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개봉한 영화 <짝패>는 충청도에 위치한 가상의 관광특구도시 '온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류승완 감독이 직접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던 <짝패>는 충남 온양 출신의 류승완 감독뿐 아니라 충남 부여 출신의 정두홍, 충북 청주 출신의 이범수 등 실제 충청도 출신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실감나는 사투리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짝패>는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보다는 '충청도 옹박'이라는 수식어처럼 화려한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였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23년에도 충청도 사투리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 <소년시대>가 OTT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됐다. <소년시대>는 1980년대 말 충남 부여를 배경으로 지역 짱으로 오해 받은 찌질이 병태(임시완 분)가 진정한 지역의 1인자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다룬 청춘 드라마다. 방영 기간 내내 많은 인기를 얻은 <소년시대>는 7, 8회가 공개됐던 2023년 12월 15일 시청자가 몰려 서버 접속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느린 말씨 때문에 오해를 받을 때도 있지만 사실 충청도는 전유성, 임하룡, 최병서, 최양락, 김학래, 이영자, 남희석, 서경석, 김준호 등 많은 희극인들을 배출했을 정도로 유쾌한 지역이다. 그리고 지난 2014년 1월에는 충청도 출신 감독이 충청도 출신 배우와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선보였다. <거북이 달린다>의 이연우 감독이 연출하고 박보영과 이종석, 이세영, 김영광이 주연을 맡은 <피끓는 청춘>이었다.
 
 <피끓는 청춘>은 2014년 연초 겨울방학과 설날특수를 모두 누리고도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다.

<피끓는 청춘>은 2014년 연초 겨울방학과 설날특수를 모두 누리고도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다.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2020년대에 전성기 찾아온 아역 출신 배우

1992년에 태어나 1996년 드라마 <형제의 강>을 통해 데뷔한 이세영은 올해로 데뷔 28주년이 된 중견(?)배우다. 미취학아동 시절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한 이세영은 1999년 노희경 작가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 이나영의 아역으로 출연했고 2002년 <내 사랑 팥쥐>에서는 장나라의 아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이세영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역시 2003년에 방영된 '국민드라마' <대장금>이었다.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라이벌이자 홍리나가 연기했던 최금영의 아역을 맡으며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이세영은 2004년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과 <아홉살 인생>을 통해 또 한 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데뷔 후 쉼 없이 연기활동을 하던 이세영은 2005년 <자매바다>를 끝으로 학업을 위해 휴식기에 들어갔고 2007년 영화 <열 세살 수아>를 통해 외모도 연기도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2008년 시트콤 <코끼리> 이후 다시 휴식기에 들어간 이세영은 2011년 대학생이 된 후 2012년 <총각네 야채가게>를 시작으로 <대왕의 꿈> <보고 싶다> <트로트의 연인> 등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4년 영화 <피 끓는 청춘>에서 서울에서 온 새침한 성격의 전학생 최소희 역을 맡아 새로운 매력을 선보였다. 이세영은 2016년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현우와 '아츄커플'로 불리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7년 <최고의 한방>과 <화유기>에 출연해 좋은 연기를 선보인 이세영은 2018년 독립영화 <수성못>에 출연하면서 한층 넓어진 연기 폭을 보여줬다. 2019년 천만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를 드라마로 만든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을 연기한 이세영은 같은 해 <의사요한>에서 섬세한 감정연기를 선보이며 2019년 SBS 연기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20년대 들어 이세영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활짝 열렸다.

이세영은 2021년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궁녀 성덕임 역을 맡아 10대부터 30대까지 아우르는 폭 넓은 연기를 선보이며 17.4%의 높은 시청률을 견인했다(닐슨코리아 기준). 2022년 <법대로 사랑해라>에서 <화유기>에 함께 출연했던 이승기와 재회한 이세영은 2023년 타임슬립 가상역사극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을 통해 '사극불패'를 이어갔다. 이세영은 차기작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일본배우 사카구치 켄타로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다 보여주려다 길을 잃은 청춘 복고영화
 
 귀엽고 여린 이미지의 박보영에게 일진 역할은 대단히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귀엽고 여린 이미지의 박보영에게 일진 역할은 대단히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피끓는 청춘>은 <늑대소년>으로 700만 관객을 동원했고 충청도에서 초·중·고를 나온 박보영과 2013년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로 가장 잘 나가는 청춘배우가 된 이종석을 캐스팅해 만든 영화다. 게다가 개봉시기도 겨울방학이 한창인 데다가 설 연휴를 일주일 앞둔 1월 22일. 그 시절을 살았던 중년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박보영, 이종석을 좋아하는 젊은 관객들까지 잡을 수 있는 <피 끓는 청춘>의 흥행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14년 겨울방학과 설 연휴의 흥행 승자는 <피 끓는 청춘>이 아닌 훗날 <오징어 게임>을 만드는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였다. <수상한 그녀>가 2월까지 장기흥행을 하며 866만 관객을 모으는 사이 <피 끓는 청춘>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손익분기점을 살짝 넘긴 167만 관객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개봉 전 쏟아졌던 기대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임에 분명했다.

사실 1970~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위 '복고영화'들은 저마다 확실한 주제와 색깔이 있다. 2003년에 개봉했던 <클래식>과 2012년작 <늑대소년>은 가슴 절절한 멜로를 보여주려 한 영화였고 2004년에 개봉한 <말죽거리 잔혹사>는 액션을 통한 주인공의 성장, 2011년작 <써니>는 코미디를 통한 여학생들의 우정을 보여주려 한 작품이다. 하지만 1980년대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피끓는 청춘>은 영화가 추구하는 확실한 주제와 색깔을 찾기 힘들었다.

<피끓는 청춘>은 어린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던 영숙(박보영 분)과 중길(이종석 분)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린 멜로영화이자 1980년대 충청도 고등학교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였다. 여기에 자신을 위한 영숙의 희생을 계기로 각성해 지역의 싸움짱 광식(김영광 분)과 싸워 승리하는 중길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피끓는 청춘>은 아쉽게도 여러 이야기들이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한 채 겉돌고 말았다.

작고 귀여운 이미지가 강한 박보영은 비중이 크지 않았던 <울학교 이티>부터 출세작 <과속스캔들> <늑대소년> 등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로 여린 소녀를 연기했다. 그런 박보영이 연기한 홍성농고를 접수한 여자 일진 영숙은 관객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충청도 출신으로 고향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출연하는 재미와 보람은 있었겠지만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피끓는 청춘>의 영숙은 박보영에게 어울리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주인공 괴롭히는 청춘영화의 전형적인 빌런
 
 김영광은 중길과 영숙, 소희를 모두 괴롭히는 <피끓는 청춘>의 빌런 광식을 연기했다.

김영광은 중길과 영숙, 소희를 모두 괴롭히는 <피끓는 청춘>의 빌런 광식을 연기했다.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이종혁이 연기했던 선도부장 차종훈처럼 청춘물에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싸움 잘하는 빌런 캐릭터가 필요하다. <피끓는 청춘>에서는 김영광이 연기한 홍성공고 짱 광식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영화 중반까지만 해도 영숙을 좋아하는 순정마초 캐릭터인 줄 알았던 광식은 영숙이 자퇴를 하자 영숙의 오른팔이었던 연화(전수진 분)를 시켜 영숙을 집단린치하게 하고 연화를 새 여자친구로 만드는, 쓰레기 같은 캐릭터였다.

이세영이 연기한 소희는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뺨 치는 미인 전학생'으로 남학생 반에서 소문이 자자했다(당시 남녀공학은 종종 있어도 남녀합반은 매우 드물었다). 실제로 새침한 성격과 행동으로 중길을 비롯한 남학생들을 설레게 하지만 사실 소희는 서울에서 사고 치고 시골로 전학 온 유명한 일진이었다. 소희는 우연히 영숙에게 담배갑을 들키면서 화장실에서 영숙과 육탄전을 벌이고 정체가 드러난다.

최근 드라마 <형사X재벌>과 <웨딩 임파서블>에 출연한 배우 권해효는 <피끓는 청춘>에서 중길의 아버지를 연기했다. 초반만 해도 그저 중길에게 바람기를 물려준 아버지처럼 나왔지만 사실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아내가 돌아올 거라 믿고 아내의 옷가지를 보관하는 순애보 있는 남자였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영숙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자주 술을 마시는데 이 때문에 동네에서 영숙 어머니와 바람이 났다고 오해 받기도 했다. 

2016년 <동주>로 신인상 5관왕, 2021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남우조연상 3관왕을 차지한 젊은 연기파배우 박정민은 아직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전이었던 2014년 <피끓는 청춘>에서 중길의 친구 황규 역을 맡았다. 황규는 영숙이 중길에게 데이트신청을 하자 이를 거절하러 대신 나가 영숙에게 추파를 던지다가 흠씬 두들겨 맞는다. 이때 황규가 코피를 흘리며 영숙에게 "나는 왜 안 되는겨"라고 애처롭게 말하는 장면이 웃음포인트.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피끓는청춘 이연우감독 이세영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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