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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문제로 한동안 신경을 많이 썼더니 통풍과 당뇨로 시달리는 몸에 다소 무리가 왔는지 심신이 꽤나 피로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연립주택 한쪽 현관을 공유하고 있는 네 집이)당면하고 있는 고양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다.

어제는 앞집 은옥 아빠와 함께 가루비누를 섞은 물로 현관을 깨끗이 씻어내는 일을 했다. 고양이 똥과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현관 한구석에 두꺼운 스티로폼 조각을 깔고 그 위에 빈 포대와 수건을 두툼하게 깔아주었다.

저녁밥도 갈치 국물과 조기 대가리와 멸치들을 많이 넣고 버무려 푸짐하게 주었다. 어미고양이와 세 마리의 새끼고양이, 그리고 어디서 오는지 모를 또 한 마리의 새끼고양이까지 맛있게 밥을 먹는 것을 한참 동안 쪼그리고 앉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내가 기르지도 않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떠돌이 고양이 가족을 보살펴주는 어려움을 잠시 잊는 듯싶기도 했다. 이웃들의 눈치를 보고 조금씩 갈등을 겪기도 하는 상황 속에서 언제까지 이 노릇을 계속해야 할지 다시금 난감해지는 가운데서도 잠시 평화를 얻는 듯했다.

식사를 마친 고양이들이 내가 새로 마련해준 잠자리 위로 올라가서 제각기 앞발에 침을 묻혀 얼굴을 닦은 다음 서로 정답게 나란히 앉아 내 지켜보는 눈을 가끔은 마주보기도 하면서 졸음을 즐기는 안온한 모습들을 보자니 슬몃 흐뭇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동물은 조물주께서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축복'이라는 말도 절로 상기되었고, 자꾸만 그 말을 되뇌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동네의 가로등과 방범등들을 끄러 집 문을 열고 현관으로 나서는 순간 다시 퀴퀴한 냄새를 맡아야 했다. 두툼하게 수건까지 깔아준 고양이들의 잠자리는 난장판이 된 가운데 여기저기에 똥이 있었다. 새 잠자리에다 마구 똥을 싸놓는 놈들의 미련한 소행머리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이지 실망과 배신감이 컸다.

누가 볼세라 서둘러 똥을 치웠지만, 수건과 포대와 스티로폼에 단단히 늘어붙은 똥의 일부는 떨어지지도 않았다. 결국 잠자리를 통째로 치워버렸지만, 현관의 냄새까지 다시금 온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일부러 아침밥은 제 시간에 주지 않았다. 놈들이 미워서이기도 했지만, 깨끗이 대청소를 한 현관 구석의 새 잠자리에다 똥을 싼 놈들에게 아침밥까지 주는 내 행위를 이웃들이 어떻게 볼지 염려되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아침에 집밖으로 나온 앞집 은옥엄마는 현관 구석의 퀴퀴한 냄새에 속이 상했는지 내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불평을 했다.

이윽고 직장으로 어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출을 한 다음에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게 되었는데, 내가 특별히 신경을 쓰는 다리 다친 놈은 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그놈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어머니의 채근에 그냥 밥을 주고 말았는데, 오늘 아침에도 몇 번이나 집 문을 들락거렸는지 모른다. 그 놈이 지금쯤은 와서 밥을 먹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인데, 여전히 그놈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 동안 고양이들을 적극적으로 보살피는 나를 이웃들이 참고 이해해 준 것은 내 차에 치어 다리를 다친 고양이에 대한 내 고심과 상심을 잘 알고 있는 탓이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다리를 다친 고양이에게 신경을 썼다.

그 놈이 내 차에 치어 다리를 다친 즉시 그 놈을 붙잡아 동물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은 것은 솔직히 내 불찰이었다. 그 당시의 바빴던 상황을 가지고 구구하게 변명을 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다리를 다친 그 놈이 이틀 동안이나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를 않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즉 처음 그 놈을 붙잡았을 때 곧바로 동물병원으로 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내 불찰을 인정한다.

다리를 다치고도 그 놈의 행동 반경이 의외로 넓다는 점과 별로 크게 통증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는 내 일방적인 생각이 안이한 행동의 일차적인 원인이겠지만, 만사 제껴놓고 고양이 치료에 나설 수 있으리만큼 내 사정이 좋지 않았다는 것도 주요 원인일 것 같다.

일찌감치 태안의 두 개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치료 방법을 물었다. 태안의 두 개 병원에서는 고양이의 골절 치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X레이 촬영 시설을 갖춘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해야한다며, 서산으로 가보라고 했다.

서산까지 가는 일은, 상황에 따라서는 중대한 일이었다. 집에서 글을 쓰며 사는 처지라 해서 마냥 늘어진 팔자인 것만은 아니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 바쁘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 놈을 붙잡아 서산의 전문병원에 데려갈 궁리를 계속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내가 짬을 내어 그 놈을 찾을 때는 번번이 보이질 않았다. 그 놈을 붙잡을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바삐 글을 쓰다가도 자주 밖에 나가보곤 했다. 한 번은 아침밥을 줄 때 그 놈이 밥을 먹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손쉽게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종이상자에 넣는 순간 겁을 집어먹은 그 놈이 몹시 앙탈하는 바람에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은 하루종일 놈이 보이지를 않았다.

서산의 전문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방법을 물으니 놈을 붙잡기가 어려우면 수면제를 먹여보라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서산의 동물병원으로 달려가서 수면제를 얻어오기도 했다. 수면제를 그놈에게만 먹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잠시 고심을 하기도 했으나, 밤에 잠자리를 찾아 현관으로 들어온 그 놈을 다시 쉽게 붙잡을 수가 있었다.

밤에 서산의 김신환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퇴근을 늦추도록 부탁하고 빗길을 달려갔다. 서산의 김신환동물병원은 천연기념물 지정병원이기도 했다. 김신환 원장은 수의사로서 남다른 분이었다. 부상을 당한 야생동물과 야생조류들을 치료하여 야생으로 돌려보낸 수많은 사례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둔 분이기도 하다.

야생동물과 야생조류들의 부상 상태와 치료 과정, 완치 후의 모습, 그리고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장면들을 사진으로 담아 전시회를 연 적도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자연사랑, 환경보호 운동의 아름다운 실체일 터였다.

나는 고양이 덕에 서산의 수의사 김신환 선생과 실로 오랜만에 (5년도 넘었지 아마)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김신환 원장은 내 심성을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수술대 위에 놓인 종이상자를 여는 순간 훌쩍 뛰어나와서 치료실 구석에 숨어버리는 고양이를 보더니, "저런 상태라면 이미 치료 시기가 지났거나 치료가 필요 없겠는데요"라고 했다.

고양이를 붙잡아 자세히 살펴본 김 원장은 "이미 뼈가 굳어서 통증은 전혀 없는 상태고, 돌아다니는 데도 별 지장이 없으니 그냥 그대로 살도록 놓아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움직일 때는 다친 다리를 끌고 다니기야 하지만, 앉을 때는 다리를 제대로 접기도 하니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 치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정 마음이 불편하면 대전에 가는 길에 충남대 수의학과 병원에 맡겨보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떠돌이 고양이 가족을 보살피는 요즘의 내 상황과 그런 탓에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내 차에 치어 다리를 다친 후로 내가 더욱 고양이들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정을 설명하니, 도둑고양이들은 습성상 때가 되면 다 떠나게 된다며, 억지로 내쫓지는 말고 스스로 떠나는 날까지 잘 먹이고 보살펴주면 그것도 하늘에 업을 쌓는 일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김 원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씨익 웃었다.

다리를 다친 고양이는 내가 집안에 들여놓고 기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해도 그 놈 역시 때가 되면 떠날 거라고 했다. 본의 아니게 고양이를 치어 다리를 다치게 했지만 그 바람에 더욱 도둑고양이들을 그렇게 알뜰히 보살펴주니, 동물을 사랑하는 척 고양이를 기르다가 싫증이 나거나 처리가 곤란해지면 차에 싣고 와서 시골 산길에다가 슬그머니 버리고 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완전히 '신선'이라는 말로 김 원장은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 웹상에 올린 <내 차로 고양이를 치고>라는 내 글에 대한 일부 '독자의견'들의 난폭성도 잠시 화제에 올랐다. 김 원장은 우리 한국인들의 성급한 근성을 거기에서도 본다고 했다. 여러 사람이 병원에 들어왔을 때 맨 먼저 들어온 사람과의 상담을 나머지 사람들이 차분히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 사람과의 상담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 저 사람이 말을 걸고 때로는 기다리지 못하고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어떤 사물이나 사안에 대해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판별하기보다는 한 가지 부분에만 집착하여 금세 흥분을 하고, 사이버 상의 익명 뒤에 숨어서 마구 욕설도 해대는 것은 너무 비겁한 행위라는 말도 나왔다.

나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착하지 않은 사람 없다'는 말에 대체로 동감한다. 그러나 그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온전히 착한 심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나이 먹은 사람에게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지혜도 지녀야 한다. 그래야 그는 진정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다.

언젠가 한번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데, 한 아가씨가 애완견을 안고 들어왔다. 자리를 찾다가 내 앞자리에 앉으면서 내게 양해를 구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에는 내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개를 식탁 위에 앉혀놓더니 가방 속에서 먹을 것을 꺼내주는 것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놓고 아가씨에게 말했다.
"아가씨는 동물을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군요. 진정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타인에 대한 예의도 지녀야 하지요. 그런 식으로 개를 사랑하지 말아요. 괜히 개까지 욕먹어요."

그러자 아가씨는 화난 표정으로 개를 안고 발딱 일어서더니 마침 한 일행이 일어선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최근의 내 고양이 관련 글들의 무척 많은 조회수와 적극적인 '독자 의견'들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 사회에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에서 일단은 좋은 느낌을 얻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마음이 착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도 해봄직하다고 본다.

한편으로 나는 그런 사람들이 동물 쪽으로만 자신의 관심이나 애정을 묶어두지 말고, 우리 사회의 불우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동물을 사랑할 줄은 알면서 같은 사람의 불행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관심하거나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더불어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착한 심성을 잘 발전시켜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도 크게 눈을 뜨게 되기를 바란다.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고, 옳고 그름을 적극적으로 판별하려고 애를 쓰고, 때로는 '의로운 분노'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살기를 바란다.

다리를 다친 고양이는 요즘 내게는 물론이고, 고양이 똥 냄새를 몹시 싫어하는 앞집 은옥엄마에게도 조금씩 희망을 주고 있다. 자주 다리를 접고 앉는 모습이, 그리고 때로는 앉았던 그대로 일어서기도 하는 모습이 '자연 치유'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은옥엄마는 그 놈의 다리가 괜찮게 되면 고양이 가족을 내쫓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저러나 오늘밤도, 내일 아침도 걱정이다. 낮 동안 햇볕에 말린 놈들의 잠자리를 저녁에는 현관 안 한구석에 들여놓아 주어야 할 텐데, 내일 아침에는 잠자리에다가 싸놓은 놈들의 똥을 다시 볼 게 뻔하다. 처음에는 다리를 다친 놈의 소행인 줄 알았는데, 똥의 양으로 보아서는 한 놈 짓이 아닌 게 분명하다. 그 버릇을 어떻게 고쳐줘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날이 더 추워지면 스티로폼 상자를 이용하여 정말 아늑하고 안온한 잠자리를 만들어줄 마음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이웃들이 눈감아준다 하더라도, 놈들이 그 잠자리마저 난장판으로 만드는 짓을 계속한다면, 그땐 그것을 또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도둑고양이들과 관련하는 요즘의 내 상황은 또 무슨 업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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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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