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에는 많은 슈퍼히어로들이 있지만 솔로무비로 영화팬들에게 가장 사랑 받은 히어로는 단연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다. <스파이더맨>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샘 레이미 감독의 3부작이 24억9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마블에서 직접 제작한 <스파이더맨> 3부작은 무려 39억3200만 달러를 벌어 들였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심지어 2018년과 올해 공개된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 시리즈의 인기도 대단하다.

마블의 <스파이더맨>에 대항할 만한 DC코믹스의 대표적인 인기캐릭터는 역시 '어둠의 기사' 배트맨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배트맨과 쌍벽을 이루는 '강철 사나이' 슈퍼맨 역시 DC는 물론이고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캐릭터지만 슈퍼맨은 시리즈를 거듭하고 리부트되면서 점점 그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2010년대 슈퍼맨을 상징하는 배우였던 헨리 카빌도 작년 12월 <블랙 아담>을 끝으로 슈퍼맨 역할에서 하차했다.

반면에 배트맨은 배우와 감독이 자주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고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불릴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배트맨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히어로가 되는 시작을 알린 작품은 바로 1989년 '할리우드의 괴짜'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한 <배트맨>이었다.
 
 <배트맨 1>에서 나온 고담의 어두운 분위기는 향후 제작된 <배트맨> 영화들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배트맨 1>에서 나온 고담의 어두운 분위기는 향후 제작된 <배트맨> 영화들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 워너브러더스 픽쳐스

 
배트맨 영화에 등장한 매력적인 빌런들

과거 히어로 영화에서 빌런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보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히어로 영화에서 빌런의 역할과 비중은 주인공 못지 않게 커졌다. 빌런의 사연과 캐릭터가 관객들을 잘 이해시킬수록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가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특히 <배트맨> 시리즈는 히어로 영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빌런들이 많이 출연했던 시리즈로 관객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배트맨 리턴즈>의 메인빌런이었던 펭귄은 대니 드비토의 신들린 연기와 만나 역대 <배트맨> 최고의 악역연기를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된다. 부모에게 버림 받아 하수구에서 길러진 펭귄은 '깔끔한 부르주아' 부르스 웨인과는 정반대에 있는 인물로 <다크나이트> 3부작과 DC 확장 유니버스에서는 언급만 될 뿐 직접 출연하진 않았다. 하지만 작년에 개봉한 <더 배트맨>에서 콜린 패럴이 펭귄을 연기하면서 오랜만에 영화에 다시 등장했다.

역시 <배트맨 리턴즈>에서 처음 등장한 캣 우먼은 칼날손톱이 달린 장갑과 채찍을 사용하는 도둑으로 히로인과 빌런 사이를 오가는 인물이다. 명배우 미쉘 파이퍼가 연기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캣우먼은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앤 해서웨이가 연기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이어갔다. 캣우먼은 2004년 할 베리 주연의 솔로무비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할 베리의 <캣우먼>은 엄청난 혹평 속에 '2004년 최악의 영화'로 평가 받기도 했다.

고담시의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한 정의로운 검사에서 안면 반쪽이 크게 손상되는 부상을 당한 후 투페이스로 흑화하는 하비 덴트 역시 <배트맨>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빌런이다. <배트맨1>에서는 빌리 디 윌리엄스라는 흑인배우가 하비 덴트 역을 맡았지만 <배트맨 포에버>에서 메인빌런이 되면서 토미 리 존스로 교체됐다. <다크 나이트>에서는 에런 엑하트가 하비 덴트 및 투페이스 역을 맡아 배트맨과 대립했다.

이처럼 여러 매력적인 빌런들이 있지만 <배트맨> 시리즈 최고의 빌런은 단연 조커다. <배트맨 1>에선 대배우 잭 니콜슨, <다크 나이트>에선 비운의 천재배우 고 히스 레저가 연기했던 조커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자레드 레토, 솔로무비 <조커>에서 호아킨 피닉스, <더 배트맨>에서 배리 키오건이 연기했다. 조커를 연기한 5명의 배우 중 아카데미 수상자가 4명이나 포함돼 있을 정도로 조커는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들만 맡을 수 있는 캐릭터다.

히스 레저와는 다른 잭 니콜슨의 조커
 
 잭 니콜슨은 지금까지 어떤 범죄영화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사이코패스 빌런 조커를 연기해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잭 니콜슨은 지금까지 어떤 범죄영화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사이코패스 빌런 조커를 연기해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 워너브러더스 픽쳐스

 
DC의 인기캐릭터인 배트맨은 이미 1943년과 1949년, 그리고 1966년에도 실사화가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팬들은 <배트맨> 실사영화의 시작을 1989년에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으로 인지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48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배트맨>은 북미에서만 2억5100만 달러, 세계적으로는 4억1100만 달러의 폭발적인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팀 버튼 감독을 일약 흥행감독으로 만들었다.

<배트맨>은 슈퍼히어로 영화로서의 재미도 충분하지만 어두운 고담시를 배경으로 우울한 히어로 배트맨의 특징을 제대로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팀 버튼 감독이 구축한 고담시와 배트맨의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는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3부작과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 등 21세기에 만들어진 <배트맨> 영화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배트맨>은 199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팀 버튼 감독은 조커 역에 할리우드 스타였던 잭 니콜슨을 캐스팅하고 싶어 했고 제작사에서는 '3주촬영'을 조건으로 간신히 니콜슨을 캐스팅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촬영은 5주를 넘겼고 니콜슨은 이에 대해 많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대배우답게 엄청난 열연을 선보이며 슈퍼히어로 영화 빌런 연기의 새 역사를 썼다. 잭 니콜슨의 조커 이후 히어로 영화에서 연기파 배우를 빌런으로 캐스팅하는 트렌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08년 '히어로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다크 나이트>가 개봉하면서 관객들은 <다크 나이트>와 <배트맨 1>, 그리고 두 명의 조커를 비교하는 흥미로운 논쟁을 시작했다. 물론 <다크 나이트> 개봉 초기만 해도 히스 레저의 연기가 잭 니콜슨을 능가했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엄연히 둘은 캐릭터가 달랐다. 히스 레저의 조커가 '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였다면 <배트맨 1>의 조커는 '사이코패스 살인 예술가'에 가깝다.

<배트맨>은 1992년 대니 드비토와 미쉘 파이퍼가 가세한 <배트맨 리턴즈>까지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웰메이드 히어로 영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95년 <배트맨 포에버>부터 감독이 조엘 슈마허로 교체됐고 1997년에 개봉한 <배트맨과 로빈>이 엄청난 혹평 속에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 동안 <배트맨> 시리즈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배트맨과 로빈>을 연출한 슈마허 감독마저 DVD 부가영상에서 관객들에게 공개사과를 했을 정도다.

겁 많지만 열정 가득한 고담시의 기자
 
 <배트맨 1>의 히로인이었던 비키 베일은 이후 그 어떤 <배트맨> 실사영화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배트맨 1>의 히로인이었던 비키 베일은 이후 그 어떤 <배트맨> 실사영화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 워너브러더스 픽쳐스

 
마이클 키튼은 <배트맨>에 출연하기 전까지 코미디 배우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전작 <비틀쥬스>에서 키튼과 호흡을 맞췄던 팀 버튼 감독은 제작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키튼의 캐스팅을 강행했고 키튼의 배트맨은 현재 관객들이 알고 있는 '실사 배트맨'의 원형이 됐다. <배트맨 리턴즈>를 끝으로 배트맨에서 하차한 키튼은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지난 2014년 <버드맨>을 통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고담시의 기자 비키 베일은 당초 <슈퍼맨>의 로렌스 레인처럼 <배트맨> 시리즈의 히로인으로 내정된 캐릭터였다. 하지만 어둠에서 활약하는 배트맨의 이미지와 고정(?) 히로인은 어울리지 않다는 판단에 세계관 안에만 존재하는 인물로 남았다. <배트맨 1>에서는 섹시스타 킴 베이싱어가 비키 베일을 연기했는데 조커의 돌발행동에 잔뜩 겁을 먹으면서도 결정적인 현장을 촬영하려는 기자로서의 취재열정이 상당히 높은 캐릭터로 나왔다.

부르스 웨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이고 때로는 주인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집사 알프레드는 노년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빠른 일 처리를 자랑한다. 한 가지 재미 있는 사실은 <배트맨 포에버>부터 감독과 제작진, 배우들이 대거 교체됐음에도 알프레도 역의 마이클 고프는 <배트맨1>부터 <배트맨과 로빈>까지 모두 출연했다는 점이다. <배트맨> 모던 에이지 시리즈의 산증인이었던 고프는 지난 2011년 향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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