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로버트 패틴슨과 마크 러팔로, 스티븐 연 등이 출연하는 <미키 17>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봉준호 감독은 두 편의 천만 영화 <괴물>과 <기생충>을 비롯해 많은 흥행작을 연출한 감독이다. 하지만 이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잘 꿰뚫고 있는 봉준호 감독도 지난 2000년2월에 개봉했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서울관객 5만7000명에 그쳤을 정도로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한 적도 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는 작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비롯해 칸 영화제에서만 총 3회 수상했던 박찬욱 감독도 마찬가지. 1992년 가수 이승철이 주연을 맡았던 장편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은 공식적인 관객통계조차 잡히지 않았고 1997년에 개봉한 두 번째 영화 <3인조>도 서울관객 3만6000명으로 흥행에서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만약 박찬욱 감독이 두 번의 좌절에 영화감독의 길을 포기했다면 <공동경비구역JSA> 같은 명작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에 데뷔작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연상호 감독을 비롯해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 <웰컴 투 동막골>의 박배종 감독 등은 데뷔작부터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충무로에 입성했다. 그리고 오는 12월 '이순신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노량: 죽음의 바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한민 감독 역시 지난 2007년 장편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225만 관객을 동원하며 충무로에 순조롭게 발을 들였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이순신 3부작'을 만든 김한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이순신 3부작'을 만든 김한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 (주)엠케이픽처스

 
'공간적 효과' 극대화되는 섬 배경의 스릴러

영화의 배경으로 섬은 상당히 좋은 공간이다. 섬에서는 <인어공주> 같은 멜로부터 <마파도> 같은 코미디, 심지어 <맘마미아!> 같은 뮤지컬 영화도 잘 어울린다. 촬영장소 섭외만 잘되면 힘들게 여러 곳을 돌아다닐 필요 없이 한 곳에서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섬은 공간이 가지고 있는 폐쇄성 때문에 스릴러 장르의 영화에 굉장히 잘 어울리는데 실제로 적지 않은 스릴러 영화들이 섬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2005년에 개봉해 227만 관객을 모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대승 감독, 차승원 주연의 영화 <혈의 누>는 19세기 외딴 섬마을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데뷔 후 처음 사극에 도전했던 차승원과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부드럽고 온순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박용우의 변신이 돋보였던 영화다. <혈의 누>는 현재까지도 '사극 스릴러'의 대표적인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배우 서영희가 그야말로 역대급 고생을 했던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 외지인에게 불친절한 무도라는 섬을 배경으로 한 공포 스릴러 영화다. 남편에겐 가정폭력을 당하고 시동생에겐 성폭력을 당하던 복남은 사랑하는 딸마저 잃고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져 마을 사람들에게 피의 응징을 시작한다. 복남의 복수장면은 매우 끔찍하고 잔인하지만 이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스타덤에 오른 류준열이 출연했던 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범죄스릴러 영화다. 주인공 이혜리 기자(박효주 분)가 염전노예사건 제보를 받고 섬에 잠입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섬, 사라진 사람들>은 배우들의 열연과 후반부의 강렬한 반전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2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는 실패했다.

전국 225만 관객 동원한 미스터리 추리극
 
 박해일은 <극락도 살인사건> 이후 <최종병기 활>과 <한산:용의 출현>에서 김한민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박해일은 <극락도 살인사건> 이후 <최종병기 활>과 <한산:용의 출현>에서 김한민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 (주)엠케이픽처스

 
<극락도 살인사건>은 1986년 극락도라는 고립된 가상의 섬에서 주민 17명 전원이 흔적 없이 사라진 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추리극이다. 연출은 물론 각본도 직접 쓴 김한민 감독의 데뷔작이고 <괴물>로 천만 배우가 된 박해일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영화였다. 박해일의 실질적인 첫 단독주연작이었던 <극락도 살인사건>은 225만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 박해일은 2011년 <최종병기 활>, 작년 <한산: 용의 출현>에서도 김한민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2003년에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 영화다(두 영화 모두 박해일이 출연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은 가파른 경제성장과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 유치라는 성과도 있었지만 정권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극락도 살인사건>에서는 그 시대 폐쇄적인 섬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극락도 살인사건>은 외부와 통신 및 교통이 차단된 섬 극락도를 재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이에 제작진은 전국을 순회해 전남 신안에 위치한 가거도를 주요 촬영지로 선정했고 경남 통영의 욕지도, 경남 고성의 상족암, 부산,파주 등 5개 이상의 장소를 돌아 다니며 촬영을 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하더라도 모두 같은 장소처럼 보여야 하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의 남모를 고충이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미스터리 추리극'을 표방하고 있고 실제로 범인을 찾아가는 것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사실 비슷한 장르의 스릴러 영화 중에는 끝까지 모호한 결론으로 마무리하며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극락도 살인사건>은 에필로그에서 제우성(박해일 분)의 내레이션을 통해 사건의 원인과 결말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다소 허무하기도 하고 속이 후련하기도 한 '친절한' 결말의 영화다.

극락도의 어린이 연기한 아역 시절의 이다윗
 
 <극락도 살인사건>에 출연했던 아역배우 출신 이다윗은 내년 공개 예정인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2>에도 출연한다.

<극락도 살인사건>에 출연했던 아역배우 출신 이다윗은 내년 공개 예정인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2>에도 출연한다. ⓒ (주)엠케이픽처스

 
2002년 <공공의 적>과 <라이터를 켜라>,<가문의 영광>에 출연하며 관객들에게 친숙한 배우가 된 성지루는 <선생 김봉두>에 이어 <극락도 살인사건>에서도 학교와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해결하는 소사를 연기했다. 성지루가 연기한 춘배는 우성이 들여온 신약을 복용한 후 지적 능력이 향상되는 등 가장 눈부신 성과를 보였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화투판 살인사건을 저지르게 된다. 결국 춘배는 여러 사람을 죽인 후 본인도 바다에 빠져 사망한다.

<겨울연가>와 <올인>,<스타일>,<동네변호사 조들호>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고 현재는 예능프로그램 <신상출시 편스토랑>에 출연하고 있는 박솔미의 영화 활동은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그 중에서 극락도의 초등학교 교사 장귀남을 연기했던 <극락도 살인사건>은 박솔미의 출연작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작품이다. 극락도의 생존자 귀남은 실험일지를 경찰에 보내 만민제약 신약의 불법을 세상에 알린다.

최주봉 배우는 MBC 일요 아침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을 기억하는 중년 이상의 관객들에게 세탁소 사장 '만수아빠'로 유명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 활동을 재개한 최주봉 배우는 <극락도 살인사건>에서 오랜만에 주요 캐릭터를 연기했다. 최주봉 배우가 연기한 극락도의 이장은 극락도의 원래 주인이던 김 노인(고 김인문 배우 분)에게서 실권을 빼앗은 후 우성과 결탁해 마을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약의 임상실험을 묵인했다.

내년 3월이 되면 어느덧 만으로 서른이 되는 이다윗은 영화 <고지전>과 <더 테러 라이브>, <남한산성>, 드라마 <호텔 델루나>,<이태원 클라쓰>,<로스쿨> 등에 출연한 배우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에 출연한 <극락도 살인사건>에서는 마을에 단 두 명뿐인 어린이 중 남자아이 태기 역을 맡았다. 태기는 신약의 부작용으로 헛것을 보고 절벽에서 떨어져 실족사한 후 엄마(유혜정 분)의 환영 속에 다시 등장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극락도살인사건 김한민감독 박해일 이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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