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12월 <배가본드>의 후속으로 방송된 SBS의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는 방영 초반만 하더라도 시청자들로부터 그리 높은 기대를 받던 작품은 아니었다. 주연배우 남궁민과 박은빈, 오정세, 조병규 등이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검증된 스타배우도 아니었고 주말 밤 10시라는 '프라임타임'에 러브라인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야구단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먹힐 거라고 예상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스토브리그>는 탄탄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선수가 아닌 프런트를 중심으로 야구단 내부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다루면서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고 19.1%의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스토브리그>는 2020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고 주인공 백승수 단장을 연기한 남궁민은 2020년 SBS 연기대상 대상의 주인공이 됐다.

사실 시즌이 끝난 후부터 개막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스토브리그>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야구뿐 아니라 모든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행사 중 하나는 미래의 주역을 선발하는 신인 드래프트다. 지난 2014년에는 할리우드에서 미식축구 NFL의 신인 드래프트 행사를 다룬 영화가 제작·개봉되기도 했다. 바로 고 아이반 라이트만 감독이 연출하고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은 영화 <드래프트 데이>였다.
 
 <드래프트 데이>는 고 아이반 라이트만 감독이 마지막으로 '연출'한 영화다.

<드래프트 데이>는 고 아이반 라이트만 감독이 마지막으로 '연출'한 영화다. ⓒ (주)영화사 빅

 
유령도 때려잡고 유치원에도 간 '코미디 대가'

1946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라이트만 감독은 4살 때 캐나다로 이주해 정착했다. 국내에서는 '이반' 라이트만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유대인 혈통을 가졌기 때문에 이반이 아닌 '아이반'이 정확한 표기법이다(비슷한 예로 브라질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호나우두가 한동안 국내에서 '로날도'로 불린 적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제작자로 활동한 라이트만 감독은 1984년 <고스트 버스터즈>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알려졌다.

3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고스트 버스터즈>는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2억 9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라이트만 감독은 순식간에 흥행감독으로 떠올랐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라이트만 감독은 1988년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대니 드비토 주연의 <트윈스>를 통해 코미디 전문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라이트만 감독은 <트윈스>를 시작으로 슈왈제네거와 <유치원에 간 사나이> <주니어>까지 세 편의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1998년 해리슨 포드와 앤 헤이시 주연의 액션 어드벤처 영화 <식스 데이 세븐 나잇>을 연출한 라이트만 감독은 2001년 < X파일 >의 멀더로 유명한 데이비드 듀코브니 주연의 <에볼루션>을 선보였다. 하지만 8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에볼루션>은 9800만 달러 흥행에 그치며 라이트만 감독에게 큰 시련을 안겼다. 오히려 2006년 우마 서먼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선전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흥행감각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은 라이트만 감독은 2011년 나탈리 포트만과 애쉬튼 커쳐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친구와 연인사이>를 연출해 1억 4900만 달러의 흥행을 이끌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NFL 신인 드래프트 현장의 긴장감을 잘 표현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스포츠 드라마 <드래프트 데이>를 만들며 '코미디영화 전문감독'이라는 이미지를 씻었다.

하지만 <드래프트 데이>는 라이트만 감독이 연출한 마지막 영화가 되고 말았다. 라이트만 감독은 2016년 자신의 대표작 <고스트 버스터즈> 리부트 영화의 제작을 맡았지만 호불호가 크게 갈리며 흥행에 실패했다. 라이트만 감독은 2021년 자신이 제작하고 아들 제이슨 라이트만(<주노> <인 디 에어> 등을 만든 감독)이 연출한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가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2022년 2월 자택에서 취침 도중 생을 마감했다. 

선수 아닌 단장이 선보이는 긴장되는 시간
 
 스포츠에서는 드래프트 현장에서 단장의 선택으로 인해 팀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스포츠에서는 드래프트 현장에서 단장의 선택으로 인해 팀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 (주)영화사 빅

 
최근 국내 프로 스포츠에서도 단장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아직 미국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단장이 신인 지명과 FA영입, 트레이드 등 구단운영 전반을 담당하고 감독은 단장이 구성한 선수단으로 시즌을 운영한다. 그만큼 구단 내에서 단장의 영향력이 크다는 뜻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을 '헤드코치'가 아닌 '매니저'라고 부를 정도. <드래프트 데이>는 <스토브리그>처럼 프로스포츠의 단장을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다.

<드래프트 데이>는 팀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인 신인 드래프트를 소재로 NFL 구단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단장 써니 위버 주니어(케빈 코스트너 분)의 하루를 쫓는 영화다. 7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써니는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시애틀 시호크스에게 향후 3년간의 1라운드 지명권을 모두 내주고 1순위 지명권을 얻어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당장의 절박함 때문에 팀의 미래를 포기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트레이드를 통해 1순위 지명권을 얻은 써니는 대학리그 최고의 쿼터백 보 캘러한(조쉬 펜스분)을 얻을 수 있게 됐지만 펜 코치 감독(데니스 리어리 분)과 기존 쿼터백 브라이언 드류(톰 웰링 분)의 반발에 부딪힌다. 설상가상으로 완벽하게 느껴졌던 1순위 후보 캘러한의 약점(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기적인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써니는 자신의 실수를 되돌리고 팀에 꼭 필요한 선수를 지명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한다.

<드래프트 데이>에는 그 흔한 풋볼경기 한 번 제대로 등장하지 않지만 드래프트 현장에서 벌어지는 단장들의 지략대결만으로도 충분한 영화적 긴장감과 박진감을 선사한다. 특히 써니가 잭슨빌 구단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얻은 6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시애틀에게 빼앗겼던 지명권 3장과 클리블랜드가 원했던 선수까지 데려오는 장면은 그 어떤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의 한 장면 못지 않게 통쾌하고 흥미진진하다.

<드래프트 데이>는 NFL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요소가 넘치는 영화지만 북미에서 2800만 달러, 해외에서는 고작 98만 달러의 성적에 그치며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드래프트 데이>는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스토리로 화려한 경기장면에 집중하는 여느 스포츠 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숨은 명작'이다.

풋볼선수 연기했던 '영원한 블랙팬서'
 
 <드래프트 데이>에는 <블랙팬서>로 유명한 고 채드윅 보즈먼이 풋볼 유망주로 출연했다.

<드래프트 데이>에는 <블랙팬서>로 유명한 고 채드윅 보즈먼이 풋볼 유망주로 출연했다. ⓒ (주)영화사 빅

 
벤 애플렉의 전 아내이자 <엘렉트라> <주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등에 출연했던 제니퍼 가너는 <드래프트 데이>에서 클리블랜드 구단의 샐러리캡(연봉 상한선) 담당 변호사 앨리를 연기했다. 항상 선수들의 연봉만 계산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코치, 감독에게 무시를 당하지만 사실 앨리는 그 어떤 남자직원 못지 않게 풋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물론 순수한 관심과 애정인지 직업상 공부를 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드래프트 데이>에서는 마블 씨네마틱 유니버스의 팬들이 그리워하는 배우도 출연했다. 바로 지난 2020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영원한 블랙팬서' 고 채드윅 보즈먼이었다. 보즈먼은 <드래프트 데이>에서 써니가 대학리그에서 눈여겨봤던 유망주 본테 맥을 연기했다. 초반 써니와의 통화 이후 주요 인물로 언급되지 않았던 맥은 써니가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하면서 영화 속 대반전의 주인공이 된다.

써니가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가장 입지가 위태로워진 선수는 톰 웰링이 연기한 클리블랜드의 주전 쿼터백 브라이언 드류였다. 브라이언은 특급 유망주 캘러한을 지명한다는 소문을 듣고 써니에게 자신을 트레이드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써니는 "징징대지 말고 훈련이나 하라"고 일갈한다. 하지만 써니는 드래프트에서 쿼터백 캘러한이 아닌 다른 포지션의 선수 3명을 영입하면서 주전 쿼터백 브라이언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드래프트데이 고아이반라이트만감독 케빈코스트너 제니퍼가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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