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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골에서 살다 보니 "자연과 함께 사는구나?"와 같은 말을 듣곤 합니다. 민망하죠. 내 구미에 맞게 억지로 만든 뜨락,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적응하며 견뎌온 식물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자연은 인간처럼 식물에게서 어떤 쓸모를 찾지 않습니다. 그래도 도시의 아파트보다 이곳의 정원이 자연에게 덜 위협적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자연은 무슨..."에서 "음악도 듣고, 꽃도 가꾸고..."로 대답이 넘어갈 때 내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꽃이라 하면 음악처럼 좀 더 가볍게 얘기하게 됩니다. 사실 어디서 살든 또 무엇을 하든 즐거움이 없으면 오래가기 어렵잖아요? 꽃 가꾸기는 듣고 싶은 노래가 담긴 뮤직플레이어 같습니다. 그 속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있습니다.

정원에도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어납니다. 색깔도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그래서 좋습니다. 듬성듬성 또는 무더기로 피었을 때의 행색이 다르고, 가까이 볼 때와 멀리서 볼 때의 색상이 달라집니다. 햇빛의 농도와 꽃잎의 질감이 만든 색감은 망막까지만 허락된 것, 사람이 재현해 낼 수 없습니다.

악기와 목소리에도 음색이 있죠. 고가의 악기나 저명한 가수들이 가진 음색은 독보적이고 모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꽃은 색깔과 향기로, 음악은 소리와 멜로디로 전혀 다른 감각을 자극하지만, 감정을 끌어내는 힘은 같습니다. 파동과 색깔이 만나는 지점에서 듣고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별의별 음악이 다 나타납니다.
 
4월, 정원에 핀 꽃
 4월, 정원에 핀 꽃
ⓒ 김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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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보이는 음악입니다. 이스라지나 이베리스를 보면 이은미의 '어떤 그리움' 같은 발라드가 들려옵니다. 겉보기엔 화사하지만 이별의 슬픔처럼 유심히 보아야 알아챌 수 있는 아련함이 있죠. 라일락과 수선화는 팝 음악이 어울려요.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친근함과 경쾌함이 있습니다. 철쭉, 영산홍, 황매화의 펑펑 터지는 꽃송이는 흥겨운 로큰롤이고요. 구불구불한 꽃송이에 자유분방함과 비범함을 갖춘 히야신스는 재즈에 가깝습니다. 자두꽃, 사과꽃, 모과꽃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존 덴버의 포크송 'Today'가 떠오릅니다.

커다란 꽃잎이 짙은 갈색으로 변해 뚝뚝 떨어지는 목련에서는 블루지한 음악이 연상됩니다. 묵직한 느낌의 꽃송이를 가진 동백의 짙은 빨강은 헤비메탈로 다가오고, 작약은 몇 송이 만으로도 화단을 풍성하게 만드는 현악 4중주, 꽃잔디는 무더기로 피어나 관현악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반면 옥잠화, 은방울꽃처럼 찬란한 흰색을 가진 꽃들에게선 피아노 독주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뜬금없겠지만 할미꽃과 매발톱꽃의 구부정하게 수그린 모습에서 다이내믹한 래퍼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음악에는 인생의 어느 한순간을 붙잡아 잠시 머물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억일 수도 있고 가던 걸음이기도 합니다. 한 송이로도 아름답지만 줄지어 섰거나 군락을 이루었을 때 더욱 빛나는 정원의 꽃은, 하나의 음에서 멜로디가 되었다가 곡을 이룰 때 조화롭게 완성되는 음악과 닮아있습니다. 사람의 손을 타는 것까지도 말이죠.

때론 흥겨운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드럽고 편안한 곡들이 끌립니다. 삶의 속도가 늦춰져야 비로소 꽃이 보인다고 하니 비슷한 이치겠죠? 예전엔 꽃을 보기 위해 멀리 떠나기도 했지만 함께 살지는 않았습니다. 가까이 있기도 했지만 정작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꽃을 가까이 두고, 가꾸고, 자세히 보고, 사랑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날마다 꽃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며 오랜 친구로 같이 살기를 바랍니다. 여기 시골의 뜨락에서 듣는 음악에 꽃의 기억이 새겨지길 기대합니다.

태그:#정원생활, #정원, #꽃밭, #시골살이, #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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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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