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세대 웹툰작가 강풀의 웹툰은 2006년 <아파트>를 시작으로 <바보>,<순정만화>,<그대를 사랑합니다>,<이웃사람>,<26년> 등 영화로 제작됐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강풀 원작 영화는 흥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고전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2011년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시작으로 세 편 연속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그런 '오명'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올해는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20부작 드라마 <무빙>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강풀 원작의 힘'을 또 한 번 증명했다. 지난 2015년에 연재됐던 동명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무빙>은 원작자인 강풀작가가 직접 각본을 쓰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강풀작가는 2019년으로 예정됐던 '강풀액션만화' 세 번째 시즌 <히든>의 연재까지 미루면서 <무빙>의 각본 집필에 전념했고 그 결과 <무빙>의 멋진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사실 원작과 각본은 별개의 영역으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작자가 직접 각본에 참여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원작자가 작품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땐 강풀작가처럼 각본에 직접 참여하는 사례도 있다. 자신의 작품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자신이 직접 써야 한다는 작가의 고집 때문에 작가 사후에야 영화가 완성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히치하이커>)가 대표적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국내에서 예술영화관 한 곳에서만 단관개봉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국내에서 예술영화관 한 곳에서만 단관개봉했다. ⓒ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호빗> 3부작 주인공 이어 MCU 합류

화가인 아버지와 배우를 꿈꾸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틴 프리먼은 학창 시절 극단에서 활동하며 배우의 꿈을 키워왔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왕립 센트럴 스피치 드라마 스쿨을 졸업한 프리먼은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우활동을 시작했다. 영화와 드라마, 연극을 오가며 커리어를 이어가던 프리먼의 이름과 얼굴을 처음으로 알린 영화는 2003년에 개봉한 <러브 액츄얼리>였다.

2005년에는 50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된 <히치하이커>에서 주인공 아서 텐트를 연기했지만 역시 국내에서는 단 2만 관객에 머물렀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프리먼은 한국에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벤지 역으로 유명한 사이먼 페그의 절친으로 그가 주연을 맡았던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뜨거운 녀석들>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2010년에는 BBC 드라마 <셜록>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존 왓슨을 연기하면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인지도가 상승했다. 그리고 프리먼은 2012년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피터 잭슨 감독의 <호빗> 3부작에 캐스팅됐다.

프리먼이 골목쟁이네 빌보 역을 맡은 <호빗> 트릴로지는 세 편 합쳐 세계적으로 29억3800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프리먼은 <호빗> 3부작을 끝낸 2016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류해 에버렛 로스를 연기했다. 

프리먼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네 시즌에 걸쳐 방송된 가족 드라마 <브리더스>에서 주연은 물론 각본과 제작에도 참여하며 다양한 재능을 뽐냈다. 작년에 개봉했던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 와칸다를 지지하는 미국 요원을 연기했던 프리먼은 올해도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전>에 출연하며 MCU세계관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레전드 소설 원작도 넘지 못한 흥행의 벽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제작비 5000만 달러로 저예산 영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제작비 5000만 달러로 저예산 영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영화 <히치하이커>는 '은하계 초공간 이동용 우회로' 건설을 위해 지구 철거가 결정되고 철거 직전의 지구에서 주인공 아서 덴트(마틴 프리먼 분)가 외계인 친구 포드(모스 데프 분)의 도움으로 우주선에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시작된다. <히치하이커>에서는 영화 시작 14분 만에 지구가 매우 하찮은 이유 때문에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고 지구를 만든 존재가 생쥐 두 마리라는 등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전혀 다른 황당한 설정들이 쏟아진다.

영화 <히치하이커>는 지난 2001년 세상을 떠난 고 더글러스 애덤스 작가가 1979년부터 1992년까지 5부작으로 발매한 SF 코믹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중 1부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애덤스 작가는 안내서에 관련된 모든 미디어믹스의 각본을 모두 자신이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라디오와 드라마, 소설, 연극, 코믹스, 심지어 게임의 각본까지 혼자 써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영화 버전 역시 다른 작가들이 설정이나 분위기를 바꾸면 자신의 작품이 변질될 수 있다는 이유로 직접 각본을 쓰겠다고 고집하면서 영화화가 늦어졌는데 미처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애덤스 작가가 생전에 쓴 각본에 몇 가지 내용을 추가해 영화를 완성했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소설 전체로 보면 '프롤로그'에 가까웠고 팬들은 속편 제작 서명운동까지 벌였지만 끝내 속편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영화 <히치하이커>의 속편제작이 무산된 결정적인 원인은 역시 어중간한 흥행성적 때문이었다. 은하계를 배경으로 하는 SF 어드벤처 영화 <히치하이커>는 영국과 미국에서 공동으로 제작해 5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1억400만 달러의 성적을 기록했다. 물론 세계흥행 1억 달러를 넘겼으니 나름 의미 있는 성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속편제작을 자신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게다가 <히치하이커>는 국내로 수입되면서 일반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 취급을 받고 말았다. 마틴 프리먼을 비롯한 대부분의 출연 배우들이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았고 '북미 박스오피스 1위'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가진 영화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히치하이커>는 당시 일반 상영관이 아닌 예술영화 전용관 필름포럼(구 허리우드 극장>에서 단관 개봉했고 영화 마니아들의 꾸준한 발길에 힘입어 전국 2만 관객을 동원했다.

지구멸망에서 살아남은 2인 중 1인
 
 트릴리언 역의 주이 디샤넬은 훗날 <500일의 썸머>를 통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트릴리언 역의 주이 디샤넬은 훗날 <500일의 썸머>를 통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아서는 지구가 멸망하기 6개월 전, 가장무도회에서 매력적인 여성 트리샤를 만나 '썸'을 탔다. 그 후 아서는 지구가 폭발하고 우주선에서 은하제국의 대통령 자포브의 여자친구가 된 그녀를 다시 만나 모험을 함께 한다. 영화버전을 기준으로 아서와 함께 지구멸망 후 살아남은 유이한 지구인 트릴리언을 연기한 주이 디사넬은 <히치하이커> 이후 <예스맨>과 <500일의 썸머>에 잇따라 출연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이언맨2>에서 토니 스타크의 라이벌임을 자처하며 아이언맨보다 뛰어난 수트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저스틴 해머를 연기했던 샘 록웰은 <히치하이커>에서 은하제국의 대통령 자포드 비블브락스 역을 맡았다.  록웰은 2018년 영화 <바이스>에서 미 대통령 조지 W. 부시를 연기하기도 했는데 <히치하이커>에서 은하제국의 대통령은 거창한 직책과 달리 실질적인 권력 없이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다이 하드>의 악역 한스 그루버와 <해리 포터>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 역으로 잘 알려진 고 알란 릭맨은 <히치하이커>에서 영화의 신스틸러 로봇 마빈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마빈은 인간보다 계산능력이나 기억이 월등하게 뛰어난 로봇이지만 항상 우울하고 자괴감에 빠져 있다. 마빈은 <다이 하드>에서 온갖 악행을 일삼았던 한스의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관객들에게 더욱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은하수를여행하는히치하이커를위한안내서 가스제닝스감독 마틴프리먼 주이디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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