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올린 영화는 2009년에 개봉해 29억237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리고 그 뒤를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아바타: 물의 길>,<타이타닉>,<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어벤져스:인피니티 워>가 잇고 있다. <타이타닉>을 제외하면 모두 21세기에 개봉한 영화다(<타이타닉> 역시 20세기의 끝자락인 1997년 작품이다).

물론 20세기 영화 중에도 명작들이 매우 많지만 과거엔 상영관도 많지 않았고 티켓가격도 지금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흥행성적을 집계하면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이에 할리우드에서는 '물가상승률을 적용한 박스오피스'를 수시로 발표하는데 이 경우 1939년에 개봉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전체 1위로 올라선다. 이 밖에도 <사운드 오브 뮤직>과 < E.T. >,<십계>,<닥터 지바고> 등 고전(?)영화들이 상위권에 진입한다.

홍콩에서는 2001년에 개봉한 <소림축구>가 역대 흥행 1위에 올라있고 <폴리스 스토리4>와 <홍번구>,<무간도>,<도신2>,<심사관>이 뒤를 잇고 있다. 홍콩 역시 홍콩영화의 황금기인 1990년대 작품들이 상위권을 독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홍콩달러의 환율변동을 고려하면 홍콩영화 역사상 이 영화보다 높은 순수익을 기록한 영화는 없었다. 바로 1982년부터 1989년에 걸쳐 5편까지 제작된 액션 코미디 영화 <최가박당>이다.
 
 <최가박당>은 1982년 개봉 당시 현지에서 2600만 홍콩 달러라는 높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최가박당>은 1982년 개봉 당시 현지에서 2600만 홍콩 달러라는 높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 시네마시티

 
한 시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지금은 수지와 윤아, 김세정, 정은지, 박지훈, 옹성우, 차은우 등 가수활동과 연기활동을 병행하는 스타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하지만 1980~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수활동과 배우활동을 슬기롭게 병행하는 연예인은 전영록과 김민종, 손지창, 엄정화, 임창정 등 소수에 불과했다. 사실 가수와 연기활동을 병행하는 것도 홍콩에서 먼저 활성화된 문화로 실제로 홍콩은 7~80년대부터 많은 스타들이 가수와 연기활동을 병행했다.

어느덧 70대 중반이 된 허관걸은 한국에서는 <최가박당>에 출연한 코미디배우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홍콩에서는 배우보다 가수로 훨씬 유명한 인물이다. 1990년대 장학우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전까지 '가신(歌神)'으로 불렸을 정도로 허관걸의 위상은 대단했다. 5남매 중 막내였던 허관걸은 1970년대 중반 첫째영 허관문, 셋째형 고 허관영과 함께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는데 당시 이들의 대표작이 바로 6편까지 나왔던 <미스터 부> 시리즈였다.

<미스터 부>를 통해 배우로서 괜찮은 커리어를 이어가던 허관걸은 1982년 <첨밀밀>의 암흑가 보스 표형과 <무간도> 트릴로지의 삼합회 보스 한침 역으로 유명한 배우 겸 감독 증지위가 연출한 액션 코미디 <최가박당>에 출연했다. 허관걸이 홍콩 최고의 도둑 킹콩을 연기한 <최가박당>은 개봉 당시 홍콩에서 2600만 홍콩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최가박당> 시리즈는 1989년까지 5편이 제작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허관걸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가수는 물론 배우로서도 전성기를 달렸지만 아쉽게도 홍콩영화의 진짜 전성기는 198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잘 생기고 멋진 상남자 역할을 하기엔 주윤발의 카리스마에 밀렸고 <최가박당>의 이미지를 살리자니 1990년대의 시작과 함께 주성치라는 '희극지왕'이 등장했다. 만약 <최가박당>이 1980년대 후반에 나왔다면 배우로서 허관걸의 입지는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다.

한국 영화팬들에게는 전성기가 짧았던 코미디 배우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허관걸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홍콩영화의 전설적인 시리즈에 출연했던 유명배우였다. 1992년 가족들의 권유로 연예계를 떠났던 허관걸은 2003년부터 활동을 재개했는데 영화보다는 주로 가수로서의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허관걸은 슬하에 두 아들을 뒀는데 장남 허회흔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명탐정>도 패러디한 <최가박당> 명장면
 
 양쪽 끝에서 두 주인공이 목을 졸리는 <최가박당>의 명장면은 훗날 여러 매체를 통해 패러디 및 오마주됐다.

양쪽 끝에서 두 주인공이 목을 졸리는 <최가박당>의 명장면은 훗날 여러 매체를 통해 패러디 및 오마주됐다. ⓒ 시네마시티

 
<최가박당>은 1982년부터 1989년까지 5편에 걸쳐 만들어진 홍콩의 전설적인 첩보코믹 액션영화로 < 007 >시리즈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훗날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콤비영화 <리썰웨폰>과 한국의 형사 코미디영화 <투캅스>도 참고했을 만큼 잘 만들어진 코믹액션물이다. <최가박당>은 국내에서도 1983년에 개봉해 서울에서만 11만 관객을 동원했고 1990년대까지 TV에서도 자주 방영됐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최가박당>은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은 홍콩 최고의 도둑 킹콩(허관걸 분)과 미국의 경시청 형사 알버트(맥가 분)가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협력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좌충우돌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언제나 티격태격하면서도 속으로는 서로를 위해 목숨도 바치는 우정을 나누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는 설정은 현재까지도 많은 코미디 버디 무비에서 차용하고 있다. <최가박당>은 바로 그런 '콤비영화'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킹콩과 알버트가 갱두목인 매드맥스(조지 밀러 영화 아님)에게 잡혀 목이 매달리는 장면은 <최가박당>에서 가장 웃긴 명장면으로 꼽힌다. 한 명이 목을 졸리면 나머지 한 명은 숨을 쉴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두 사람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관객들을 웃기고 이에 흥분한 매드맥스는 칼을 휘두르다 밧줄을 끊어 버린다. 이 장면은 2011년 한국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 오마주 되기도 했다.

<최가박당>은 코미디영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악당들도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이 철저히 코믹하게 나온다. <대부>를 패러디한 마피아 보스가 "이건 이탈리아 사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말하면 부하인 흰 장갑이 "전 영국인인데요"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주인공들이 큰 위기에 빠진 장면에서도 관객들이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최가박당>의 악역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코미디 영화의 악당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최가박당>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시리즈로 5편까지 제작됐는데 증지위가 1편에 이어 메가폰을 잡은 2편에서는 가수 알란 탐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서극 감독이 연출한 3편에서는 허관걸의 셋째형 허관영이 출연했고 해외로케를 통해 스케일이 부쩍 커졌다. 4편에서는 훗날 <첩혈쌍웅>으로 유명해지는 엽천문이 히로인으로 등장했고 1989년에 개봉한 5편에서는 고 장국영과 이수현까지 가세했지만 좋지 않은 평가 속에 시리즈가 막을 내렸다.

다혈질 형사 연기한 대만 대표배우
 
 하동시를 연기한 장애가(왼쪽)는 알버트와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이 싹튼다.

하동시를 연기한 장애가(왼쪽)는 알버트와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이 싹튼다. ⓒ 시네마시티

 
허관걸과 함께 <최가박당>의 또 다른 주역인 맥가는 동료배우 황백명, 석천과 함께 <최가박당>의 제작사 세네마시티를 공동으로 창업한 인물이다. <최가박당>에서는 심하게 망가지는 허관걸이 정상으로 보일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는 코믹연기를 선보이면서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안겼다. 주윤발이 주연을 맡은 <용호풍운>,<대호출격>,<감옥풍운> 등의 제작을 맡기도 한 맥가는 주성치의 조기작인 <신격대도>에도 함께 출연했다.

대만 출신의 감독 겸 배우 장애가는 1981년과 작년 두 번에 걸쳐 대만 금마장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대만을 대표하는 여성배우다. <최가박당>에서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다혈질의 경찰 하동시 역을 맡았는데 킹콩과 알버트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짓으로 그녀를 칭찬하는 것을 듣고 알버트와 사랑에 빠졌다. 1984년에 개봉한 <최가박당3>에서는 알버트와 결혼해 영화 속에서 아빠를 쏙 빼 닮은 아들을 출산하기도 했다.

<최가박당>을 제작한 시네마시티의 설립자이자 <영웅본색2>에서 딸을 잃고 미쳐 버리는 송자호(적룡 분)의 스승 용사를 연기했던 석천은 <최가박당>에서 킹콩의 파트너인 멍텅구리 조 역으로 우정 출연했다. 영화 초반 헤어진 여자친구의 오빠인 매드맥스에게 붙잡혀 크레인에서 추락해 허무하게 사망하지만 다이아몬드를 숨긴 장소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메인스토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최가박당 증지위감독 허관걸 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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