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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도 생선입니다. 비록 작은 텃밭을 일구어도 해야 하는 일은 얼추 비슷합니다. 제법 바쁜 농부죠. 텃밭 크기는 4m x 8m입니다. 여기에 60cm x 180cm 크기의 플랜터박스(이동식 화분)가 2개 있으니 다 더하면 대략 10평 정도네요.

하루에 한두 시간 몸을 움직여 일하기에 딱 좋은 면적입니다. 아마도 밭이 더 넓었다면, 즐거움보다 피로감이 앞서지 않았을까 싶네요.
 
텃밭을 가꾸는 기본적 농기구는 호미, 모종삽, 삽, 손써레, 삽괭이입니다. 간단하죠? 손써레는 쇠스랑, 가래, 고무래, 갈퀴, rake, 레기, 네기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삽괭이 역시 괭이, 홉바, 호파 등으로 불립니다. 농기구의 용어정리도 필요한데 국적 불명, 중구난방으로 불리고 있어 안타깝네요.

농부의 마음
 
작은 텃밭이어도 농부의 마음으로 흙을 만집니다. 토양측정기를 꽂아보니 PH5~6 정도가 나오네요. PH7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으면 산성, 높으면 알칼리성이라 합니다. 봄이 오기 전에 석회고토를 뿌려서 흙을 중화시켜 줍니다. 그동안 구획을 나눠 어디에 어떤 작물을 심을지 구상합니다. 키 큰 작물로 인해 그늘지지 않게, 작년에 심은 작물을 같은 곳에 심지 않도록 하고, 퇴비도 미리 사서 말려 가스를 빼줍니다.
 
2월 중순경 밑거름 퇴비와 토양살충제를 섞어 밭을 일굽니다. 퇴비는 5평당 20kg 한 포 정도를 사용하는데 열매채소를 심을 곳에는 더 많이 넣어줍니다.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모종을 심을 두둑엔 검정비닐로 멀칭을 합니다. 이제 때맞춰 심고 가꾸어 수확하면 됩니다.
 
3월 초 열무와 완두콩, 씨감자를 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중순에는 쌈채소와 시금치, 당근을 파종합니다. 씨앗은 필요한 만큼만 쓰고 냉동 보관합니다. 실내에선 오이, 애호박, 옥수수, 양배추, 오크라, 상추 모종을 키웁니다. 4월 중순이면 열무를 수확합니다. 억세지기 전에 일찍 걷어 김치를 담급니다. 실내에서 기른 모종을 하나둘 밭에 옮겨 심고, 하순엔 고추와 방울토마토, 바질, 참외 모종도 종묘사에서 사다가 심습니다.
 
5월엔 상추와 시금치를 수확하고 감자, 오이, 호박, 고추, 토마토의 순을 질러줍니다. 이때쯤 오이, 호박과 고추, 방울토마토를 위한 지지대를 단단히 설치해 줍니다. 하순에는 고구마순과 실파를 종묘사와 시장에서 사다가 심습니다. 6월에 하지가 지나 잎이 마르면, 감자를 캐고 퇴비를 보충한 후 임시로 열무나 상추를 키웁니다. 이곳은 나중에 김장채소를 키우게 됩니다.
 
7월엔 옥수수와 양배추를 수확하고, 고추와 방울토마토가 장맛비와 태풍에 쓰러지지 않도록 줄을 매 줍니다. 8월 들어 무와 당근 씨앗을 뿌리고, 하순에는 배추 모종을 사다가 심습니다. 9월 초에 갓을 파종하고 하순에는 고구마를 수확합니다. 10월에 양파 모종을 사다가 심고, 11월 하순에 고추를 걷고 무와 배추를 수확하면 일 년 농사가 마무리됩니다.

서른 가지 넘게 키운 작물들
 
일 년 동안 애쓴 열 평 텃밭과 농기구
 일 년 동안 애쓴 열 평 텃밭과 농기구
ⓒ 김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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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올해 자란 작물이 아스파라거스, 열무, 머위, 취나물, 시금치, 상추, 양상추, 치커리, 감자, 완두콩, 옥수수, 오이, 애호박, 부추, 청양고추, 오이고추, 오크라, 방울토마토, 대파, 고수, 산마늘, 양배추, 브로콜리, 파프리카, 참외, 들깨, 단호박, 당근, 바질, 고구마, 갓, 배추, 무, 양파까지 서른 가지가 넘네요.
 
가짓수가 많아진 것은 밭이 놀지 않도록 궁리하고, 남아서 버리지 않도록 다양한 작물을 키운 때문입니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감자, 고구마, 오이, 호박, 고추, 양배추의 공간을 먼저 확보하고, 재배기간이 짧은 잎채소는 플랜터박스에서 별도로 키웠습니다.

또 파종 시기를 조절해서 연중 계속해서 수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열려 걱정하는 시기가 오는데요. 제때 따주지 않으면 무거워서 쓰러지기도 하고 제맛을 잃게 됩니다.
 
물론 모두 훌륭하게 키워낸 것은 아닙니다. 파프리카, 참외, 단호박은 장마에 뭉개졌고, 브로콜리와 산마늘도 딱 한 끼 수준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애호박, 오이, 고추, 오크라, 쌈채소는 수확량이 꽤 많아서 이웃에게 나눠주고 냉장 보관까지 했지만 그래도 썩어서 버린 것이 적지 않습니다. 썰어서 햇볕에 말리거나, 냉동하든가, 절여서 반찬으로 만들면 좋겠죠. 무엇보다 적당한 양을 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너무 교과서대로 하면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힘듭니다. 그리고 사실 정답도 없습니다. 뭐 하나 빠져도 자랄 만큼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쯤에서 조그맣고 불편한 밭이지만, 서툴고 게으른 농부지만, 한결같이 자라서 끊임없이 선물을 준 텃밭과 채소군단에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상 텃밭 농부의 열두 달간 농사일지였습니다. 

태그:#텃밭, #채소, #농부, #농사,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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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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