 주는 밥도 먹고 있는 지금은, 두 마리는 비교적 느긋한 모습인데 반해 노란 털을 가진 놈은 여전히 겁이 많고 방정스러운 모습입니다. 그 놈을 보고 내 아들녀석이 저 놈은 아무래도 '여자'일 거라고 해서, 그리고 딸아이가 즉각적으로 반박을 해서 모두 웃었지요.

식구가 늘었다고 고양이 밥그릇을 좀더 큰 것으로 교체한 어머니는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고양이들에게 밥을 줍니다. 밥을 갖다줄 때마다 기다리고 있던 어미 고양이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면 새끼들이 일제히 순식간에 쪼르르 달려오는 것이 어머니는 참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고양이의 모성애는 좀더 유다른 것 같습니다. 새끼들이 밥을 배불리 먹고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맨 나중에 먹기도 하고, 새끼들과 머리를 맞대고 사이좋게 먹기도 합니다. 전에 개를 기를 때 본 것인데, 개는 제 새끼도 밥그릇에 접근하면 무섭게 으르렁거리던데….

새끼 고양이들은 꽤 자라서 밥을 먹는 지금도 어미젖을 빱니다. 세 놈이 엎드려서 한꺼번에 어미젖을 빨고 있는 것을 보면 귀엽기는커녕 미운 생각마저 듭니다, 너무 염치없는 놈들 같습니다. 어미가 언제까지 새끼들에게 젖을 줄 것인지 절로 궁금해지는 마음이고….

하지만 새끼 세 마리가 어미 품속에 얼굴을 묻고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참 평화롭다는 느낌이 절로 들고, 나도 잠시나마 아늑하고 포근한 마음이 되곤 합니다.

어머니는 다 큰 새끼들에게 계속 젖을 빨리는 어미 고양이를 가엾게 여겨서 젖이 잘 나도록 먹이에 더욱 신경을 쓰시지만, 밥을 하루에 두 번 이상은 주지 않습니다. 어미 고양이가 유독 어머니에게만, 어머니를 보면 낮에도 밥을 달라고 다리에 몸을 부딪치며 조르지만, 일하지 않는 짐승이 사람처럼 세 끼를 먹을 수는 없노라는 것이 어머니의 생각이지요.

어쨌거나 나로서는 새끼 고양이들이 언제 독립해나갈 것인지, 그게 궁금합니다. 어미가 적당한 시기에 새끼들을 쫓아낼 것인지, 살 곳을 정해서 한 마리씩 제금을 내줄 것인지, 새끼들이 스스로 어미 곁을 떠나갈 것인지, 두루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미 고양이가 언제까지 우리 집 현관에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 것인지도 궁금하고, 새끼들의 장래가 괜히 걱정되기도 합니다.

요즘은 야생 고양이들이 참 많은 시절입니다. 가출 고양이들이 늘어나면서 야생 고양이가 많아졌다고 하는데, 그 들고양이들 때문에 자연 생태계가 더욱 심각하게 파괴되어 가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차를 타고 시골 아스팔트길을 달리다보면 차에 치어 죽은 고양이를 많이 보게 됩니다. 나는 아직 고양이를 죽인 적은 없고 한꺼번에 족제비 두 마리를 죽인 적은 있지만, 고양이 죽은 것을 참 심심찮게 보지요.

야생 고양이 확산, 자연 생태계 파괴, 시골 아스팔트길에서 무수히 죽는 고양이들…. 그것을 생각하면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새끼 밴 몸으로 우리 집 현관으로 찾아든 고양이를 거두어 주고, 지금은 그 새끼들까지 내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음식을 챙겨 먹이고는 있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현재의 모습에도 어떤 형태로든 변화는 올 것입니다.

그 변화가 언제 어떤 형태로 올 것인지, 그것 역시 내 궁금 사항이고, 사람인 내가 고양이 몫까지 걱정을 해줘야 할 일이지만, 어떤 변화든 평화스러움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변화였으면 좋겠습니다. 막연한 대로, 그것도 요즘의 내 또 한 가지 희망이라면 희망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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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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