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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해마다 벼 수매가를 놓고 생산농민과 농협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올해의 경우 산지 쌀값이 오르면서 벼 수매가를 둘러싼 샅바싸움은 더욱 치열했다.

 

생산농가는 비료 및 농자재 가격 폭등으로 인한 생산비 증가를 이유로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의 벼 매입가격과 쌀 소득보전직불제 목표가격 인상을 요구해 왔다. 게다가 농협 RPC의 벼 매입가는 일반 미곡처리장과 미곡수집상들의 쌀 매입가의 바로미터다. 산지 쌀값에 직접 반영되는 것은 물론이다.

 

반면 농협은 자체 매입가가 정부의 공공비축 우선지급금보다 높을 경우 농협으로의 물량집중과 원가부담을 우려해 수매가를 낮추려 꾀하고 있다.

 

 

농협 RPC 벼 매입가, 쌀값 바로미터

 

하지만 이 과정에서 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가 보인 태도는 농협이 아닌 조직보호에만 급급한 장사치를 떠오르게 했다.

 

기자는 지난달 말 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 자재양곡팀을 방문해 충남 시군 미곡종합처리장별 벼 매입가격을 문의했다.

 

하지만 농협 자재양곡팀 관계자는 갖은 이유를 들어 끝내 결정가격 공개를 꺼렸다. 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 자재양곡팀 이석구 차장은 "벼 품종만 해도 28가지인데다 등급별로 가격대가 달라 미곡종합처리장별 가격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때문에 시군 농협 미곡처리장별 가격 파악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벼 품종이 많고 등급별로 가격대가 다른 것은 맞다. 하지만 시군별 벼 수매가의 기준은 해당지역 농민들이 가장 많이 재배하는 벼 품종과 1등품을 기준으로 한다. 일례로 충남도 내 는 '주남', '남평', '동진1호' 등 몇 개 품종만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기자는 다시 이 차장에게 시군별로 가장 많이 재배하는 벼 품종의 1등품을 기준으로 한 수매가격을 물었다. 이 차장의 답변은 같았다. 이 차장은 "시군 농협 RPC별로 가격결정시 변수가 많아 평균 수매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자체 수매가를 파악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농협 관계자 "농협RPC별 벼 수매가는 영업비밀"?

 

농협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농협RPC별 벼 매입가격을 농협 자재양곡팀이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기자는 지금이라도 농협RPC별 벼 수매가를 파악해 결과를 알려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 차장의 답변은 이렇다.

 

"파악한 자료도 없고 계획도 없지만 설령 파악한 자료가 있더라도 공개하기 어렵다. 적자운영을 하는 곳과 흑자운영을 하는 곳에 따라 농협RPC별 수매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벼 수매가는 농협RPC별 경영 상태를 드러내는 영업비밀로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농협RPC별 경영여건이 쌀 수매가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 기준은 아니다. 또 경영여건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이미 각 단위농협별로 공개하고 있는 수매가를 농협지역본부가 나서 비공개할 이유가 없다. 

 

기자는 30여 분이 넘게 실랑이를 하다 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를 빈손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기자는 충남도 농산과 양정계 관계자로부터 충남 RPC별 벼 매입 가격결정 현황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충남 농협미곡종합처리장별 자체수매 평균매입가격은 다수 재배품종을 기준으로 공주 4만5000원, 당진 5만 원 등으로 한 가마당(40㎏ 기준) 최고 5000원 차이가 났다. 산지쌀값과 비교할 때 낮은 가격으로 수매한 해당 미곡종합처리장이 큰 이득을 본 셈이다. 올해의 경우 충남 공주의 벼 매입가격이 15.6%(7000원) 오르는 등 전반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충남도청 관계자 "벼 수매가 파악, 주요 업무중 하나"

 

농협 자재양곡팀의 이 차장의 설명대로라면 충남도가 RPC별 수매가를 파악한 것은 의미가 없는 헛수고를 한 것이다. 또 공개해서는 안 될 시군 RPC의 경영 상태를 공개한 것이 된다. 

 

충남도 농산과 양정계 관계자는 "시군 RPC별 벼 매입 가격 공개는 산지 쌀값동향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각 시·군청을 통해 RPC별 벼 수매가를  파악하는 것은 주요 업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통계는 각 시군 RPC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농협 RPC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충남의 한 농민은 "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가 시군 RPC별 벼 매입 가격 공개를 꺼리는 것은 시군별 가격비교로 인해 단위농협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농협이 농민들의 권익옹호보다 조직보호를 위해 앞장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협이 시군 RPC별 벼 수매가 파악을 하지 않았다면 이는 직무유기에 다름아니다. 또 벼 수매가를 파악하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공개를 꺼린 것이라면 조직보호를 위해 농민 권익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농협 RPC별 벼 매입 가격가 '큰 차'

공주 4만5000원, 논산 5만1000원

산지 쌀값의 바로미터가 되는 충남 농협미곡종합처리장(RPC)의 지난 해 벼 자체 매입가격이 시·군별로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시군 농협 미곡종합처리장별 자체 일반벼 수매 평균매입가격은 '주남' '추정' '동진1호' 등 충남지역에서 주로 재배하는 품종을 기준으로 공주 4만5000원, 예산 4만8000원, 당진 5만 원 등으로 한 가마당(40㎏ 기준) 최고 5000원의 차이가 났다. 청양과 홍성도 가마당 각각 4만7000원과 4만8000원에 매입했다.

 

이는 충남도내 지난 해 공공비축미 1등품 정산가격(가마당 5만2030원)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올해 산지 쌀값은 재고가 충분치 않은 데다 밀가루 값 상승 여파로 80㎏ 한 가마당 16만원대를 넘어서는 등 가파르게 상승했다. 따라서 미곡종합처리장의 자체 매입가격이 낮은 시군 농민들의 경우 큰 손해를 본 반면 해당 미곡종합처리장은 큰 이득을 보게 된 것. 또 농협미곡종합처리장의 벼 수매가는 일반 미곡처리장과 쌀 수집상 등의 매입가에 곧바로 반영돼 사실상 산지 쌀값의 바로미터로 쓰이고 있다.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은 이 같은 점을 의식한 듯 올해 자체 벼 매입가격을 일제히 올려 시군 간 격차조정에 나섰다. 지난해 가장 낮은 가격을 형성했던 충남 공주의 경우 가마당 벼 매입가격이 15.6%(7000원) 오른 5만2000원으로 조정됐다. 청양과 홍성의 경우도 5만2000원으로 각각 10.6%, 6.1% 인상됐다. 올해 충남 시군 미곡처리장별 자체수매 매입가격은 최저 5만1500원(금산)에서 최고 5만4000원(천안) 대를 형성하고 있다. 계약재배의 경우에는 최저 5만2000원(논산)에서 최고 5만6500원(부여)으로 매입가가 결정됐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지난해 시군 간 큰 가격차에 대한 때늦은 수습용으로 비춰져 논란이 예상된다.

 

한 농협 미곡종합처리장 관계자는 "미곡종합처리장별로 쌀 품질과 재정 여건이 달라 매입가격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올해의 경우 경영사정에도 불구하고 생산비가 상승해 벼 값을 인상해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의견이 많아 인상폭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농 충남도연맹 관계자는 "같은 들녘에서 나온 벼가 RPC별로 가마당 5000원 이상 가격 차이가 발생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RPC별로 경영상태 등 수매가를 책정의 근거자료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도내에는 40개의 RPC(농협 27개, 민간 13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중 농협 RPC가 수매량과 재정 규모 등 여러 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이 크게 오르고 원료곡(벼)이 바닥을 드러내자 미곡종합처리장(RPC)과 정미소 등이 경쟁적으로 벼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 대부분의 미곡종합처리장이 자체 매입가를 지난해보다 10%가량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도내 지난 해 공공비축미 1등급 정산가격은 가마당 5만2030원이다.

 

농협과 대한곡물협회 등이 지난 10월 말 현재 전국 274곳의 RPC가운데 215곳의 자체 평균매입가는 5만3922원으로 이는 공공비축용 벼의 우선지급금 4만9020원(1등급 기준)보다 4902원(10%)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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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농협중앙회대전충남본부, #농협RPC, #직무유기, #벼 수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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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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