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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침을 맞는 어르신들
▲ 한방진료실 진료실에서 침을 맞는 어르신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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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꽈악 부여잡고 진료실 문턱을 넘어서는 분이 있다. 웬만큼 아파서는 허리춤을 잡지 않는다. 이 정도면 허리가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다는 뜻. 침상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보는 사람이 힘겨울 정도다. 슬로모션을 보는 느낌이다.

겨우 침상에 도착했다. 가장자리에 걸터앉고 한쪽 다리를 올린다. 천천히 반대편 다리도 올린다. 몸을 돌려서 옆으로 눕는다. 그 다음에야 제대로 위를 보고 누울 수가 있다.

며칠 전에 보일러 통을 교체하는데, 젊은 사람 혼자 고생하는 게 안돼 보였단다. 연로하신 몸에 과도한 측은지심을 발휘했더니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내가 미쳤지. 그걸 도와준다고 같이 드는데 바로 허리가... 다음 날 또 굴을 따러 갔네."
"그렇게 아픈데 왜 일을 해요? 덜 아프셨구만."
"내가 일을 안 하면 안돼. 자식들 있는 게..."

자녀 얘기가 나오자 말 꼬리를 흐리셨다.

"어머님 나이면 아드님들도 뭐 하나씩 하실 텐데. 다들 어디 계세요?"
"다 그래."
"다 그래요?
"말하기 부끄럽네."

갑자기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동전모양을 만들어 보인다.

"십원 하나 못 벌어. 4형젠데. 면에서는 나가 늙었다고 일도 안 시켜줘. 시켜달라고 이 말 저 말 안해. 부끄러워서 이제 말 안 해."

늘그막에도 고생만 하는 자신이 못내 가여웠나보다. 가슴 속에 맺힌 슬픔이 입 밖으로 퍼져나갔다.

"가끔 생각하면 서럽고 죽고 싶어. 굴 따러도 못 가겄어. 손 봐봐... 이리 벌어져갖고."

민족의 대명절 설... 하지만, 전화 한 통 없다

아직도 고치지 못한 보일러 때문에 답답해하다 설날 얘기를 하셨다. 남들은 민족의 대명절이라고 떠드는지 몰라도 십원 한푼, 전화 한통 없는 설날이 더 서럽다며 가슴을 친다.

서서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갑자기 수면제를 샀다는 말을 꺼낸다. 여기저기서 하나씩 사니까 생각보다 많이 모이더라며 쓴 웃음을 짓는다. 얼마 전 책에서 보았던 동감과 공감의 차이가 생각났다. 동감은 상대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이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공감하기로 했다. 상대방이 운다고 나도 목놓아 울어 버리거나, 기분을 바꾼다고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될 것이다. 담담한 말투로 나지막하게 얘기했다.

"수면제 어딨어요?"
"그걸 왜 말해줘?"

잠깐 뜸을 들인 다음 말을 이었다.

"어머님. 수면제는 버리세요. 그런 생각도 버리세요."

내 눈과 그 분의 눈이 마주쳤다.  핸드폰이 있냐는 말에 묵묵히 호주머니에 있던 걸 꺼내주신다. 삐삐삑 버튼 누르는 소리. 내 전화기로 그 분 번호가 떴다.

"전화 주세요. 이상한 생각 나면요. 저도 전화 드릴게요."

말랐던 눈가에 다시 이슬이 맺혔다. 그 분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여러 번 잡았다.


태그:#수면제, #우울증, #허리, #공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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