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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미술관의 입구. 왼쪽이 미켈란젤로, 오른쪽이 라파엘로의 조각상이다.
 바티칸 미술관의 입구. 왼쪽이 미켈란젤로, 오른쪽이 라파엘로의 조각상이다.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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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날. 오늘의 일정은 바티칸시티와 로마 교외의 티볼리를 보는 것이다. 어제까지의 초점이 '고대의 로마'에 맞춰져 있었다면, 오늘은 '르네상스의 로마'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고대 로마보다는 르네상스의 로마를 먼저 접한 나로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도 르네상스로부터 시작하였고, <로마인 이야기>는 말년의 저작이다) 이쪽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더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사실 난 그 어느 것보다 바티칸 미술관과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싶었다).

바티칸 미술관, 눈 돌릴 틈이 없다

트로이의 라오콘 상. 라오콘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뱀에 물려 죽는 모습을 너무나 인상적으로 표현하였다.
 트로이의 라오콘 상. 라오콘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뱀에 물려 죽는 모습을 너무나 인상적으로 표현하였다.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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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바티칸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제일 먼저 맞이에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끝이 안 보이는 줄일 것이다. 바티칸에 다녀오신 많은 분들이 이 줄에 대한 악몽이 있지만, 미리 예약이 되어있는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들어가게 되었다.

제일 먼저 거치게 되는 곳은 솔방울 정원. 베드로 성당에 있던 솔방울을 옮겨 정원에 배치한 것이 그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한다. 정원 가장자리에는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의 안내판들이 있다. 가이드 아주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 앞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탓에 여기서 미리 열심히 증거품(?)을 찍어둔다.

기원후 1세기에 제작된 아폴론 상. 화살을 쏘고 나서 확인하는 포즈이다.
 기원후 1세기에 제작된 아폴론 상. 화살을 쏘고 나서 확인하는 포즈이다.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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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초 누오보에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좌상.
 브라초 누오보에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좌상.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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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본격적으로 감상을 시작. 제일 먼저 조각상들을 감상한다. 피오-클레멘티노 회랑과 브라초 누오보에는 유명한 <라오콘> 상에서부터, 아폴론, 포세이돈, 헤라클레스와 같은 신화상의 인물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안티노와 같은 역사 속의 인물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특히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라오콘 상. 저 섬세한 근육 묘사와 리얼리티가 넘쳐나는 표정.

바티칸 미술관의 통로. 천장에도 이렇게 그림이 수없이 많다.
 바티칸 미술관의 통로. 천장에도 이렇게 그림이 수없이 많다.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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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가 회화관과 지도 전시관을 거쳐 라파엘로의 방으로 향한다. 하나하나가 명작들이라 눈 돌릴 틈이 없다. 사람이 너무나 많아 일행과 흩어질까 봐 두려워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자리를 움직인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모델이 된 고대 그리스의 석학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모델이 된 고대 그리스의 석학들.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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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시스티나 성당까지도 쉴 틈 없이 수많은 그림과 조각들이 맞이한다. 그리고 도착한 라파엘로의 방.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이 우리를 맞이한다. 생각보다 더 거대한 그림이다. 카메라 하나로 제대로 잡기조차 어려울 만큼.

<아테네 학당>의 오른쪽 부분. 검은색 모자를 쓰고 보는 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사람이 라파엘로다.
 <아테네 학당>의 오른쪽 부분. 검은색 모자를 쓰고 보는 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사람이 라파엘로다.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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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플라톤(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델), 그 옆의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미켈란젤로), 유클리드(브라만테), 디오게네스 등 고대 그리스의 석학들이 나란히 등장하고 맨 오른쪽에는 라파엘로 자신의 모습이 소심할 만큼 구석에 그려져 있다. 마치 내가 어떻게 여기 끼겠느냐는 듯이.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다, 라파엘로.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시선이 제각각임에 반면에 라파엘로만이 관객의 시선과 일치한다.) 너무나 균형잡히고 뛰어난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며 그 천재성에 감탄하지만, 여기서 감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 다음에는 다름 아닌 미켈란젤로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미켈란젤로! 이게 정녕 인간의 솜씨란 말인가?

솔방울 정원에 있는 <최후의 심판>의 해설도. 사진은 찍지 않는게 원칙이기 때문에 눈으로밖에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솔방울 정원에 있는 <최후의 심판>의 해설도. 사진은 찍지 않는게 원칙이기 때문에 눈으로밖에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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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스티나 성당에 도착. 기대하고 기대하던 <최후의 심판> 앞에 선다. 그리고…… 경이라고 해야 할지, 경의를 표한다고 해야 할지, 경악해야 한다고 해야 할지. 내 부족한 표현력으로는 감히 거장 미켈란젤로의 대작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모 소설에 등장하는 소녀처럼 그림 앞에서 두 손 잡고 눈물이라도 흘려야 했었나 싶다).

지금껏 예술작품을 봐오며 여러 차례 감탄을 한 적은 있었으나, 미켈란젤로의 이 그림들만큼 부동자세로 경이를 표할만한 것은 찾지 못했었다. 실로 무아지경. 이게 정녕 인간의 솜씨란 말인가. 홀로 이런 대작을 그려내다니…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천재성은 5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빛이 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내는 소리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사진 찍지 말라고 하는데도 꼭 사진 찍는 사람들은 있다) 이 작품을 본 것 자체만으로 행운이었다. 가능하다면 홀로 오래 머물고 싶지만, 그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희망일 것이다. 너무나 큰 아쉬움을 뒤로하고 시스티나 성당을 떠난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만든 <피에타> 앞에서 다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천상의 나라, 지상에 내려오다

25년에 한번 문이 열린다는 성스러운 문.
 25년에 한번 문이 열린다는 성스러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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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에 한 번 문이 열린다는 성스러운 문에는 예수가 가장 신임한 두 제자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이 묘사되어 있다. 다음에 열릴 차례는 2025년. 그때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산 피에트로 대성당 내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산 피에트로 대성당 내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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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는 바티칸을 대표하는 성당, 산 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에 들어가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가 24살 때 만들었다는 <피에타> 이다. 너무나 섬세한 조각 표현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애절한 심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내부.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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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피에트로 성당은 명성만큼이나 화려하다. 저 휘황찬란한 대리석들의 향연…. 교황 율리우스 2세(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후원자이기도 했지만, 교황청의 세속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임기 내내 전쟁과 외교에 주력한)는 어떤 생각으로 이 성당을 만들려 한 것일까? 후임 교황 레오 10세(지오반니 데 메디치)가 공사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것이 면죄부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벌였고 이로 시작된 종교 개혁의 여파가 당시 기독교 세계의 절반이 가톨릭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지만, 교황청의 권위를 상징하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은 오늘날까지 화려하게 군림하는 것을 보면 과연 "흥망은 일순간이요, 예술은 영원"이란 말이 틀리지 않는가 보다. 그런 점에서 레오 10세는 과연 메디치 가의 사람답다.

베드로의 좌상. 베드로의 발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전설이 있다.
 베드로의 좌상. 베드로의 발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전설이 있다.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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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 있는 성 베드로 좌상의 발은 이곳을 들리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만져보는 것이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만졌는지 반질반질하다. 성당 내부의 위압감과 긴 축(Navata)에 있는 수많은 장식과 조형물이 만들어내는 장대함에 감탄이 끊어지지 않는다.

청동으로 만든 교황의 제단.
 청동으로 만든 교황의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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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나와 광장을 걷자 긴 회랑이 보인다. 위에는 수많은 성인들의 입상이 서 있다. 무려 284개의 도리아식 원주 위에 124명의 성인이 서 있다 한다. 광장 가운데에는 칼리쿨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양옆으로는 베르니니와 마데르노가 만들었다는 분수가 있다. 광장의 거대한 규모에 다시 한번 감탄. 이 날은 정말 하루종일 감탄만 연발한 듯하다.

베르니니가 만든 분수. 뒤로는 수많은 성인상들이 서있는 회랑이 보인다.
 베르니니가 만든 분수. 뒤로는 수많은 성인상들이 서있는 회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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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경을 다툴 때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이 광장을 메웠는지, 그 넓이를 본 다음에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탈리아(아니 어쩌면 세계에서)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람은 교황이라 하는데, 이 넓은 광장을 교황의 건강을 위하여 꽉 채웠다 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수많은 기독교 신도들은 천상의 나라에 가고자 염원했다. 그리고 르네상스기의 교황들(율리우스 2세, 레오 10세), 이승에서 천상의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마치 이곳 바티칸에서는, 그들의 뜻대로 천상의 나라가 지상에 내려온 듯하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모두 함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모두 함께.
ⓒ 유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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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로마 , #로마인 이야기, #바티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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