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김한민 감독의 <극락도 살인사건>을 통해 단독주연 신고식을 치른 박해일은 2011년 <최종병기 활>에서 김한민 감독과 4년 만에 재회하며 전국 747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처럼 호흡이 잘 맞았던 박해일과 김한민 감독은 <최종병기 활> 이후 10년 넘게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지 않았다(그 사이 김한민 감독은 <명량>으로 한국영화 역대 최다관객을 동원한 감독이 됐다).

박해일은 <최종병기 활> 이후 <은교> <고령화 가족> <제보자> <나의 독재자> <덕혜옹주> <남한산성> <나랏말싸미> <헤어질 결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중 김한민 감독과 협업한 작품은 없었다. 하지만 박해일은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김한민 감독과 100일 넘게 동고동락하며 신작을 찍었고 지난해에 드디어 그 결과물을 공개했다. 김한민 감독 '이순신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였던 <한산: 용의 출현>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지적인 배우의 대명사로 꼽히는 덴젤 워싱턴과 'SF의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동생이자 대중적인 액션 연출에 특화된 고 토니 스콧 감독도 네 편의 영화를 함께 했던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감독-배우 콤비다. 특히 2004년에 개봉했던 범죄액션 드라마 <맨 온 파이어>는 토니 스콧 감독과 덴젤 워싱턴이 1995년 <크림슨 타이드> 이후 9년 만에 다시 뭉쳐 만든 영화로 많은 화제가 됐다.
 
 <맨 온 파이어>는 국내에서 2004년9월에 개봉해 전국 48만 관객을 동원했다.

<맨 온 파이어>는 국내에서 2004년9월에 개봉해 전국 48만 관객을 동원했다. ⓒ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1인이 조직을 몰살시키는 액션영화들

현실에서는 아무리 엄청난 원한이 있거나 상대가 얼마나 나쁜 집단인지 알고 있더라도 개인이 조직이나 집단을 상대로 응징 또는 '참교육'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슈퍼 히어로처럼 초능력이 없이도 인간 자체가 강한 주인공이 악한 조직이나 집단을 단신으로 초토화시키기도 한다. 주인공 개인이 조직을 응징하는 액션영화는 관객들이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더 없이 좋은 장르가 아닐 수 없다.

영화 <테이큰>은 전직 CIA 요원 브라이언 밀스(리암 니슨 분)가 프랑스 여행 도중 납치된 딸 킴(메기 그레이스 분)을 구하기 위해 인신매매 조직을 괴멸시킨다는 내용의 액션 스릴러 영화다. 브라이언은 어떤 순간에도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딸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 움직인다. 브라이언은 더 말썽 부리지 말고 프랑스를 떠나라는 전 동료의 협박에 "딸을 구할 수 있으면 에펠탑도 무너트릴 수 있어"라고 일갈한다.

사실 혼자의 힘으로 조직을 초토화시키는 영화의 최고봉은 단연 키아누 리브스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영화 <존 윅>이다. <존 윅>은 쓸데없는 감상이나 주변 이야기들을 최소화한 채 존 윅의 액션과 복수에만 모든 물량을 쏟아 부으며 흥행은 물론이고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제작비가 올라간 <존 윅>은 그만큼 흥행성적도 상승하면서 인기 시리즈로 자리 잡았고 올해 개봉한 4편 역시 인상적인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은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날, 과거 자신이 속했던 암살조직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갔던 베아트릭스 키도(우마 서먼 분)가 자신을 살해하려 했던 5명의 조직원에게 복수하는 영화다. 여성 개인이 조직을 상대하는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던<킬 빌>은 2편으로 나눠서 개봉했는데 1부 하이라이트인 오렌 이시이(루시 리우 분)가 이끄는 야쿠자 조직 '크레이지88'과의 대결이 단연 압권이다.

한국영화 중에서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빈의 마지막 영화로 남아 있는 <아저씨>가 개인이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대표적인 영화로 꼽힌다. <아저씨>는 주인공 차태식이 옆집소녀 소미(김새론 분)가 납치되자 마약과 장기밀매를 하는 만석(김희원 분)과 종석(김성오 분) 형제가 이끄는 조직을 섬멸한다는 내용이다. 2012년에 개봉한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 역시 주인공이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초토화시킨다는 내용의 1인 액션영화다.

'인자강' 주인공이 범죄조직 소탕하는 영화
 
 크리시는 피타의 유괴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범죄자들에게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크리시는 피타의 유괴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범죄자들에게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맨 온 파이어>는 토니 스콧 감독과 덴젤 워싱턴이 치료를 위해 치과를 찾으면서 진행됐다. 1995년 <크림슨 타이드> 이후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이 없었던 두 사람은 치과의 대기실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때 토니 스콧 감독이 차과에 방문하기 전날에 봤던 영화 <아이 엠 샘>을 떠올리면서 다코타 패닝과 덴젤 워싱턴이 등장하는 영화를 구상했고 덴젤 워싱턴 역시 이에 흔쾌히 응하면서 프로젝트가 전격 성사됐다.

<맨 온 파이어>는 1981년 고 A.J. 퀴넬 작가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을 따 '크리시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총 5권이 출간됐는데 영화는 이 중 1편인 <불타는 사나이(Man on Fire)>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맨 온 파이어>는 1987년에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합작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는데 <지옥의 묵시록>과 <양들의 침묵> <분노의 역류> 등에 출연했던 스캇 글렌이 주인공 존 크리시를 연기했다.

사실 범죄 액션 드라마 장르는 <스피드>처럼 멋지고 정의로운 주인공과 영리하면서도 극악무도한 빌런이 일진일퇴의 양보 없는 대결을 주고 받을 때 영화의 재미가 극대화된다. 하지만 <맨 온 파이어>에서 빌런은 그냥 돈을 노린 마피아와 빚에 쪼들린 피타의 아버지 사무엘(마크 앤소니 분)이었다. 따라서 <맨 온 파이어>의 진정한 재미는 주인공 크리시(덴젤 워싱턴 분)가 인간 쓰레기들을 자비 없이 응징하는 장면들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크리시가 인질 피타(다코타 패닝 분)와 마피아 두목 다니엘의 동생 아우렐리오를 교환하고 자신도 끌려가던 도중 과다출혈로 사망하면서 마무리된다. 하지만 소설판에서 크리시는 죽음을 위장하고 은거했다가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범죄에 휘말려 싸우게 된다. 내심 속편 제작을 기다렸던 관객들은 영화가 모두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크리시의 죽음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토니 스콧 감독은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 크리시를 사망에 이르게 하면서 속편 제작을 기대했던 관객들을 실망시켰다. 하지만 토니 스콧 감독과 덴젤 워싱턴 감독의 인연은 <맨 온 파이어> 이후 2006년 <데자뷰>와 2009년 <펠햄 123>까지 계속 이어졌다. 일부 영화팬들은 <맨 온 파이어>부터 <데자뷰> <펠햄 123>로 이어지는 세 작품을 '토니 스콧과 덴젤 워싱턴의 범죄액션 3부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뚝뚝한 경호원도 '아빠 미소' 짓게 하는 소녀
 
 2000년대 초·중반의 다코타 패닝은 덴젤 워싱턴 같은 진지한 배우도 무장해제시키는 힘을 가진 아역배우였다.

2000년대 초·중반의 다코타 패닝은 덴젤 워싱턴 같은 진지한 배우도 무장해제시키는 힘을 가진 아역배우였다. ⓒ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이제 두 달 후면 만 서른이 되지만 다코타 패닝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할리우드의 국민여동생'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최고의 아역 배우였다. 패닝은 <맨 온 파이어>에 출연한 2004년에도 만 10세에 불과한 어린 나이였는데 그녀가 연기한 피타는 반짝이는 눈과 천진하고 다정한 성격으로 얼음 덩어리 같았던 크리시를 무장해제시킨다. 특히 크리시가 피타를 보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가 피타에게 들키는 장면은 의외의 웃음포인트.

호주 출신 배우 라다 미첼은 <맨 온 파이어>에서 피타의 엄마 리사를 연기했다. 리사는 유괴 당한 피타가 죽었다고 생각한 후 크리시가 복수를 결심했다는 걸 알고 크리시에게 '피타의 유괴에 관련된 인간들을 모두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재정적인 이유 때문에 보험금을 노리고 마피아와 딸의 유괴를 공모했던 남편 사무엘도 있었다(사무엘은 자신이 딸의 유괴에 관여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디어 헌터>와 <트루 로맨스> <배트맨 리턴즈> <펄프 픽션>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 여러 장르의 영화를 오가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 크리스토퍼 워컨은 <맨 온 파이어>에서 크리시의 선배 폴을 연기했다. 폴은 은퇴 후 요원 시절에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 때문에 알코올에 의존하며 폐인처럼 살던 크리시에게 부잣집 경호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 줬다. 그리고 크리시가 그곳에서 만난 아이가 바로 피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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