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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날의 일정은 고대 유적도시 폼페이와 그 일대를 둘러보는 것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오랫동안 화산재 속에 파묻혀있다가 근대에 이르서서야 발견된 도시다. 화산재 속에서 발굴된 폼페이는 고대 로마 도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고대 로마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의 보고이다.

 

아침 일찍 로마의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미항으로 유명한 남부의 중심도시 나폴리를 지나 점심 무렵에야 폼페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 동안 버스 안에서 바라본 베수비오 산은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중해에 면한 아름다운 남이탈리아의 풍경을 바라보자니, 그때의 비극은 후대의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폼페이의 비극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인해 면해있던 폼페이와 그 인근 도시는 화산재와 용암의 공격을 받아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

 

이때 폼페이 근교 스타비아에 머물다 간신히 화를 피했던 젊은 플라니우스 -『박물지』로 유명한 유명한 외삼촌(이 때 질식사했다)과 구분하기 위해 소(小) 플라니우스라고도 불리운다 - 는 당대 최고의 역사가 타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때의 생생한 기록을 유일하게 남겼다. 

 

 …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여자들의 울부짖음과 아이들의 울음소리, 남자들의 고함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를 찾는 소리, 자식을 소리쳐부르는 소리, 남편이나 아내를 불러대는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는 이들도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덮친 운명을 한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죽도록 겁에 질린 사람들은 차라리 빨리 죽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 팔을 쳐들고 신들에게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신은 이제 어디에도 없고, 이 어둠은 영원히 계속되어 세상의 종말에 이를거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

 

마치 묵시록적인 종말의 현장을 지켜보는듯 한 묘사다. 익히 경험해보지 못한 끔찍한 천재지변을 겪으며, 사신(死神)이 눈 앞에서 죽음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무력한 인간의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폼페이, 로마인의 흔적을 찾아

 

폼페이에 도착하자 수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뜨겁게 작열하는 남이탈리아의 태양이 우리를 맞이했다. 폼페이는 2천년전에는 캄파냐 지방의 한 소도시였을 뿐이지만, 지금은 고대 로마에 관한한 이곳보다 많이, 그리고 잘 보존된 곳이 없다. 폼페이는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파묻혔기 때문에, 그 넓이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넓다. 가이드분의 말씀으로는 대략 서울의 한 구(區) 정도의 넓이라 하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아직도 많은 구역이 복원되지 않았다). 이 넓은 지역을 하루 안에 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구역 몇 곳을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이탈리아인 가이드 카르밀라의 안내를 받으며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고대 로마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회랑(포룸)과 공중 욕장, 대부호의 저택, 제분소, 반원형 극장, 주점, 유곽, 각종 상점, 그리고 일반 서민들이 살던 집들까지.

 

폼페이는 2천년전의 도시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틀이 잘 잡혀있는 도시이다. 잘 정비된 도시 구획에서 일상적인 삶, 그리고 서민들을 위한 오락거리까지, 그 모든 것이 훌륭히 보존되어 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로마인들의 흔적을 찾아보니, 2천년 전의 고대 로마인들은 이렇게 살았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넓은 폼페이를 다 둘러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폼페이 유적을 벗어나자 길가에 서있는 노점상들이 "니 하오, 니 하오" "곤니찌와" 등을 연발하며 호객행위를 한다. 대뜸 "소 노 꼬레아노!" 라고 외치자 태도를 바꾸며 어설픈 발음으로 "Si,Si. 안녕하세요" 라고 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전날 한국어로 주문을 받는 젤라또 가게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새삼 동양 삼국에서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폼페이 식당에서 이탈리아 식 스파게티와 해산물을 먹으며 점심을 맛나게 해결하고, 소렌토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폼페이에서 서남쪽으로 30분 정도 내려가면 아름답기로 유명한 소렌토 반도가 나타난다. 유명한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무대인 바로 그 곳이다.

 

비로소 시야에 소렌토 해변이 들어오자 감탄사가 연발로 터져나온다. 말로만 듣던 지중해를 처음 본 탓이기도 하겠지만, 너무나 맑고 아름다운 지중해의 푸른 바다에 한 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이 모습을 사진에 담기는 했지만 사진으로서는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지 못할것 같다.

 

지중해의 그 맑고 푸른 물이란! 이 곳은 그 아름다운 풍광만큼이나 피서지로도 명성이 높은 곳이라 전 유럽에서 몰려온 수많은 피서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 역시 마음속으로는 저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은 어디까지나 로마 유적 탐방이 우선 과제이기에, 잠시 소렌토의 풍경을 만끽하는 선에서 만족했어야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소렌토로.

 

이탈리아인과 축구

 

이탈리아는 축구(Calcio, Serie A)의 나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이 축구를 즐기지만 이탈리아처럼 광적으로 축구를 숭배하는 나라는 드물다. (그 다음날 축구와 관련해서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클럽이라면 북부의 유벤투스 토리노와 AC 밀란, 그리고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지만 이곳 로마를 대표하는 클럽은 수도 로마를 연고로 하는 두 라이벌, AS 로마와 SS 라치오이다.

 

이 두 팀간의 더비 경기가 있는 날이면 로마는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 로마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는 클럽은 AS 로마인데, 이 클럽의 물품 -레플리카, 모자, 티셔츠, 가방, 각종 팬시 등- 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로마 곳곳에 이러한 물건을 판매하는 AS 로마 공식 판매처가 존재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들려보는 것도. 참고로 가격은 만만치 않다.

 

현재 AS 로마는 주장 프란체스코 토티를 중심으로 하는 탄탄한 전력으로 연승을 거듭하며 7년만의 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다. (00-01 시즌, 로마가 우승한 직후에 온 로마가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였다고 한다!) 5라운드가 경과한 지금, AS 로마는 무패 행진을 달리며 100주년을 맞이하는 인테르와 함께 공동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신문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신문으로는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공화국)>와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re della Sera(석간)>가 있다. 머물렀던 호텔에서 매일 로비에 <라 레푸블리카>를 잔뜩 가져다 놓았기에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이탈리아어라고는 고유명사밖에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니 거의 그림책 수준이었지만, 1유로(한화 약 1300원)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게 올 컬러로 50면 분량을 탄탄한 내용으로 채워놓고 있다.

 

이외에도 스포츠 신문 <라 가제타 스포르티바La Gazzetta Sportiva> 와 AS 로마의 서포터들이 발행하는 일간지 <일 로마니스타 IL Romanista>를 구입해서 보았는데, 일요일 저녁에 있을 인테르와 AS 로마의 수페르 코파(Super Coppa)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었다. 곧 시작하는 세리에 A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기대감을 살필 수 있었다.

 


태그:#로마인 이야기, #폼페이 ,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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