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이라하 작가의 동명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아래 <정신병동>)가 공개됐다. 배우 박보영의 첫 OTT드라마 <정신병동>은 영화 <역린>과 <완벽한 타인>,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와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을 연출했던 이재규 감독의 신작이다. 하지만 <정신병동>은 지난해에 공개됐던 이재규 감독의 전작 <지금 우리 학교는>과 비교하면 소재는 물론 내용도, 전개방식도 전혀 다르다. 

<정신병동>은 대학병원 내과에서 근무하다가 정신건강 의학과로 자리를 옮긴 간호사 정다은(박보영 분)이 병동 안에서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면서 겪는 다채로운 에피소드와 그를 통한 성장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정통 의학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긴장감과 <슬기로운 의사생활>같은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코믹요소를 줄인 대신 정신병동 간호사와 의사, 환자들이 병원 안팎에서 겪는 이야기들에 집중하면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사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신질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신의학과는 과거처럼 사람들에게 마냥 낯설게 느껴지진 않는다. 하지만 정신병동은 사람의 신체나 장기가 아닌 정신을 다룬다는 특수성 때문에 영화에서도 종종 소재로 쓰이곤 한다. 안젤리나 졸리에게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을 안겼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처음 만나는 자유>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처음 만나는 자유>는 세계흥행 4800만 달러로 기대했던 만큼의 높은 흥행성적을 올리진 못했다.

<처음 만나는 자유>는 세계흥행 4800만 달러로 기대했던 만큼의 높은 흥행성적을 올리진 못했다.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절도사건으로 몰락했다가 부활한 배우

엠마 스톤이나 스칼렛 요한슨 같은 배우들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꾸준한 성장으로 성인이 된 후에도 스타배우로 군림하고 있다. 드류 베리모어처럼 아역 시절에 스타덤에 올랐다가 청소년 때의 방황기를 거쳐 다시금 아역시절의 인기를 회복한 배우도 있다. 위노나 라이더 역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했던 돌발행동으로 커리어 전체가 무너질 뻔했지만 꾸준한 활동으로 재기에 성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1986년에 데뷔한 라이더는 1988년 팀 버튼 감독의 <비틀쥬스>에서 우울증 걸린 소녀 리디아 역을 맡아 일약 할리우드의 '국민 여동생'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라이더는 1990년 <비틀쥬스>로 인연을 맺었던 팀 버튼 감독의 신작 <가위손>에 출연하며 스타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라이더는 <대부3>를 고사하고 출연한 가족 코미디 <귀여운 바람둥이>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연기력도 함께 인정 받았다.

1990년대 초·중반은 위노나 라이더의 본격적인 전성기였다. 1992년 <대부>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만든 <드라큘라>, 1993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 <순수의 시대>에 출연한 라이더는 1994년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은 아씨들>을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1999년에는 주연은 물론 제작에도 참여한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안젤리나 졸리와 연기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라이더는 2001년 디자이너 샵에서 고가의 의류와 액세서리 등을 훔치다가 경비원들에게 붙잡혔다. 당시 라이더는 특별히 전성기가 지나 생활고에 시달리던 무명배우가 아니었기에 대중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 사건으로 라이더는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 480시간을 선고 받았고 긴 공백을 가지면서 빠르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물의를 일으킨 배우를 캐스팅하는 제작사가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중들에게 잊히는 듯했던 라이더는 2010년 <블랙스완>에서 자신의 처지와 닮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관객들의 연민을 얻었고 2012년에는 팀 버튼 감독의 <프랑켄위니>에 성우로 참여했다. 그리고 라이더는 2016년 넷플릭스의 SF공포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서 열연을 펼치며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라이더는 2020년에도 드라마 <더 플롯 어겐스트 아메리카>에 출연하며 순조로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신병원에 들어가 어른으로 성장한 수잔나
 
 <처음 만나는 자유>는 위노나 라이더가 절도사건으로 몰락하기 2년 전에 출연했던 작품이다.

<처음 만나는 자유>는 위노나 라이더가 절도사건으로 몰락하기 2년 전에 출연했던 작품이다.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작가를 꿈꾸는 17세 소녀 수잔나(위노나 라이더 분)는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해 응급실에 실려간 후 자살미수 판정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가뜩이나 내향적인 성격의 수잔나에게 병동에서 만난 개성 있는(?) 친구들은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고 수잔나는 좀처럼 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탈출과 재입원을 반복하는 리사(안젤리나 졸리 분)라는 독특한 친구가 병동으로 돌아왔다.

병동 안의 '인싸 겸 일진'인 리사는 순식간에 병동을 휘어 잡았고 신입(?)인 수잔나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수잔나 역시 자신에게 다가오는 리사와 친분을 쌓으며 자연스럽게 나머지 병동 친구들과도 친해졌고 그토록 괴로웠던 정신병원에서의 삶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수잔나는 입대를 앞둔 남사친 토비(자레드 레토 분)가 찾아와 "함께 캐나다로 도망치자"는 제안을 거절할 정도로 정신병원 생활에 완전히 녹아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자유를 꿈꾸던 리사는 수잔나에게 탈출을 제안했고 수잔나와 리사는 탈출 후 퇴원한 데이지(브리트니 머피 분)를 찾아갔다. 하지만 리사와 싸운 데이지는 다음날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홀로 떠난 리사 없이 병원으로 돌아온 수잔나는 모범적인 생활로 퇴원해도 좋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수잔나는 다시 잡혀 온 리사를 비롯한 병동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후 정신병동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는 '경계성 장애(정신병과 우울증의 중간단계)'를 겪는 소녀가 정신병동에서 비슷한 증상의 친구들을 만나 어른으로 성장하는 내용의 영화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자유>에는 관객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면이나 극단적인 스토리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위노나 라이더와 안젤리나 졸리를 비롯한 배우들의 좋은 연기와 각본에도 참여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어우러지면서 127분을 풍성하게 채웠다.

위노나 라이더는 취미로 포크기타를 배운 적이 있는데 덕분에 <처음 만나는 자유>의 명장면이 탄생했다. 수잔나가 얼굴의 흉터로 우울함에 빠진 폴리(엘리자베스 모스 분)를 위로하기 위해 새벽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었다. 수잔나의 감미로운 연주와 노래는 곧 병동 전체로 퍼졌고 이를 말리러 온 야간 경비원까지 잠들게 했다. 수잔나의 기타연주와 노래는 삭막한 정신병원도 얼마든지 따뜻하고 포근한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아카데미 조연상 수상 배우 3명 출연
 
 리사 역의 안젤리나 졸리는 <처음 만나는 자유>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리사 역의 안젤리나 졸리는 <처음 만나는 자유>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지금이야 둘째가라면 서러운 할리우드 최고의 여성배우지만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안젤리나 졸리는 흥행파워보다는 뛰어난 연기력이 돋보이던 배우였다. 졸리는 제작자인 위노나 라이더의 설득으로 출연한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탈출을 일삼는 병원의 문제아 리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졸리는 <처음 만나는 자유>를 통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4개 영화제의 여우조연상을 휩쓸며 스타배우로 급부상했다.

<처음 만나는 자유>에는 안젤리나 졸리 외에도 아카데미 트로피를 가진 배우가 둘이나 더 출연했다. 먼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2014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자레드 레토다. <레퀴엠>에서 마약중독자,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조커, <블레이드러너 2049>에서 시각장애인을 연기했던 레토는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수잔나와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보낸 후 병원으로 찾아와 함께 캐나다로 도망가자고 설득하는 남사친 토비 역을 맡았다.

1990년 <사랑과 영혼>에서 샘(고 패트릭 스웨이지 분)이 빙의하는 점성술사 오다 메이를 연기하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우피 골드버그는 1992년 <시스터 액트>에서 수녀로 위장한 밤무대 가수 역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피 골드버그는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수잔나와 리사가 있는 정신병동의 간호사 발레리를 연기했는데 수잔나를 비롯한 환자들을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대하면서 환자들에게 높은 신뢰를 얻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처음만나는자유 제임스맨골드감독 위노나라이더 안젤리나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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