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경선을 통해 선출된 유승민 원내대표(가운데)를 경쟁상대였던 이주영 의원이 끌어안는 가운데 김무성 대표가 박수를 치고 있다.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경선을 통해 선출된 유승민 원내대표(가운데)를 경쟁상대였던 이주영 의원이 끌어안는 가운데 김무성 대표가 박수를 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여권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탈박'(脫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2일 차기 원내대표로 선출된 데 따른 결과다. 이로써 새누리당의 '투톱'(당 대표·원내대표)은 모두 비주류가 장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기도 전에 집권여당이 청와대를 벗어나기 시작한 셈이다. 2012년 총·대선 이후 당을 견고하게 장악했던 친박의 퇴조는 더욱 뚜렷해졌다.

무엇보다 유 의원은 이날 친박 홍문종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택한 '범박'(凡朴) 이주영 의원을 19표 차로 꺾었다. 이는 19대 국회 들어 총 네 차례 치러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중 가장 큰 표차다(관련기사 : '탈박' 유승민 "대통령도 이제 민심에 귀 기울여달라").

2012년 원내대표 경선 때에는 이한구 원내대표 후보가 6표 차로 신승했고, 2013년 원내대표 경선 당시엔 최경환 원내대표 후보가 8표 차로 이겼다. 전임 원내대표였던 이완구 새 국무총리 후보자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차출·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차출 등의 상황과 맞물리며 무투표로 합의·추대됐다.

앞서 치러졌던 경선의 주요 쟁점 역시 해당 후보자와 박근혜 대통령 간의 거리였음을 감안하면 이번 경선결과는 당내 여론이 급속하게 박 대통령에게서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청와대는 국무회의를 하루 연기하면서 국무위원을 겸하고 있는 의원들(최경환 경제부총리·황우여 교육부총리·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까지 투표에 참여하게 했다(관련기사 : '국무위원도 투표 가능'... '박심' 당내 선거 개입 논란).

'박심'(朴心. 박 대통령의 의중) 논란까지 감수한 결정이었지만 이번 경선결과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오히려 당청관계의 변화만 예고한 꼴이 됐다.

2011년 '비주류' 원내대표 당선, 4년 만에 재현됐다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가운데)가 경선을 통해 선출된 유승민 원내대표(오른쪽), 원유철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와 함께 손을 맞잡아 들고 인사하고 있다.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가운데)가 경선을 통해 선출된 유승민 원내대표(오른쪽), 원유철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와 함께 손을 맞잡아 들고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런 선택을 한 까닭은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일 발표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정례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1.9%포인트 하락한 32.2%를 기록했다. 3주 연속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한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 지지율은 같은 조사에서 3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2.7%포인트 하락한 35.9%를 기록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전주 대비 5.3%포인트 상승한 27.5%를 기록했다(1월 26~30일 전국 성인남녀 2500명 유무선 RDD 전화면접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즉,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 비선실세 의혹·연말정산 세금폭탄 등 연이은 악재가 이어지면서 선거 환경 자체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생존을 위해서라도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다.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11년 5월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 때도 위기가 변화를 이끌어냈다. '비주류' 황우여 당시 원내대표 후보는 '주류' 안경률 후보를 26표 차로 꺾었다. 4·27 재보궐선거 참패로 당내에서 차기 총선 패배 위기감이 고조됐고, 계파 이해에서 벗어난 소장개혁파는 친박과 힘을 합쳐 비주류 원내대표를 만들어냈다. 이는 이후 당내 친이계의 퇴조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과도 연결됐다(관련기사 : '90대64' 전세 역전된 한나라당, 쇄신 탄력받을까).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유승민 후보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정책위의장 후보로 나선 원유철 의원.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유승민 후보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정책위의장 후보로 나선 원유철 의원.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유승민 의원은 이날 경선 합동토론회에서도 변화를 줄곧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불신과 분노를 알아듣지 못하고 이대로 간다면 내년 총선은 정말 어려워진다"라며 "우리가 다수당이 되지 못한다면 무슨 수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할 수 있겠나"라고 주장했다.

이주영 의원은 위기상황을 인정하면서도 안정적인 당청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맞섰다. 특히 이 의원은 "당청이 공멸했던 열린우리당·노무현 청와대 때를 보면 안다"라며 "'계급장 떼고 끝장토론해보자' 말은 좋았지만 콩가루 집안이 됐고 대선필패로 이어졌다"라고 강조했다.

당 지도부를 비주류로 채우면 나타날 수 있는 당청 갈등을 구체적으로 짚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유 의원은 "진정으로 청와대와 소통해서 찹쌀떡을 만들 것이다, 찹쌀가루 집안을 확실하게 만들겠다"라고 맞받아쳤다. 또 "콩가루냐, 찹쌀가루냐 했는데 성난 국민 민심이 이 선거결과를 어떻게 판단할지 꼭 생각해달라"라면서 "당청이 함께 살려면 이제까지 하던 방식으로 해선 곤란하다"라고 못 박았다.

결국 의원들에게 통한 것은 '안정'이 아닌 '변화'였다. 유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의원들의 위기의식, 민심에 대한 의원들의 반성이 표에 많이 반영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자평했다. 

당청, 증세·개헌·연금개편 등 곳곳에서 갈등 예상

변화는 당청관계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유 의원은 김무성 당 대표와 함께 '문건유출 사태의 배후'로 지목될 만큼 청와대의 견제를 받았다(관련기사 : 당-청 민낯 드러낸 '수첩 파동', 이대로 끝인가). 당장 당청관계가 '긴장모드'로 전환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유 의원도 "이제까지 당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같이 들어가서 서로 긴밀하게 논의하는 게 없어서 여러 가지 정책이나 인사나 소통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어제 마침 (청와대에서) 당정청 협조체제를 강조하셨기 때문에 바로 청와대나 정부에 연락해서 더 자주 소통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앞서 공언했던 '당 중심의 당청관계'를 관철하겠다는 얘기다.

특히 새 원내지도부는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두고 정면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즉, 세금·복지와 연관된 건강보험료 체계 개편·국공립 어린이집 증설 등 정부의 각종 정책에 일단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유 의원은 이날 후보자 상호토론에서도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원 발굴을 통해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고 했지만 다 실패했다, 세무조사만 많이 해서 원망만 들었다"라며 "박 대통령을 설득해 기조를 바꿔야 하고, 여야가 타협해 큰 방향을 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한 일문일답에서도 "당장 세금을 올릴 생각은 전혀 없다"라면서도 "'증세 없는 복지'라는 정부 기조에 대해 국민들께서 정직하지 못하다, 증세 없이 과연 (현 수준의) 복지가 가능하냐 말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당내 여론도 이 같은 유 의원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초·재선 의원모임인 '아침소리'는 이날 "비과세 감면 축소 등 박근혜식 소극적 증세로는 복지재정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적극적인 증세 얘기도 나온다"라면서 "당청 간 논의를 주도해 증세 문제에 대한 국민적 논란을 조속히 불식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총리후보자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선출을 위한 투표는 하지 않은 채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이들 뒤로 투표를 위해 길게 줄을 선 의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총리후보자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선출을 위한 투표는 하지 않은 채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이들 뒤로 투표를 위해 길게 줄을 선 의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개헌'도 또 다른 쟁점이다. 전임 원내대표인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야당과 당내 일각의 개헌특위 구성 요구를 철저히 '방어'했다. 즉, 박 대통령이 밝힌 '개헌=블랙홀' 가이드라인에 부합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유 의원은 상대적으로 개헌 요구에 유연한 편이다. 그는 전날(1일) 기자회견 당시 "개헌 문제가 계파 문제로 인식되면 부끄러운 일"이라면서도 "1987년 헌법이 30년 가까이 지난 오늘, 무엇이 국민과 국가 장래를 위해 필요한지 초점을 맞춘 토론이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당장 뭔가 원포인트 개헌을 해야 한다든가 논의조차 하면 안 된다는 두 가지 태도 모두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유 의원은 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여든 야든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헌에 대한 자기 소신을 밝히고 활발히 토론하는 것이야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특위·국민대타협기구로 '투 트랙' 가동 중인 공무원연금 개편문제도 주목할 만하다. 유 의원은 지난 1월 말 기자간담회에서 "공무원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보려고 한다"라면서 "새누리당 안을 한 글자도 못 고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론에 따라 연금 개편안의 내용과 그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연금개편을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한 청와대와 충돌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원내대표에 당선된 유승민 의원의 인사말을 들으며 미소 짓고 있다.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원내대표에 당선된 유승민 의원의 인사말을 들으며 미소 짓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청와대, '김기춘 교체+알파'로 당 다독일까

한편, 새로운 원내지도부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도 주목된다. 특히 청와대는 정무특보 및 해양수산부 장관 등 후속 인사조치를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교체 가능성도 크다. 이는 당내에서도 비등한 청와대 인적쇄신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신설된 정무특보를 통해 '불통' 논란을 빚은 당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유 의원은 2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적쇄신은 내가 얘기 안 해도 국민들의 요구가 굉장히 강하다"라면서 "국민 눈높이를 충분히 감안한 수준의 과감한 인적쇄신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김 실장 등 특정인을 지목하지는 않았다.


태그:#유승민, #박근혜, #김무성, #증세, #친박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