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와 정우성, 김윤석, 유지태, 문소리, 하정우 등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들이라는 점 외에도 감독에 도전한 적이 있는 배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이정재 감독의 <헌트>처럼 200억 원이 넘는 거대자본이 들어간 영화도 있고 김윤석 감독의 <미성년>처럼 독립영화라고 하기엔 많지만 상업영화의 제작비로는 결코 많지 않은 20억 원의 제작비로 만든 영화도 있다. 하지만 연출에 도전한 배우들의 설레는 마음은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할리우드에는 배우 출신 감독이 더욱 많다. <분노의 역류>와 <뷰티풀 마인드>를 연출한 론 하워드 감독은 아역배우로 시작해 청년 시절까지 배우로 활동했다. <론 서바이버>와 <딥워터 호라이즌> <패트리어트 데이> 등을 연출했던 피터 버그 감독도 1998년 <베리 배드 씽>을 연출하기 전까진 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며 배우로도 감독으로도 정점을 찍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말할 것도 없다.

나라의 작은 규모에도 1990년대 초·중반까지 아시아 영화계를 주름 잡았던 홍콩에서도 배우와 감독을 겸하는 스타들이 많았다. 하지만 1980년대 전성기를 보낸 이 배우는 무술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배우와 감독, 제작, 각본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배우로서 최전성기를 달리던 1983년, 감독과 주연, 제작, 각본까지 1인 4역을 담당하며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영화 <오복성>의 홍금보가 그 주인공이다.
 
 홍금보가 1인4역을 맡은 <오복성>은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을 받으며 많은 아류작과 속편들이 제작됐다.

홍금보가 1인4역을 맡은 <오복성>은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을 받으며 많은 아류작과 속편들이 제작됐다. ⓒ 골든하베스트

 
1980년대 수놓았던 홍콩영화의 재주꾼

홍콩을 제외한 아시아의 영화팬들에게 '홍콩 액션스타의 계보'를 꼽아달라고 하면 상당수가 이소룡-성룡-이연걸-견자단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이야기할 것이다. 홍금보는 홍콩에서 액션배우와 감독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거물이지만 육중한 체구와 성룡과 겹치는 전성기 때문에 홍콩을 벗어난 다른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밀리는 편이다. 하지만 홍금보는 홍콩 액션영화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영화 감독이었던 할아버지와 액션배우였던 할머니 밑에서 자란 홍금보는 9살 때 아역배우로 데뷔했고 10살 때 중국 희극연구학교에 입학해 8년 동안 무술을 수련했다. 이때 받은 예명이 원룡이었는데 여기서 만난 동기 원루(성룡), 원표와 함께 그 유명한 '가화삼보'를 결성해 명성을 날렸다. 1970년 무술감독 일을 시작한 홍금보는 고 이소룡의 <정무문> <용쟁호투> <사망유희>에 출연했고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서는 무술감독을 맡았다.

홍금보는 1980년대 배우와 감독, 제작자로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렸다. 1980년 <귀타귀>로 홍콩식 코믹호러의 방향을 제시한 홍금보는 <강시선생> 시리즈를 통해 아시아 전역에 강시붐을 일으켰다. 1983년에는 <오복성>을 흥행시키면서 <복성고조> <칠복성> 등으로 이어지는 '복성 시리즈'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1985년에는 지금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가 된 양자경의 출세작 <예스 마담>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7년 성룡 주연의 <나이스 가이>를 연출한 후 미국에 진출한 홍금보는 1998년 드라마 <동양특급 로형사>에 출연했다. 홍금보는 2000년대 들어서도 2003년 성룡 주연의 <메달리온>과 2005년 주성치 주연의 <쿵푸허슬>, 2008년 견자단 주연의 <엽문>에서 무술감독으로 참여하며 건재한 능력을 보여줬다. 2016년에는 <홍금보의 보디가드>에서 주연을 맡아 녹슬지 않은 액션연기를 선보이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홍금보는 1980년대 초·중반 코믹액션영화의 주인공을 도맡으며 유쾌하고 친근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 하지만 나이가 든 이후로는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절대고수 역으로 출연할 때가 많았다. 특히 종종 악역을 맡았을 때는 그야말로 최종보스에 걸맞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관객들을 압도했다. 홍금보는 양조위 같은 연기파 배우로 불리진 못했지만 액션배우 중에서는 매우 넓은 연기 폭을 자랑하는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홍금보-성룡-원표가 함께 출연한 첫 번째 영화
 
 <오보성>에는 홍금보를 비롯해 성룡,오요한,종초홍 등이 유쾌한 코믹연기를 선보였다.

<오보성>에는 홍금보를 비롯해 성룡,오요한,종초홍 등이 유쾌한 코믹연기를 선보였다. ⓒ 골든하베스트

 
1983년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홍금보는 본인이 직접 감독과 제작, 각본, 주연까지 맡은 코믹 액션영화 <오복성>을 만들었다. 5명으로 구성된 콤비가 좌충우돌 사건을 해결하는 영화로 국내에서도 1983년 연말에 개봉해 서울에서만 2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실제로 아시아에서는 개구쟁이 남자아이 5명이 모이면 스스로를 '오복성'이라 부르고 다닐 정도로 <오복성>이 그 시절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오복성>은 대놓고 코미디를 지향하는 영화다. 따라서 영화의 흐름과 별개로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 뜬금없이 들어간 장면도 적지 않다. 영화에서 가장 웃긴 장면으로 꼽히는 코털(오요한 분)이 투명인간이 되는 장면 역시 영화의 메인스토리와는 상관없이 약 10분의 시간을 할애해 상세하게 보여줬다. 물론 관객들도 <오복성>의 장르가 코미디인 걸 잘 알기 때문에 코미디를 위한 다소 뜬금없는 장면에도 특별히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복성>은 영화의 또 다른 장르인 '액션'에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특히 영화 중반 롤러스케이트로 시작해 오토바이로 이어지다가 자동차 50중 추돌사고로 마무리되는 성룡의 추격전은 상당히 멋지다(물론 '조연'을 맡은 성룡은 이 때문에 교통 단속과로 좌천되면서 사실상 메인스토리에서 제외된다). 무엇보다 <오복성>이 1980년대 초반 홍콩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추격전의 퀄리티는 상당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오복성>은 1980년대 홍콩 액션영화의 한 획을 그은 홍금보와 성룡, 원표로 구성된 골든하베스트사의 '가화삼보'가 처음 함께 출연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오복성>에서 홍금보는 주인공 주전자를 연기했고 성룡은 '악바리'로 불리는 홍콩의 강력계형사 역을 맡았다. 공식 캐릭터 없이 무술감독으로 <오복성>에 참여한 원표는 영화 중반 성룡과 시비가 붙어 대련을 하다가 서로 경찰임을 확인하고 쿨하게 인사하며 헤어지는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다. 

<오복성>이 크게 흥행한 후 1985년에는 <오복성>과 출연배우가 많이 겹치는 영화 <복성고조>가 개봉했다. 흔히 <복성고조>를 <오복성>의 속편으로 알고 있는 관객들이 많지만 사실 <복성고조>는 <오복성>과 세계관이 다른 영화다. 1987년에 개봉한 <칠복성>도 <오복성>이 아닌 <복성고조>의 속편이고 <속 오복성>과 <오복성3-운재오복성>도 출연배우 홍금보와 오요한 정도를 제외하면 <오복성>과의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다.

선배가 만든 영화에서 조연 자처한 성룡
 
 종초홍은 1980년대 왕조현,장만옥,관지림과 함께 홍콩영화의 4대 여신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종초홍은 1980년대 왕조현,장만옥,관지림과 함께 홍콩영화의 4대 여신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골든하베스트

 
1979년 <취권>으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오복성>에 출연할 때만 해도 성룡은 홍콩 영화의 절대적인 넘버원 자리에 오른 상태는 아니었다. 따라서 성룡은 '가화삼보'의 첫째 홍금보가 연출한 <오복성>에서도 조연급 캐릭터로 출연했다. 비록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끓어 오르는 액션본능을 주체하지 못한 성룡은 롤러스케이트 추격전을 비롯해 등장할 때마다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확실한 존재감을 뽐냈다.

1979년 미스 홍콩 출신의 종초홍은 10여 년의 짧은 활동만 하고 은퇴한 배우지만 그 시절 홍콩영화를 좋아했던 남성팬들에겐 여전히 흠모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종초홍은 데뷔 초였던 1983년 <오복성>에서 꼽슬이(잠건훈 분)의 여동생 미미 역을 맡았는데 분명 오빠를 닮았을 거라 생각했던 오복성 멤버들은 그녀의 미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미미는 영화에서 모든 맴버들의 구애를 받지만 마지막에는 주인공인 주전자와 결혼을 약속한다.

코믹한 이미지의 나머지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멀끔한 인상을 가진 바세린 역의 진상림은 실제로도 멜로장르의 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배우로 <오복성>은 일종의 연기 변신이었다. 바세린은 <오복성>에서 특유의 느끼한 매력으로 여성들을 유혹하려 하지만 생각보다 성공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오복성>에서 의외로 많은 액션장면을 소화한 진상림은 1991년 <속 오복성>을 끝으로 공식적인 활동소식이 없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오복성 홍금보감독 성룡 종초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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