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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인데 우연히 기발한 SF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신체 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Body Snatcher)'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영화인데 기괴한 식물이 사람 몸을 똑같이 복제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사람 몸뚱아리만한 이 식물은 사람이 자고 있을 때 조용히 복제를 시작해서 작업이 끝나면 원래 인간은 없애버린다. 영화 속 이야기지만 우리네 삶 속에도 침입자가 조용히 활개를 치는 모양새다. '니콜라스 카'의 저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인터넷이 일종의 '뇌 강탈자'로서 어떻게 사람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는지 알 수 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 전문가로 불리는 그를 처음 접한 건 한 신문기사였다. 인터넷의 해악을 역설하던 니콜라스는 자신이 그토록 오랜 세월 몸담아왔던 분야를 호되게 비판했다. 그러한 자기 부정을 통해 일종의 해탈에 도달하지 않았나 하는 직감까지 들 정도였다.

전체 내용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요점을 스포일러마냥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기존의 생각에 따르면 콘텐츠는 물통 속의 물처럼 미디어(형식)가 달라진다 해도 변함이 없었다. 허나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캐리어로서 미디어가 이를 접하는 피수용자들에게는 콘텐츠의 본래 의미까지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게 반전. 여기서 더 나아가 미디어가 이를 접하는 우리의 뇌 신경회로를 변화시켜 생각하는 방식까지도 바꿔놓는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종이에서 스크린으로의 변화는 텍스트를 읽는 방식 뿐만 아니라 집중하는 정도와 빠져드는 깊이의 정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대부분의 텍스트를 소비하는 인터넷에서 멀티태스킹과 '링크'로 대별되는 하이퍼텍스트는 피해갈 수 없는 작업방식이다. 그에 따라 우리는 링크를 클릭하며 쉴 새 없이 여러 분야로 관심을 옮겨가며 한 번에 여러 작업을 처리한다. 이에 따른 '전환비용'에 의해 인지 과부하가 걸리게 되고 작업 능률은 급속히 떨어지게 된다. 책을 읽는데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려댄다고 생각해보라.

"하이퍼텍스트는 문서에 대한 더욱 강력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던 명제는 그 진실성을 잃었다. 오히려 하이퍼텍스트를 마주 했을 때 부가적인 의사결정과 시각적 처리까지 신경써야 하는 탓에 본연의 읽기에 집중할 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무수히 많은 실험결과들을 인용하여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2005년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다이애나 데스테파노(Diana DeStefano)와 조-앤 레페브르(Jo-Anne LeFevre)가 실시한 포괄적 평가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니콜라스 카'의 저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의 과도한 이용이 인간의 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상세히 다뤘다.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의 저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의 과도한 이용이 인간의 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상세히 다뤘다.
ⓒ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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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흐름은 뇌신경과학이라는 주제까지도 한바탕 훑고 지나간다. 외현기억(explicit memory)이란 무의식적인 암묵기억(implicit memory)과 반대로,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외현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오래 남아있기 위해서는 피질 아래쪽 내측 측두엽 깊이 위치한 해마를 통해야 한다. 해마에서 기억이 안정되면 이는 대뇌 피질로 이동하여 저장된다. 이렇게 기억이 강화되는 과정을 통해 시냅스 간 연결이 무한히 확장되며 우리의 정신적 능력은 커진다.

허나 우리가 인터넷에게 기억 장치 역할을 아웃소싱하면서 뇌가 능력을 키울 기회를 앗아가버리게 되었다. 군사 전문가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을 했다. '어떤 나라든 자국의 군대를 갖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롭다. 자신의 힘에 근거하지 않는 권력처럼 취약하고 불안정한 것은 없다.' 정신활동의 핵심인 기억을 인터넷이라는 외국 군대에 맡겼을 때 과연 믿고 안심할 수 있을까?

수많은 역사적 팩트와 문학,비문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혜안 덕택에 지루하지 않았던 책의 말미에 <미디어의 이해>를 저술한 '마셜 맥루한'의 말이 적절하게 인용된다.

"우리의 도구는 이 도구가 그 기능을 증폭시키는 우리 신체의 어떤 부분이라도 결국 마비시키게 된다."

예전에 환자 분을 진료하면서 손글씨로 진료기록부를 작성했던 적이 있다. 그 분은 "아따, 선생님은 손으로 쓰시네요. 다른 분들은 다 자판을 뚜들기던데"라고 하셨다. 그랬다. 전통적인 업무의 대부분을 컴퓨터가 대체하면서 우리는 기본적인 수기 능력마저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편리함에 눈이 멀어 그에 의존할수록 우리 능력은 사그라든다.

네덜란드의 크리스토프 반 님베겐(Christof Van Nimwegen)은 소프트웨어가 친절하고 편리할 수록 사용자들이 사고를 덜 하게 되어 뇌 능력이 감퇴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머리를 잔뜩 굴리도록 불친절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누가 그런 짓으로 스스로 매출을 떨어뜨릴까? 이러매 감히 생각해본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이 머리를 자꾸 굴려 우리를 편케할수록 사람들은 멍청해져 갈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06년 인터넷 사용자들에 대한 시선 추적 실험을 실시한 제이콥 닐슨(Jakob Nielsen)은 기가 막힌 결론을 도출했다. "이용자들은 웹의 글을 어떤 식으로 읽는가?"란 질문에 대해 실험결과는 다음과 같다.

"읽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는 오랜 인터넷 활동으로 인한 뇌 시냅스 변성과 인터넷의 인지 과부하라는 마법에 걸려들어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수도 있다. 그런 분들께 부탁 하나를 드리고 싶다. 책을 꼭 빌려서라도 한 번 읽어보시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청림출판(2011)


태그:#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인터넷, #시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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