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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나리 시장
ⓒ 정기상
"좀 깎아주세요."
"말씀을 예쁘게 하시니, 깎아드려야죠."
"정말이세요?"
"물론이지요. 공짜로 드릴 수도 있어요."


오고 가는 대화 속에는 정감이 넘쳐흐르고 있다. 물건값을 흥정하는 거래의 현장이 아니라, 농담을 주고받는 즐거움이 샘솟는 곳이다.

물건을 사는 사람도 흥겨워하고 물건을 파는 사람도 신바람이 나 있다. 오고 가는 말 사이에 스며 있는 위트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사람 사는 맛이란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닌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거래만 있을 뿐이다. 정찰 가격제라는 명분으로 냉정하기 그지없다. 덧붙이는 말이나 흥정은 할 수가 없다. 귀찮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점원 앞에서 다른 말이 쏙 들어가 버린다.

친절이 가면이란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깎자고 말하는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 먹음직스런 사과
ⓒ 정기상
편리한 시설, 깨끗한 환경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으니, 그 대신 돈을 지불하라는 논리가 통행되고 있다. 빨리빨리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족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람의 향이나 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편리함을 놓쳐버릴 수 없어 찾고 있을 뿐이다.

개나리 시장

전북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개나리 아파트 도로 옆에 형성되어 있는 임시 시장이 '개나리 시장'이다. 이곳은 깨끗함이나 편리함은 없다. 그래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 모여들지만, 그것만을 목적으로는 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 찾아오기도 하는 곳이다.

▲ 흥정
ⓒ 정기상
개나리 시장은 매일 시장은 아니다. 날마다 열리는 곳이 아니기에 그 효율성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기존의 재래시장처럼 매일 장이 열리고 있다면, 이곳의 매력이 훨씬 덜 하였을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특성은 쉽게 질리고 식상해 하기 때문이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일 것이란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참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주 시내에는 재래시장이 여럿 있다. 남부 시장을 비롯하여 중앙시장, 그리고 모래내시장, 북부 시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재래시장은 후백제의 고도였던 이 고장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사람들의 애환을 함께 하면서 이어온 것이다. 그런데 현대화된 마트나 백화점으로 인해 침체 일로에 있다.

개나리 시장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선다. 평일에는 도로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시장이 서면 인도는 사람이 다리는 도로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이 점령하고 만다. 사람들이 얼마나 북적이는지, 이동하기가 아주 불편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 없는 물건이 없고
ⓒ 정기상
만약에 시장이 아니고 다른 인도라면 사람들은 절대로 참을 수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난리가 날 것이 확실하다. 시청에 항의하고 동사무소에 시정을 촉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화를 내지 않는다. 아니 당연한 일로 여기고 붐비고 복잡해진 길을 걷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짜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정말 묘한 일이 아닌가. 세상 사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여기고 그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여유로서 즐기는 것을 바라보면서, 삶의 지혜를 얻게 된다.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산다면 행복을 곧바로 손에 잡는 것이 아닌가.

개나리 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먹을거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생선류, 의류, 공산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사람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이면 모두 다 있는 것이다. 전문화되지 않은 것이 전문 종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잡화 시장이 재래시장의 특징이다. 개나리 시장에 오면 사지 못할 물건이 없다.

▲ 정겨움이 배어 있고
ⓒ 정기상
살 수 있는 물건이 다양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아니다. 물건의 질이 좋아야 하고, 물건값이 싸야 사람들이 찾는다. 개나리 시장이 서는 토요일 일요일이면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은 분명 이런 욕구를 충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타의적으로 바꾸기가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개나리 시장은 불법이다. 그래서 이곳을 폐쇄시키기 위한 노력이 많이 있었다. 조경 사업을 통해 원천적으로 막아보려고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하는 시장을 막아내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막아보려고 하지만, 개나리 시장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 사람 사는 맛
ⓒ 정기상
개나리 시장에 가면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 없는 물건이 없다. 거기에다 흥정을 통해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니, 사람들이 줄기차게 모여들고 있다. 개나리 시장에 서 있으면 그 옛날의 5일장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장에 갔던 일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신바람이 재생되는 것이다.

개나리 시장에 자주 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마음을 울적해지면 그곳을 찾는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참을 수 없게 된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커질 때 이곳을 찾게 되면 억울함이 시나브로 풀어지고 만다. 흥겨움이 넘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나리 시장을 찾는다. 물건을 싸게 사는 것은 부차적인 목적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물건 여기 가면 싸다" 응모작.

사진은 07년 1월 28일 전북 전주시 삼천동 개나리 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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