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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림시장은 그야말로 돈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서민의 정겨운 장터이다.
ⓒ 이종찬
그 시장에 가면 뭐든지 값싸게 살 수 있다

지난 10일(토) 찾은 마산 부림시장 곳곳에는 설을 맞아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형제들의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설을 앞두고 그동안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밀려 사람들의 발길이 썰렁하기만 했던 마산 최대 재래시장이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길거리 곳곳에 널린 500원짜리 액세서리부터 1000원짜리 국수, 2000원짜리 팬티, 3000원짜리 티셔츠, 5000원짜리 신발과 가방, 비싸 봐야 만 원인 고급 청바지에 이르기까지. 부림시장은 그야말로 돈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서민의 정겨운 장터다.

양복점, 한복집, 바느질집, 포목점, 단추·실·바늘 등을 파는 잡화점, 그릇집, 액세서리, 가방 노점상, 손톱깎이·공구·모기장 등을 파는 만물상, 커튼집, 신발집, 수입품점, 칼국수집, 죽집, 상인들을 상대로 하는 대폿집, 순대·떡볶이·어묵 노점상, 횟집, 밥집, 찻집 등…. 이곳에 들어서면 말 그대로 없는 것 빼놓고는 몽땅 다 있다. 오죽했으면 한국전쟁 때 돈만 있으면 대포까지도 살 수 있다고 했겠는가.

▲ 부림시장이 시끌벅적한 인정이 넘쳐나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 이종찬
▲ 부림시장은 3개동 1750평 부지에 400여개의 점포와 450평 규모의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 이종찬
어시장과 더불어 마산 대표하는 재래시장

경남 마산의 부림시장은 마산 어시장과 더불어 마산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마산에서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창동과 부림동 일대에 있는 부림시장은 한국전쟁 때 병참기지 역할을 한 마산의 시대적 배경으로 발 빠르게 성장했다.

더불어 1970년대 초 자유수출지역(지금의 자유무역지역)과 한일합섬이 들어서면서 공장에 다니는 젊은 여성들이 몰려들어 마산의 동대문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부림시장은 1924년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도미마찌(富町) 공설시장이 그 뿌리이다. 그때부터 노점상들이 이곳에 하나 둘 모여들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제법 큰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1973년에는 이 시장에 큰 불이 나 600여 점포를 모두 태웠으나 그 이듬해인 1974년 700평 규모의 2층 건물을 세우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지금 부림시장은 3개 동 1750평 부지에 400여개의 점포와 450평 규모의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1970년대 끝자락, 한창 이 시장이 잘 나가던 때에는 700여개의 점포가 터질 듯이 가득 들어차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불황과 IMF 한파까지 겹쳐지면서 상인들이 하나 둘 시장을 떠났다. 게다가 소비 성향의 고급화와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생겨나면서 부림시장은 크게 기울었다.

A, B, C동으로 나눠져 있는 부림시장은 A동 2층과 B동 2층에 40대 이후에 초점을 맞춘 여성복과 남성복, 학생복, 수선집이 들어서 있다. 창원, 마산권 최대의 한복상가인 B동 1층에는 30여개의 한복점이 들어서 있으며, C동에는 수입품 상가가 문을 열고 있다. 특히 C동 상가 안쪽에는 볼거리, 먹을거리, 살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 500원짜리 액세서리에서부터 1000원짜리 국수, 2000원짜리 팬티, 3000원짜리 티셔츠, 5000원짜리 신발과 가방, 비싸봐야 만원짜리 고급 청바지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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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 성향의 고급화와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생겨나면서 부림시장은 크게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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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시장 옷은 동대문시장과 통한다

부림시장에는 핸드백과 머플러 등 패션 액세서리들도 잘 갖춰져 있다. 그리고 옷 수선집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어 시장에서 산 옷이 치수가 맞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몸에 맞게 고칠 수 있다. 게다가 손님이 가게 주인과 이웃사촌처럼 살갑게 이야기하면서 가격을 깎을 수도 있고, 단골손님에게는 물건을 외상으로 내주기도 하는, 그야말로 인정이 풀풀 넘치는 곳이다.

부림시장에서 파는 옷들은 대부분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가져온다. 부림시장 상인들은 2주에 한번 꼴로 오후 4시 부림시장 앞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동대문 시장에서 새로 나온 옷을 산 뒤 새벽에 출발해 아침 9시쯤 부림시장에 도착한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앞까지만 하더라도 시장 상인들은 1주일에 2~3번 정도 서울로 올라갔지만 요즘은 장사가 잘 되지 않아 뜸한 편이다.

여러 가게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부림시장 건물 사이의 도로에는 갖가지 상품을 실은 리어커들이 '거리백화점'을 이루고 있다. 거리백화점에는 길거리에 펼쳐놓은 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차양을 쳐놓아 비가 오더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 하지만 거리백화점을 펼쳐놓고 있는 상인들은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하면 곧바로 철수한다.

부림시장에서 창동 쪽으로 나가는 길은 먹자골목이다. 뽀오얀 김이 입김처럼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어묵과 김밥, 순대, 떡볶이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먹자골목 아무 곳에나 서서 음식을 시키면 값도 싸고 넉넉하게 담아준다. 천 원짜리 한 장이면 배가 부를 정도다.

부림시장 의류상가에서 지하상가로 이어진 길을 건너면 일반 가게보다 훨씬 싸게 파는 문구류 도매상과 전자제품 도매상, 가구 골목이 있다.

▲ 부림시장에서 파는 옷들은 대부분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가져온다.
ⓒ 이종찬
▲ 여러 가게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부림시장 건물 사이의 도로에는 갖가지 상품을 실은 리어카들이 '거리백화점'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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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잘하모 만원짜리 옷도 5천원!"

"요즈음 돈 가치가 아무리 땅바닥에 떨어졌다캐도 돈 2~3만원만 가꼬 부림시장에 오모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싹 바꿀 수 있지예. 근데도 요새 사람들은 값싸고 물건 좋은 시장을 찾아오지 않고 값비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서 물건을 삼시로(사면서) 물가가 비싸다느니, 물건 몇 개 사고 나모 돈 10만원이 후딱 날라 간다느니, 엄살을 엄청 떨고 있지예. 요기(여기)서는 말만 잘하모 만원짜리 옷을 5000원에도 살 수 있어예."

부림시장 길거리에서 10여년째 노점상을 하고 있는 서아무개(여·마산시 회원동)씨는 "요새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때문에 하루에 청바지 서너 벌 팔기도 힘들다"며, "한때 수출자유지역이 잘 돌아가고, 한일합섬이 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명절 때가 되면 선물을 사려는 젊은 여성들이 이곳에 떼 지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말한다.

서씨는 "그때에는 이곳 난전에서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는데, 요새는 명절이 다가와도 사람들이 별로 없다"며 한숨을 포옥 내쉰다. 이어 그이는 "그나마 지난 2006년 9월에 젊은 공공미술 작가들의 모임인 프로젝트 쏠(대표 유창환)과 경남대 미술전공 학생들이 먼지와 쓰레기만 가득 쌓인 채 문을 꼭꼭 닫고 있는 '먹자골목'(부림시장 지하)에 독특한 그림을 그려놓아 사람들이 구경 삼아 제법 찾는다"고 귀띔했다.

나그네가 부림시장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아무개(여·마산시 추산동)씨에게 "오랜만입니다, 그래, 요즈음 장사가 어때요?"라고 묻자 "장사가 나무 잘 돼가꼬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숨겨놓아야 할지 걱정이지예, 소주나 한 잔 사 주고 가이소"라며 피시식 웃는다. 장사가 너무 안 돼 하루 세 끼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형편이라는 투다.

▲ 요새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때문에 하루에 청바지 서너 벌 팔기도 힘들다고 상인들은 하소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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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나 한 잔 사 주고 가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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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부림시장이 새롭게 변하고 있다

어떤 물건이든 값싸게 살 수 있는 부림시장. 요즈음 손님이 뜸한 부림시장이 시끌벅적한 인정이 넘쳐나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지난 2002년에는 마산시에서 12억 원을 들여 약 270m에 이르는 시장 골목에 차광막을 설치했고, 5% 할인된 마산 사랑 상품권도 팔고 있다. 게다가 여러 가게의 천장과 바닥을 수리하고, 오래된 전기시설도 새롭게 고쳤다.

길게는 80여년. 짧게는 30여년 동안 낡은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던 부림시장 가게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부림시장번영회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1억7500여만원을 지원받아 올 3월에 650평 규모의 시장 건물 한 동을 통째 새롭게 고칠 예정이며, 시장 주변 소방도로에 5일장을 열 계획도 세우고 있다.

돈 2~3만원만 들고 가면 속옷부터 겉옷, 구두, 모자, 가방까지 몽땅 다 살 수 있다는 부림시장. 그곳에 가면 돈 만원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그곳에 가면 경기침체니, 물가가 너무 비싸서 살 게 없다느니, 장바구니를 채우지 못한다느니, 하는 그런 불평이 없다. 그래. 올 설빔은 값싼 마산 부림시장에 가서 골고루 챙기는 것은 어떨까.

▲ 부림시장에서 창동 쪽으로 나가는 길은 먹자골목이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이 물건, 여기 가면 싸다!' 응모글입니다.


태그:#부림시장, #마산, #만원의 가치,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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