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는 <가을의 전설>과 <세븐>,<파이트 클럽> 등으로 배우로서 전성기에 진입했던 2001년 영화사 '플랜B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1960년대 '서부영화의 아이콘'으로 명성을 날린 후 1971년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를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처럼 감독과 배우활동을 병행하는 영화인들은 한 곳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을 때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재주꾼 벤 스틸러는 달랐다. 1992년 TV쇼 <벤 스틸러 쇼>에서 연출과 각본,주연을 맡았던 벤 스틸러는 1994년 영화 <청춘스케치>의 주연과 연출, 1996년 <케이블 가이>의 연출을 맡으며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고 1998년에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통해 배우로서도 주목 받기 시작했다. 특히 벤 스틸러가 1인4역을 맡은 2001년작 <쥬랜더>는 그의 B급 개그정서를 집대성한 영화였다.

벤 스틸러는 2008년 <트로픽 썬더>와 2013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도 주연과 감독을 겸하며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배우 겸 감독으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정작 벤 스틸러에게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안겨준 대표시리즈는 연출이나 제작 참여 없이 오직 연기에만 전념한 작품이었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 동안 세 편에 걸쳐 제작됐던 숀 레비 감독의 코믹 액션 어드벤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였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2006년 연말에 개봉해 5억7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2006년 연말에 개봉해 5억7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예술보단 흥행에 특화된 대중지향적인 감독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레비 감독은 예일대학교에서 공연예술학을 전공한 후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로버트 저메키스 등 거장들을 배출한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영화학 석사 과정을 마친 '정통파' 감독이다. 1997년 <저스트 인 타임>을 연출하며 데뷔한 레비 감독은 2003년 청춘스타 애쉬튼 커처가 주연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를 통해 주목 받기 시작했다.

2003년 세계적으로 1억9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열 두 명의 웬수들>을 연출한 레비 감독은 2005년 <헤어스프레이>의 아담 쉥크만 감독이 만든 <열 두 명의 웬수들2>에는 제작에만 참여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리고 2006년 자신의 첫 번째 인생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벤 스틸러라는 좋은 코미디 배우를 만나 제작비의 5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이끌었다.

보통 다음 영화에 대한 구상이 분명한 감독은 속편 연출을 다른 감독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지만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제작에도 참여했던 레비 감독은 속편은 물론 3편까지 연출을 모두 책임졌다. 제작비가 1억5000만 달러로 증가한 2편은 2009년에 개봉해 1편에 비해 흥행성적이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제작비의 3배 가까운 성적을 올렸다. 배경을 영국으로 옮긴 3편도 2014년에 개봉해 3억63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레비 감독의 필모그라피에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2편과 3편 사이에 또 하나의 대표작이 끼어 있다. 바로 2011년에 개봉했던 로봇 복싱을 소재로 한 휴 잭맨 주연의 <리얼 스틸>이다. 레비 감독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대선배 스필버그 감독과 저메키스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리얼 스틸>에서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는 로봇 복싱이라는 소재를 가족애와 적절히 연결시키면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코미디 영화를 많이 연출했던 레비 감독은 지금까지 영화제 수상경력도 없고 평론가들로부터 썩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도 아니다. 하지만 재치 있는 화면구성과 뛰어난 액션연출로 대중지향적인 영화를 잘 만들어 '흥행타율'이 높은 감독으로 명성이 높다. 레비 감독의 차기작은 내년 개봉 예정인 휴 잭맨과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데드풀3>다(다만 미국 배우조합 파업의 여파로 아직 정확한 개봉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볼거리와 역사지식, 가족관객들에게 딱
 
 박물관의 공룡이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가족관객들이 좋아할  요소를 대거 갖추고 있다.

박물관의 공룡이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가족관객들이 좋아할 요소를 대거 갖추고 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최근 <서울의 봄>이 돌풍을 일으키기 전까지 극장가의 침체가 상당히 길었지만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극장의 주요 고객은 연인과 1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 관객들이었다. 그리고 <국제시장>이나 <서울의 봄>처럼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개봉하면 극장에 장년층 관객이 늘어난다. 또한 박물관 속 인형과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같은 영화가 개봉하면 부모님 손을 잡고 극장을 찾는 어린이 관객들이 부쩍 늘어난다.

실제로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국내와 북미에서 모두 크리스마스와 연말시즌이 겹치는 2006년 12월에 개봉했다. 국내에서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미녀는 괴로워>와 < 007 카지노 로얄 >,<조폭마누라3> 등과 경쟁해 전국 461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661만의 <미녀는 괴로워>에 이어 국내에서 겨울시즌 흥행 2위를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유치하다고 느낀 관객도 적지 않았지만 흥미를 느낀 관객이 더욱 많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어린이 관객들은 인형들과 동물들이 밤만 되면 살아 움직이면서 박물관의 야간경비원 래리(벤 스틸러 분)를 곤란하게 만드는 장면을 보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부모들 역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레비 감독과 벤 스틸러도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 코미디'라는 장르에 충실하며 선을 넘지 않고 영화를 완성시켰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는 세 편 합쳐 13억50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당연히 4편 제작을 욕심 낼 만한 성적이었지만 벤 스틸러는 <쥬랜더2> 제작 등으로 시간을 내기 힘들었고 결국 현재까지도 <박물관이 살아있다!> 실사영화 4편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신 작년 12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스핀오프 애니메이션 <박물관이 살아있다!: 돌아온 카문라>가 공개됐는데 실사 3부작에 비해 썩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이집트 미라로 출연하는 프레디 머큐리
 
 아크멘라 역의 라미 말렉은 12년 후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스타배우로 급부상했다.

아크멘라 역의 라미 말렉은 12년 후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스타배우로 급부상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는 인간캐릭터보다는 주인공 래리와 모험을 하는 인형이나 미니어처 캐릭터들의 캐스팅이 매우 화려했다.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 미 육군 기병 장교 시절의 왁스인형으로 전시돼 있는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고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했다. 래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현자 캐릭터지만 정작 본인은 짝사랑하는 사카주위아(미주오 펙 분)에게 고백도 하지 못하는 소심한 인물로 나온다. 

서부개척시대에 미국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철도개발자 제데다이아 스미스의 미니어처는 <쥬랜더>에서 헨젤 역으로 벤 스틸러와 콤비 연기를 선보인 적이 있는 오언 윌슨이 연기했다. 옆 칸에 있는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옥타비우스의 미니어처(스티브 쿠건 분)와는 앙숙지간으로 매일 밤 승부가 나지 않는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래리의 설득으로 화해한 제레다야와 옥타비우스는 생사를 함께 하는 최고의 콤비로 거듭난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에는 훗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스타로 성장하는 배우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 바로 2018년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 라미 말렉이다. 실제로도 이집트계 미국인 배우인 말렉은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이집트 파라오의 미라 아크멘라 역을 맡았다. 이집트 미라임에도 영어가 꽤나 능통한데 이는 아크멘라가 과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전시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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