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 고양이를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지난해 11월과 12월초 몇 번에 걸쳐 쓴 나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는 분들이 없지 않다는 것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여러분이 내게 메일을 보내 왔다. '장애 암코양이'의 건강이나 치료 여부를 궁금해하는 분도 있었고, 내가 멀리에 갖다 버린 형국이 된 '수놈 고양이'의 안부랄까, 그후 소식을 알고 싶어하는 분도 있었다. 모두 나의 고양이 이야기를 한번 더 듣고 싶어하는 분들이었다.
그런 차에 며칠 전에는 서울 MBC방송사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내가 밥을 주고 있는 고양이들을 방송에 소개하고 싶다는, 촬영 허락을 요청하는 말이었다. 조금은 면구스럽고 번거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내가 밥을 주고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과 함께 나의 '고양이 이야기'가 미구에 텔레비전 전파를 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에 앞서 내게 메일을 보내 주신 분들의 궁금증을 풀어 드리는 일이 옳은 순서일 것 같아 고양이 이야기를 한번 더 쓰기로 했다.
지난주일(19일)엔 점심 회식이 있었다. 며칠 후에 다른 곳으로 가시게 된 신부님과 50여명의 신자들이 오전 교중미사 후에 가까운 음식점으로 가서 된장찌개로 간단하게 송별 회식을 했다.
된장찌개에는 여러 가지 반찬이 오르게 마련인데, 그 중에는 조기와 놀래미도 있었다. 얼간을 해서 말린 조기는 굽고, 놀래미는 찐 것 같았는데, 별로 짜지 않아서 먹을 만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반찬이 많다보니 상마다 조기와 놀래미가 조금씩 남는 것 같았다. 아무리 충실히 먹는다 해도 대가리는 남게 마련이었다.
모두 식사를 마쳤을 때 나는 미리 준비해 간 비닐 봉지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상마다 돌아다니며 생선 접시의 남은 것들을 비닐 봉지에 담았다.
당연히 내게 묻는 말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개를 기르느냐는 물음들이었다. 내가 고양이들에게 주려고 그런다고 답하면, 고양이를 몇 마리나 기르기에 그렇게 정성으로 남은 생선들을 모두 거두느냐는 물음도 나오곤 했다. 그런 물음 속에는 그렇게 고양이를 많이 길러서 뭐에 쓰려느냐는, 일종의 의구심 같은 것도 깔려 있을 터였다.
"내가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들이 아니구, 밖에서 사는 고양이 네 마리가 매일 아침저녁으루 나헌티 밥을 얻어먹으러 와서 그류."
"그럼, 도둑괭이들이라는 얘기네. 그렇게 도둑괭이들을 길러서 뭐헌디야?"
"요새 워디나 헐 것 읎이 도둑괭이들이 너무 많어서 탈인디…."
"그거 사람헌티 별루 이(利)되는 짐승두 아닌디…. 키워서 잡어먹기를 헐 팅가…."
"그렇게 사람이 밥을 주어 버릇허면, 노상 밥 얻어먹으러 오지. 쥐두 안 잡구…."
"귀찮은 그 노릇을 맨날 워치게 헌디야?"
주로 이런 말들을 나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나한테 한 말이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한 말이기도 하고….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도 나는 한 상도 빼놓지 않고 남은 생선을 모두 거두었다. 제법 큰 봉지가 절반도 넘게 차서 묵직할 정도였다. 네 마리 고양이들에게 열흘 이상 나누어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질문들에 딱 부러지게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뭔가 모호하고 난감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언제까지 도둑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것인지, 놈들이 또 새끼를 낳아서 그 새끼들까지 데리고 오는 날이면 어떻게 할 것인지, 도둑고양이들을 여러 마리씩 거두어 주고 있는 이 노릇이 궁극적으로 옳은 것인지….
번식을 할 수밖에 없는 고양이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계속적으로 밥을 주고 있는 나 자신이 모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난해 여름부터 주어오던 밥을 어느 날 갑자기 주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침마다 우리 집 현관으로 와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나를 보면 반가운 몸짓을 하고, 동네 가로등과 방범등들을 끄러 다니는 나를 따라 다니기도 하는 녀석들을 박절하게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는 오지 못하게 마구 호통을 치며 쫓아버릴 수 있을 만큼 내 심성이 모진 것도 아니고, 설령 그런다고 해서 고양이들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며칠 동안만 계속 밥을 주지 않으면 놈들이 오지 않을 거라는 이웃들의 말을 믿을 수도 없거니와 계속 밥을 주지 않는 과정에서 녀석들의 허기진 처량한 모습을 참고 볼 만한 용기나 배짱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도리 없이 고양이들에게 밥을 준다. 그들 역시 조물주께서 조성하신 생명이고, 밖에서 살기는 할 망정 사람 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할 동물이고, 나와 그들이 만나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며 함께 사는 것도 다 인연이니, 계속해서 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장애 암코양이에 관해서 말하겠다.
차에 치여 다친 녀석의 다리는 이제 거의 정상을 되찾은 것 같다. 처음에는 다친 뒷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고, 한동안은 들고 다니고, 또 한동안은 발등으로 걷기도 했는데, 이제는 발바닥으로 정상적으로 걷는다. 다리 관절의 뒷부분이 약간 튀어나오고 발이 좀 커지기는 했지만 불편함은 얻는 것 같다. 절룩이지도 않고, 날렵하게 달리기도 잘한다. 녀석이 문제없이 순식간에 나무를 오르는 것을 보는 순간 어찌나 반가웠든지…. 완전히 자연 치유가 된 것 같다.
녀석이 아무 데나 함부로 똥을 싸는 일도 없어졌다. 물똥도 싸지 않는다. 그리고 오줌을 흘리는 것도 현저히 줄었다.
나는 지난해말 녀석을 서산의 동물병원에 데리고 갈 계획을 세우고, 김신환 원장에게 전화도 해놓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관찰을 해보니 오줌의 새는 양이 점점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 치유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녀석은 내 기대에 부응하듯 뒷다리 사타구니가 젖어 있는 때보다는 말라 있는 때가 더 많았다. 녀석이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릴 때도 내가 굳이 다리를 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녀석을 안아서 사타구니를 벌리고 보면, 털 밖으로 온통 노출되었던 생식기도 크기가 줄어든 것 같고, 젖어 있지 않은 때가 많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녀석을 안았을 때 지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 것과 녀석의 몸을 쓰다듬어 주어도 내 손에 냄새가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로서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다. 끝내 완전히 치유가 되지 않을 때는 병원행을 해야겠지만, 나는 고양이에게 자연 치유의 가능성이나 여지가 어디까지일지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조물주의 선물이기도 할 그것을, 놀라운 자연 치유 능력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머니와 앞집 은옥 엄마는 장애 암코양이가 다리도 낫고 생식기의 고장도 치유가 되어 가는 것은 내가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생선 따위 좋은 음식을 지성으로 잘 챙겨 먹여서 그럴 거라는 말을 한다. 고양이들이 하나같이 오동통하고 털빛이 좋은 것은 내가 먹이는 맛있는 음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장애 암코양이 자신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녀석은 안쓰러울 정도로 노상 사타구니를 핥고 했으니까….
다음은 내가 멀리에 갖다 버린 형국이 된 수코양이 이야기.
그 수놈 고양이 때문에 계속 상심을 안고 있던 어느 주일, 성당에서 사돈어른님을 뵙는 자리에서 그 고양이가 계속 보이지 않는지를 슬며시 여쭈어보았다. 그랬더니 사돈어른이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
"너무 걱정 말유. 그 고양이가 우리 집일 와서 밥을 먹구 가유."
"그류이잉?"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 수놈 고양이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여 사람이 보이면 잽싸게 모습을 감추지만, 밥그릇에다 밥을 담아서 토방에다 놓아두면 어느 사이엔지 녀석이 와서 먹고 가곤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도 밥을 주고 있는 고양이는 모두 네 마리다. 한 마리는 수놈이고 세 마리는 암놈이다. 암놈 한 마리는 어미이고, 암놈 두 마리는 새끼다.
새끼들은 이제 완전히 자라서 어미는 새끼들을 돌보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닭고기 한 점을 물고 현관으로 와서 새끼들을 부르는 것을 보았지만(끝내 새끼들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자신이 먹어버렸다), 새끼들을 핥아주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그것은 어쩌면 장애 암코양이의 자연 치유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미 고양이는 내 앞에서 곧잘 몸을 뒹구는 등 애교를 부리기는 하지만 내 다리에 매달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역시 노숙하고 점잖은 감을 준다.
장애 암코양이는 여전히 먼발치에서 나를 보기만 해도 야옹 소리를 낸다. 나를 보기만 하면 쫓아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 발등에 얼굴을 비비고 바지 자락에 매달리기도 하며 아양이 여간 아니다. 처음에는 앞발로만 내 바지자락에 매달리더니 이제는 네 발을 다 동원한다. 그러니 녀석이 귀엽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 저 할 나름이라는 생각을 하며 녀석을 특별히 귀여워해 준다. 녀석이 현관에 혼자 있을 때는 밥을 주지 않는 점심때도 녀석에게만은 생선 토막을 갖다주곤 한다.
새끼 암코양이 한 마리는 밥을 줄 때는 내 다리 사이를 통과하며 나를 전혀 경계하지 않지만, 밥을 먹지 않을 때는 나를 피하곤 한다. 밥 달라고 조를 줄은 알면서 내 앞에서 애교를 떠는 법도 없다. 밥 먹을 때 아니고는 내가 놈을 붙잡을 수도 없다. 그러니 녀석에게는 별로 정이 가지 않는다.
딴 배 새끼인 수놈 고양이는 여전히 미운 놈이다. 밥을 먹을 때 말고는 밥을 주는 나까지도 경계를 하는데, 현관에 있다가 내가 나타나는 순간 획 달아나는 때도 있다. 그러니 놈에게는 정을 주고 싶지 않다.
이처럼 고양이 네 마리는 성격이 다 다르다. 나에게서 똑같이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나와의 정이나 친숙성이 각기 다 다른 것이 나는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나는 장애 암코양이를 편애하는 편이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때 장애 암코양이가 함께 있으면 지체없이 주지만, 녀석이 보이지 않으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기도 한다.
어제 저녁에는 좀 재미있는 장면을 보았다. 밥을 그릇 두 개에다 나누지 않고 하나에다만 주었는데 수놈 고양이의 밥 먹는 모습이 너무 사나웠다. 위협하는 소리를 내면서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에 미운 마음이 들어 빈 냄비로 녀석의 머리를 쳤다. 녀석이 놀라 달아나는 서슬에 모두 몸을 움츠렸는데, 다른 녀석들은 순간적으로 내 행동의 표적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 같았다. 저만치 달아났던 수놈 고양이가 다시 밥을 먹는 녀석들 곁으로 다가오는데 놈은 내 눈치만 보는 게 아니었다. 녀석이 조심스럽게 다가오자 암놈 어미 고양이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앞발로 치는 듯한 동작을 했다. 그러자 녀석은 피하듯 몸을 돌리더니, 나보다도 암놈 어미 고양이 눈치를 더 살피는 것이었다.
요즘은 겨울철이라 고양이들에게 밥을 따뜻하게 해서 준다. 음식점에서 가져온 소금기 있는 생선을 일단 끓여 그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밥을 말아준다는 얘기는 지난번 글에 기록했다. 매일 그렇게 하자니 가스 소모도 많다는 어머니와 아내의 푸념을 듣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것은 이미 나의 고정적인 일과가 되어 버렸다.
그 노릇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는 나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