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에 발매됐던 윤종신의 5집 앨범 우(愚)는 1번 트랙 <환생>부터 9번 트랙 <바보의 결혼>까지 9곡의 수록곡 전체가 '우'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는 마치 다시 태어난 거 같은 멋진 여자를 만나 짝사랑을 하다 용기 내 고백을 해 꿈 같은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우는 그녀 어머니의 반대로 이별을 하게 되고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지만 결국 바보처럼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처럼 대중예술에서는 여러 개의 작품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시리즈 전체를 챙겨봐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특정 세계관에 빠지면 각 작품마다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홍콩영화 중에는 1989년부터 2016년까지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10편에 걸쳐 제작된 '도박영화 유니버스'가 있다. 그 중 1994년에 개봉한 <도신2>는 당대 최고의 도박사인 '도신' 주윤발의 귀환으로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도신2>는 <정전자> 이후 5년 만에 개봉한 주윤발 주연의 도박영화였다.

<도신2>는 <정전자> 이후 5년 만에 개봉한 주윤발 주연의 도박영화였다. ⓒ (주)동아수출공사

 
홍콩 금상장 남우주연상 4회 수상 배우

1990년대 홍콩영화를 즐겨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중화권 최고의 배우' 양조위와 이름이 비슷한 배우 정도로 보이겠지만 양가휘 역시 홍콩과 중화권에서는 위상이 매우 높은 배우다. 1958년 홍콩에서 태어난 양가휘는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고 1980년 민간방송사 TVB의 연기 연습생으로 입사하며 연기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양가휘의 동기 중에는 1990년대 '홍콩 사대천왕'으로 군림한 유덕화도 있었다.

1983년 영화 <화소원명원>으로 데뷔한 양가휘는 같은 해 출연한 <수렴청정>을 통해 1984년 홍콩 금상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는 40년의 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기록이다. 데뷔 초 중국과 대만의 사이가 좋지 않아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양가휘는 1990년 대만계엄령이 해제된 후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았고 1990년 <애재별향적계절>로 대만 금마장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양가휘가 한국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1992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연인>이었다. <연인>에서 프랑스인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재벌 화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양가휘는 이후 <신용문객잔>과 <동성서취>,<추남자> 등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양가휘가 홍콩에서 사기를 치고 중국으로 숨어 들어왔다가 도신을 만나는 트럼펫을 연기했던 <도신2> 역시 양가휘가 한창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절에 출연한 작품이다.

1990년대 전성기를 누린 대부분의 홍콩배우들이 그렇듯 양가휘 역시 1990년대 초·중반 1년에 1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혹사를 했고 이 때문에 1995년에는 연기활동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1997년 <흑금>을 통해 복귀한 양가휘는 과도한 겹치기 출연 대신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며 꾸준히 이미지를 변신했다. 그 중에는 2004년에 개봉했던 한국과 일본, 중국의 합작 옴니버스 영화 <쓰리, 몬스터- 만두>도 있었다.

2006년 <흑사회>를 통해 13년 만에 홍콩 금상장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양가휘는 2012년 <콜드 워>로 통산 4번째 금상장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양조위(5회)에 이어 역대 최다 수상자 2위에 등극했다. 올해로 어느덧 만66세의 노장배우가 된 양가휘는 과거 <연인>에서 보였던 미남자의 이미지는 많이 사라졌지만 2021년에도 <추룡2: 패왕>과 <잃어버린 아이들>에 출연할 정도로 여전히 '현역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홍콩 '도박영화 유니버스'의 끝판왕 
 
 도신은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어진 홍콩의 '도박영화 유니버스'에서 정점에 선 인물이다.

도신은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어진 홍콩의 '도박영화 유니버스'에서 정점에 선 인물이다. ⓒ (주)동아수출공사

 
<도신2>는 1989년 홍콩 도박영화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렸던 주윤발, 유덕화, 왕조현 주연의 <도신>(국내 개봉명은 <정전자>) 이후 5년 만에 개봉한 속편이다. <도신>과 <도신2> 사이에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세 편의 도박영화가 개봉했는데 <도성>과 <도협>, <도협2: 상해탄도성>이었다. 세 편 모두 주성치가 실질적인 주인공이었고 주성치의 삼촌 역으로 고 오맹달이 출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신2>는 <정전자>의 도박전쟁이 끝난 후 도박생활을 청산하고 프랑스에서 아내와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던 고진(주윤발 분)이 대만의 도박사 구소치(오흥국 분)에 의해 아내를 잃고 복수를 위해 다시 도박에 뛰어든다는 내용의 영화다. 전작 <정전자>에서 '서브 여주' 자넷 역을 맡아 아쉬운 죽음을 맞았던 장민이 자넷과 꼭 닮았다는 설정을 가진 고진의 아내 아유 역으로 특별 출연해 영화 시작 12분 만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도신2>에서 고진은 아내가 죽은 상황에서도 아내 아유의 시신 앞에서 자신은 북경의 초능력 도박사 장보성을 두려워한다고 거짓정보를 흘렸다. 그리고 이 정보를 들은 구소치는 거액을 약속하며 고진을 이겼다는 북경 최고의 초능력 도박사 장보성을 영입했다. 하지만 구소치가 장보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물은 사실 고진의 오랜 친구인 중국인 마술사였다. 이는 복수를 위한 도신의 1년 짜리 '큰 그림'이었다.

주윤발의 대표작이었던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시리즈가 마무리되면서 관객들은 주윤발 특유의 '쌍권총 액션'을 그리워했다. 왕정 감독은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영화 초반과 중·후반 고진과 그의 동료 용오(향화강 분)가 선보이는 화려한 총기액션 장면을 넣었다. 물론 오우삼 감독 작품에서 느껴지는 비장함은 찾을 수 없지만 총기액션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주윤발이 1990년대 후반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명맥이 끊어지는 듯 했던 <도신> 시리즈는 1997년 여명 주연의 <도신3: 소년도신>을 통해 시리즈를 이어갔다. <도신3: 소년도신>은 도박계에서 성장한 고진이 도신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프리퀄 영화로 국내에서는 <도신불패>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서울관객 2903명에 그치며 흥행 참패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액션과 투자, 도박 해설까지 맡은 구숙정
 
 구숙정은 <도신2>에서 대만조직보스의 첫째딸을 연기하며 다양한 매력을 선보였다.

구숙정은 <도신2>에서 대만조직보스의 첫째딸을 연기하며 다양한 매력을 선보였다. ⓒ (주)동아수출공사

 
<천장지구 1,2>를 통해 청순가련한 매력으로 수많은 남성 관객들의 마음을 홀렸던 오천련은 <도신2>에서 홍콩에서 사기를 치고 도망친 오빠 트럼펫(양가휘 분)을 따라 중국으로 함께 넘어온 여동생 요요를 연기했다. 도신의 열혈팬이기도 한 요요는 <천장지구> 시리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밝고 명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하지만 요요는 영화 후반 고진이 구소치 일당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 총에 맞고 고진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도신2> 출연 당시 한창 떠오르던 홍콩의 구숙정은 <도신2>에서 고진이 신세를 진 대만 조직보스 해안(가수량 분)의 맏딸 해당 역을 맡았다. 똑똑한 머리와 뛰어난 무술실력, 그리고 평균 이상의 도박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지만 고진과 구소치의 마지막 대결에서는 한 발 물러나 고진의 판돈을 대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관객석에 앉아 포커의 룰을 잘 모르는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해설 역할까지 맡았다.

이연걸 주연의 <소림오조>를 통해 데뷔한 아역배우 사묘는 <도신2>에서 해당의 동생이자 대만 최대조직의 보스 해안의 아들 소원을 연기했다. 습격을 당해 사망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고 자신을 데리고 떠난 고진을 원망하지만 나중엔 고진을 아버지처럼 따른다. 1995년에 개봉한 <이연걸의 영웅>에서도 이연걸과 부자지간을 연기했던 사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도신 왕정감독 주윤발 양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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