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으로부터 220년 전, 바이마르 대공국의 행정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작은 짐 가방 하나만을 들고 홀연히 이탈리아로 길을 떠난다. 37세의 괴테는 이미 문학가이자 행정가로서 유럽에 상당한 명성을 자랑하는 명사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며 여행의 길을 떠난다. 무엇 때문에? 이때의 기록을 남긴 <이탈리아 여행>에서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북방에 있으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그곳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런 지방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에 나는 이 길고 고독한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어찌할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이 세계의 중심지를 방문한 것이다. 정말이지, 지난 몇 년 동안은 마치 병이 든 것 같았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곳(로마)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며 이곳에서 지내는 것뿐이었다…"

 

괴테의 시대로부터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로마를 찾아가고자 하는 방문자의 심리는 이 당시의 괴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마'라는 두 음절의 단어가 주는 소망과 기대감, 그것은 우리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원의 도시 로마. 로마는 고대에 천년 로마의 고도로, 로마 세계의 핵심이었다. 그로부터 1천년 후에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현대 이탈리아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로마는 과거에 존재했으며, 현재에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영원의 도시다. 그 로마에 지금 가고자 하는 것이다.

 

영원의 도시, 로마... 로마를 향하여

 

한길사 주최 '로마인 이야기 독서 평론대회' 수상자 11인과 인솔자 한 사람, 총 12인으로 구성된 역사탐방대가 인천발 로마행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지난 8월 15일 오후 1시 5분이었다. 이 때의 기대와 흥분감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으로만 보던 로마에 내가 직접 가게 될 줄이야.

 

오후 2시에 이륙하여 로마의 관문 피우미치노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각으로 오후 6시 10분(이탈리아는 서머타임 적용기간동안 한국보다 7시간이 느리다). 장장 11시간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유라시아 대륙 여러 나라들의 하늘 -한국, 중국, 몽골, 러시아, 벨라루시,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이탈리아-을 거쳐 이탈리아에 도착한 것이다.

 

한없이 청명한 하늘과 뜨거운 이탈리아의 태양을 받으면서도 아직 로마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다만 한숨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부푼 기대감과 설렘이 마침내 로마에 왔다는 반증이리라.

 

로마 답사의 첫 일정은 로마 문명사 박물관으로부터 시작됐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로마 문명사 박물관은 관광객이 흔히 찾아가는 방문지가 아니다. 그러나 로마사를 문명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곳은 숨겨진 보물이다. 로마라는 도시의 탄생부터 제정 말기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로물루스(로마의 건국자)부터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변천을 수많은 모형을 통하여 보여주고, 각 시대의 핵심적인 유물과 모형들이 각 방을 장식하고 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진품을 모방한 가짜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을 눈치 채기는 쉽지 않다. 장인 정신이라 할 만큼 정교하게 복원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라야누스 원주기둥의 수백장의 조각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한 가품은 가짜라고 전혀 느껴지지 못할 정도로 -훼손상태까지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정교하다.

 

포로 로마노, 고대 로마인의 흔적


문명사 박물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팔라티노 언덕에 있는 '포로 로마노(포룸 로마눔, Forum Romanum)'다. 익히 알다시피 초기 로마는 일곱 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이번 답사는 이 언덕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유적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팔라티노 언덕이다.

 

로마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포로 로마노만큼 중요한 곳은 없다. 흔히 로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콜로세움이지만, 콜로세움은 후대(티투스 황제 시기)에 세워졌을 뿐더러 로마인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포로 로마노는 로마의 정치 경제 사법 행정의 중심지로서 로마인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포로 로마노에는 수많은 유적이 공존한다. 공화정 시대의 원로원 건물 -로마 정치의 중심지라는 점을 생각해볼때 의외로 소박하다-, 신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신전들, 로마인의 삶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공회당(바실리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궁전, 티투스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 그리고 기독교 시대의 성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흔적이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포로 로마노이다.


콜로세움(Colosseum)은 포로 로마노로부터 지척에 있다. 포로 로마노를 벗어나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콜로세움이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로마는 그 도시 자체가 거대한 유적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걷는 것만으로 수많은 유적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발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고 눈앞으로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움직인다. 고대와 중세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 그것이 로마다.

 

퀴리날레, 현대 이탈리아의 중심지

 

 

팔라티노 언덕이 고대 로마의 중심지라면,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가 위치한 퀴리날레 언덕 부근은 현대 이탈리아 공화국의 중심지다. 길게 뻗은 이탈리아 대통령궁이 퀴리날레 언덕에 있으며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대통령궁을 '퀴리날레'라고 지칭한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행정부 건물이 산재해 있다(차창 밖으로 본 노동청 건물의 외관이 미술관을 떠올릴만큼 아름답다. 이탈리아인의 센스라 할 수 있을까?). 또한 패션 강국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수많은 상점들이 이 부근에 밀집해 있다. 더불어 스페인광장과 트레비 분수를 중심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가히 현대 이탈리아의 중심지라 할만하다.

 

이곳에 있는 관광명소에 큰 역사적 의미는 없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반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스페인 대사관이 위치했다 하여 스페인 광장이라 불리나, 그것과 관계없이 이곳이 관광객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하는 이유는 바로 고전 영화 <로마의 휴일> 덕일 것이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앉았던 자리에서 젤라또를 먹으며 두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두 사람이 앉아있던 그 계단이 명당 자리인지, 자리가 빌때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자리를 옮겨, '진실의 입' 앞에 가보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 역시 <로마의 휴일> 덕이다. 거짓말을 한 채로 입속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영화 속에서 브래들리가 손이 잘린 척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앤 공주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 워낙 사람들에게 인상이 깊었나 보다(사실 이것은 로마 시기에는 하수구 맨홀 뚜껑이었다). 식상한 행동이라 생각하면서도 진실의 입에 손을 넣어본다.

 

역시 로마의 상징 중 하나, 아름다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져본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동전을 긁어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전설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러한 편견과 달리 이 동전들은 전액 유니세프에 기부된다- 다시 로마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러한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이 위대한 도시에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로마에서의 첫 일정을 마감했다. 

 

 


태그:#로마, #로마인 이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