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월 28일(금) 오후 7시, 대전 YWCA 대강당. 대전교육연구소, 대전퀘이커공부모임, 대전평화여성회가 주관한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연사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과 지난 1월 국가보안법 무죄 선고를 받은 사진작가 이시우씨다. 신문 방송으로만 보며 늘 흠모했던 분들인지라 대전 강연 소식을 듣고 힘차게 달려왔다. 달려온 보람은 크고 깊다. 두 분 강연 내용을 한 꼭지로 묶는 것은 독자를 힘겹게 할 수 있다. 이시우씨 관련 기사는 추후로 미룬다. <기자주>

 

"실용과 경쟁을 넘어, 녹색과 평화의 길로"

 

이날 강연 제목이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에 딴지걸기라도 하려는 걸까? 제목만으로 추측하면 경부운하를 겨냥한 것 같기도 하다. 첫 번째 강연자로 김종철 발행인이 나섰다.

 

"요즘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별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지낸다. 막막하다. 오늘은 더군다나 저 플래카드 제목을 보니까 엄청난데, 왜 제목에 '새로운'이라는 말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가만 보니 '자본주의 시대와 새로운 교육철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세상에 제일 좋은 건 '새로운' 게 아니고 '오래된' 거 아닌가. 새로운 게 반드시 좋은 게 아니다. 문화도 그렇지 않은가. 요새 경부운하만 생각하면 살기가 싫다. 우리가 살다 살다 왜 이 지경까지 왔나. 우리가 사는 꼴이 자기 장기 뜯어서 팔아 먹고 부자 되었다는 식이다. 장기도 다 떼먹고 심장까지 떼서 팔아먹으려는 것 아닌가."

 

김 발행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교수들 몇 천 명이 성명을 내고 있는데도 도무지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경부운하 관련 국민투표를 붙여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원래 국민투표란 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사람 뜻대로 되는 것 아닌가. 세상에 제일 믿을 수 없는 게 대중의 여론이다."

 

김 발행인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 세상에 제일 약한 게 지식인들이다. 대중들이 지식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역사상 개발을 해서 현지 주민들이 이익을 누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온 세상에서 개발에 대한 욕구가 끊이지 않는다."

 

제발 운하 공부 좀 안 할 수 없나?

 

"운하 문제를 다루고 싶지 않다. 내가 운하 문제를 왜 공부해야 하나. 내 나이 62세인데 이 나이에 운하 공부를 꼭 해야 하나. 작년에는 노무현 정부 때문에 한미FTA 공부 하느라 욕봤다.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평론> 편집자로서 운하 공부까지 해야 한다. 그런 공부 말고 후배나 이웃들을 위해 지적인 작업을 해서 뭔가 남겨 놔야 하는 거 아닌가."

 

김 발행인은 학자로서 소모적인 공부를 하고 산다며 허탈한 소회를 이어갔다.

 

"운하는 대선 끝나면 접겠지 했는데, 이번 총선 끝나면 대략 반 년 만에 환경 영향 평가를 하고 내년 4월에 착공을 한다는데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시대는 올바른 언어가 필요 없는 것 같다. 말이 먹혀들지 않는다. 말이라는 게 먹혀들어야 가치가 있는 거 아닌가.

 

운하 논쟁은 정부와 국민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삶의 문제다

 

"이거 뭐 똥고집 하나 가지고 설치는 바람에 사람들이 올바른 말을 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조차 무산시키고 있다. 힘 있는 자가 마음대로 한다. 보라. 한미FTA 관련 논의를 보라. 잡지나 신문, 방송 등 한미FTA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반대하는 쪽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반대 의견에 제대로 답변을 한 게 없다. 그냥 무조건 개방해야 산다는 논리다. 운하 논쟁을 보라. 이쪽 질문(반대)에 저쪽(찬성)에서 제대로 대답하는 거 봤나."

 

"우리 사회에 개방 안 된 게 어디 있나. 개방 반대자를 쇄국주의자로 몰고 가는 논리는 옳지 않다. 누가 옳은 말을 하면 양보해야 세상이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것 아닌가. 누군가 목표를 정해 놓으면 뒤도 안돌아 보고 간다. 그들의 소신이라는 게 대중에게 먹혀든다. 운하문제는 정부와 국민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다."

 

"박정희 정권 말년에 대전에서 선생하며 세상 욕만 하고 살았다. 이제 좀 (욕 안 하고) 정당하게 살다 갔으면 좋겠다. 되돌아보니 그 시절이 꿈같다. 당시엔 숨통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뭔가 미덕이 있었다. 당시 군부 독재는 지식인들을 고문하고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때는 그런 방법으로 지식인을 대우해줬다.(대중들 웃음) 존경을 한 것이다. 언어가 무섭다는 것을 그 사람들이 알았던 것이다. 지금은 아예 지식인들의 말에 대답을 안 해 버린다 이런 사회에서 무슨 교육이 필요한가."

 

한나라당이 찬성하지 않으면 모두 좌파인가

 

"운하 만들어서 햄버거 장사를 해야 하는가. 왜 이 짓을 강요하는가. 명색이 민주주의이고 공화국이라지만 민중이나 시민에 관심이 없다. 우리 대중처럼 잘 넘어가는 사회가 어디 있는가. 새만금 방조제를 만들 때 전북 지방에서는 반대할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새만금 반대를 했을 때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로 욕먹었다. 나는 결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찬성하지 않으면 모두 좌파다. 현대미술관 관장을 나가라고 했다. 그 사람 결코 좌파 아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평범한 사람들이다. 내가 볼 때 현 정부가 하는 일은 실질적이 아니라 무조건적이다.

 

대운하는 경제성이 없다. 환경 문제 등 온갖 가치 문제로 접근해 보라. 서울대 교수들이 모여 정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익이 없다는 얘기다. 이게 어디 좌파적 입장인가. 운하 반대를 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답변은 '국운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치수문제, 홍수 문제, 물류 문제 등에 대한 답변에 정당한 근거가 없다. 상호 이야기가 주고받아져야 한다. 모처럼 국운 융성을 할 좋은 프로젝트인데 무슨 답변이 필요하냐는 식이다. 어쩌다가 이 나라의 말을 주고받는 수준이 이 정도인가. 그러니까 박정희 때보다 못하다. 말이 딸리고 논리가 안 되니까 국운 융성만 논한다. 독재 정권 때보다 못하다."

 

영어몰입교육? 영어 부르주아, 영어 프롤레타리아 만드나

 

"시골에 있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고 안다.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이와 전혀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로 갈라져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얼마나 복잡하게 갈라져 있나. 완전히 영어 부르주아와 영어 프롤레타리아 같다.

 

우리가 일부 동남아 국가를 잘못 알고 부러워하지만 그 나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화적 사막의 사회라고 한다. 행복한 돼지들의 사회다. 그들 국가에 예술 철학이 어디 있는가. 철저하게 권위주의적 정치 속에 영어를 공용화한다.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사고는 불가분의 관계다. 영어가 우리의 사고를 바꿀 수는 없다. 우리 선대들을 보라. 우리말을 얼마나 풍부하게 사용했는가. 우리 어머니와 이모들이 앉아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언어의 보고였다. 현재 우리말은 완전히 영어 문법 아닌가. 세상에 '나로 하여금 하게 하라' 이런 말이 어디 있나. 속담 구사도 제대로 못한다. 사고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인간관계다

 

"왜 교육이라는 말을 쓸까. 학습이라는 말이 좋다고 본다.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은 돈을 내고 배워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교육, 학교를 통한 것보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돈 안 내고 자발적으로 인간 상호간에 상호작용에 의해 저절로 터득한 지혜나 지식이 중요하다.

 

요즘 젊은 세대들 버릇없다고 걱정이다.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안 시켜서 그런가? 대중이나 정치하는 사람이나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윤리라는 거, 그거 배운다고 사람 되나. 사람들의 상호관계,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어서 그건 거다.

 

사람의 예절이라는 것은 무용이나 춤과 같은 것이다. 춤은 잘 춰야 예쁘다. 잘 추는 춤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심리적인 만족감이란 아주 중요하다. 좋은 생각 선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 된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오는 것이다.  

 

황우석? 텔레비전에 나와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말만 골라서 하는 것은 과학자가 아니다. 대운하, 황우석, 한미FTA를 보라. 전부 실용적으로 나라에 보탬이 된다는 것 아닌가? 이거 모두 도그마요. 이상주의자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인간관계다. 교양, 예절이 절실하다. 나만 욕심을 부려서 되겠는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기러기 아빠? 사람들과 같이 살 생각이 없는 거 아닌가

 

"요즘 우리 세상 가만 들여다보면 갈라져 있는 데서 통일되어 있다고 본다. 자식을 잘 키우려는 부모의 욕심마저 미워할 수 없다. 위장전입을 보라. 가장의 입장에선 얼마나 거룩한가. 하지만 생각해 보라. 내 자식만 잘 살게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불행해지는 것 아닌가. 자기 아들도 자기 아들 주변인도 행복해야 서로 행복한 거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적 성격이 유형무형으로 망가져 가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장준하 선생이나 씨알의 소리 등을 아는가. 우리 아이들이 자기 욕구가 없으니 감동이 없다.

 

학교에서 뿌리에 관한 교육을 하지 않는다. 우리 존재의 근본의 토대가 어디 있는가. 영성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빈곤한가. 농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육체적 경험을 통해 살펴봐야 한다.  

 

사람이 근본을 잊어버리면 망한다. 우리는 땅의 자식들이다. 땅의 자식으로서 땅과과 접속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교사 입장에서 시민 입장에서 다 같이 연구해야 할 문제이다. 오래된 철학이다."  

 

저녁 7시에 시작된 강연은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 10시경 끝났다. 150여 명 청중들은 경청했고 내가 얻은 보따리는 푸짐했다. 강연 내용은 대전교육연구소(소장 김영호)(http://www.djedu.re.kr/)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태그:#김종철, #경부운하, #녹색평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