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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30년 넘게 탈핵운동... 함께 싸워줄 이가 필요합니다

원전마을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 경제-사회-심리적 의존과 종속의 구조
 
핵발전소에 의존, 종속되는 과정과 구조
▲ 핵발전소에 의존, 종속되는 과정과 구조 핵발전소에 의존, 종속되는 과정과 구조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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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편익을 거래, 교환"한다. 핵발전소 최인접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원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유치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해 연구자들이 설명하는 방식이다. 주민들은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포기할 수 없기에 결국 원전의 위험과 편익을 맞바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규봉은 '거래와 교환'이라는 경제(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일부만 옳은 설명일 뿐 복합적이고 누적된 이곳에서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규봉은 지난 30년간 탈핵운동을 하면서 지역과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었고, 바뀔 수밖에 없었는지를 경제-사회-심리 그리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핵발전소는 오히려 지역 농업과 어업, 관광업을 망치는 길이에요, 그것을 부정할 순 없죠. 그런데 원전에서 지난 40년 간 지역에 푼 돈이 많아요. 일반지원금, 특별지원금 등... 이런 돈 때문에 읍면별로 한수원에 줄 서고, 사회단체는 크고 작은 행사 있을 때마다 돈을 받으려고 손 내밀고. 울진사람들 누구나 원전이 위험하고 안 좋다는 것을 알지만,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돈과 영향력이 지난 40년 동안 울진을 야금야금 지배해 왔어요."

나아가 그는 경제적인 종속이 사회, 심리적인 종속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원전에서 나오는 돈이 지역경제를 지배하다 보니, 사회관계도 지배당한 거예요. 원전이 위험하고 안 좋고 혐오시설인 걸 알면서도, 이 좁은 울진군에서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이 원전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아니면 내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지요. 결국에는 심리적으로도 '나 하나가 반대한다고 해서, 뭐가 되겠나',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지금까지 8개 들어왔는데, 2개 더 들어온다고 특별히 달라질 게 있겠나'라며, 자포자기하게 되는 거죠. 

여기서 먹고살려면 크게 농업이나 어업, 장사, 한수원이나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거 아니면 공무원 딱 네 가지가 있어요. 구조적으로 반핵운동 자체가 열악하고 어려운 지역이에요.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성명서도 냈는데, 지금은 '그것도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원전을 비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부산이나 경주, 영광도 탈핵운동 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지역에 환경단체가 있고 대학도 있어서 연대하고 협력할 네트워크가 충분히 있죠. 아니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교통편도 괜찮으니, 결합하기도 쉽고. 여기는 소수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정도인데... 그것도 전업활동가가 있는 게 아니니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30년을 해온 제 입장에서는 좀 지쳐있는 거죠."


지역에서 탈핵운동 한다는 건... 인간관계 포기하겠다는 것 

이규봉은 "경제적인 종속과 의존은 지역의 촘촘한 네트워크, 인간-사회관계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40년을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온 울진에서 탈핵운동을 하는 것은 왕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저쪽이 워낙 거대해지고 비대해져서 작은 돌멩이 하나로는 막을 방법이 없는 거예요. 포기는 아닌데, 막막하거나 방법이 잘 안 보이는 거죠. 핵발전을 추진하려는 중앙정부와도 싸워야 하지만, 한목소리를 내는 지방정치와 또 싸워야 하죠. 이것만이 아니에요. 원전에서 돈(지원금 등)을 받는 단체나 조직과도 싸워야 하고, 원전에 혜택을 보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과 그 가족들, 원자력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싸워야 하니... 울진에서 탈핵운동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인간관계나 사회관계를 그냥 다 '끊고 포기해야 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이규봉은 경제적-사회적-심리적으로 의존 및 종속되어 가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시민·환경단체의 부재와 함께 하나의 문제를 더 지적했다. 그것은 바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연결되어 수직적으로 종속된 정치이다.

"울진은 지역적으로 국민의힘이 상당수를 차지해요, 선거 결과도 그렇고요. 특히 현재 '원전 최강국'을 목표로 하는 대통령에서 시작해 도지사-국회의원-군수-도의원-군의원 등 대부분의 정치인이 다 국힘 쪽이라. 대통령이 9호기와 10호기의 건설을 강하게 밀어붙이니까, 지역 모든 정치인들이 '조기 착공'을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내는 거죠. 이건 또 공천 문제와도 엮여있어요. 여기서 당선되어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국민의힘에서 공천을 받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선거에 나가고 정치하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탈원전을 강하게 비판하는 거라고 봅니다."

이규봉은 한수원에 경제-사회-심리적으로 종속된 이곳에서는 탈핵운동을 하는 본인도 힘들지만, 이곳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 울진 군민들도 힘들 거라고 말했다.

"사실 반핵운동하는 저희도 힘들지만, 울진 군민들도 힘든 거죠. 그런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데 누가 쉽게 반대하고 쓴소리를 하겠어요. 구조적으로 경제에서부터 의존하고, 사회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서 저항을 점차 못하게 되고, 그러면서 심리적으로는 무관심 혹은 자포자기에 이어 원전을 찬성하는 쪽으로 가게 되는 거고. 정치인들은 그걸 활용해서 당선되고, 재선되고, 공천도 받고. 이렇게 가는 거예요.

초기에는 반핵운동에서 대중을 흡수할 가능성이라도 있는데, 지금은 정치-사회-경제-심리적으로 완전히 의존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걸 깨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지역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겠지', '지역이 먼저 움직여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가깝죠."


'핵발전소 말고 대안은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 고민 

싸우고 반대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이지만, 이규봉에게 한 가지 더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핵발전소 없는 삶을, 핵발전소가 아닌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것마저 불가능해 보이는 지역주민들에게 어떻게 탈핵을 설득할 수 있을까?
 
"여기는 일자리가 정말 없어요. 그래서 원전에 대한 의존은 계속해서 심해지고, 정치인들은 대표적인 공약으로 원전 추가 유치를 내거는 거죠. 제가 고민했던 대안은 '원전 의존 경제'가 아니라 '생태자원을 활용한 관광'으로 자립경제를 이루는 거예요. 직전 군수도 '원전 대안 경제'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요.

여기 울진은 바다, 산, 숲까지 다 있어요. 순천도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순천만 공원 이후로 관광객이 많이 가잖아요. 여수, 남해로 관광객이 가는 것처럼. 사실 전국에 220여 개의 시군구가 있는데 원전이 없는 대다수 지역은 지역의 발전을 위해 투자도 하면서 자립경제를 만들어가잖아요. 근데 여기는 오랫동안 원전에 기대고, '원전 의존 경제'가 심해진 게 너무 큰 문제죠."


이규봉은 핵발전에서 탈피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까지 고민했지만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울진에도 민간환경감시기구가 있어요. 우리가 싸워서 원전을 감시하기 위해 얻어낸 거죠. 예전에 내가 2년간 활동했어요. 다른 곳도 온배수 문제나 농수산물 피폭 문제가 좀 있을 텐데, 여기도 그래요. 핵발전소 1기당 8도나 데워진 물이 초당 60톤이 나오니, 죽변 앞바다도 1도가 높게 나왔어요. 게다가 일부 해조류에서는 인공방사능이 조금 검출되고 있었고요. 물론, 한수원에서는 미량이고 허용 범위 안이라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지역의 생태관광을 추진해야 하는데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가 힘들어요. 원전을 가동하면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방사능 문제가 생겨요. 이걸 대대적으로 말하면, 울진 지역 농수산물도 그렇고 생태관광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니까요. 농수산물이나 지역 피폭 문제가 탈핵운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이자 카드인데, 반대로 이걸 공개하는 순간 지역경제나 제가 생각하는 대안인 생태, 관광에도 또 타격이 될 수도 있는 주홍글씨 같은 거예요. 참 어려워요."
 

안과 밖, 모두에서 함께 탈핵을 외쳐야 하는 이유
 
울진에서 30년간 탈핵운동을 해온 이규봉 핵안사 대표
▲ 울진에서 30년간 탈핵운동을 해온 이규봉 핵안사 대표 울진에서 30년간 탈핵운동을 해온 이규봉 핵안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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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봉은 "핵발전소는 전 국민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울진에는 환경단체나 시민사회단체가 없기 때문에, 안에서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외부에서의 연대와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사실 큰 규모의 환경단체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전국적으로 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또 거기선 '지역이 움직여야 뭘 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근데 원전은 지역만의 문제도 아니잖아요. 울진은 안에서 움직일 역량도 거의 없기도 하고."

이규봉은 전국의 시민사회단체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만 일회성으로 방문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과 결합해 함께 핵발전소 문제를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알을 깨고 나올 때, 안에서 부리로 세게 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그 단단한 알에 조그마한 균열이라도 함께 내는 것인 것처럼.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쓰는 전기가 원전에서 만들어지는데, 그 문제를 지역에만 전가하고 영원히 관리해야 할 핵폐기물까지 지역에서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지역주민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대한민국 수도권에서 전기를 쓰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욕망의 시대의 끝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한 지역을 희생시키는 정책을 확장하는 정부에 대해 '아니오'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죠.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굉장히 답답해요.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활동하는 '핵안사'조차 최근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고 해서 해체할 수도 없어요. 명맥이라도 유지해야, 언젠가는 외부에서 함께 싸워줄 사람들이 나타날 때, 안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나를 잃지 않고 존재 자체를 지키기 위한 또 다른 운동

끝으로 이규봉은 지난 30년 동안 해 온 탈핵운동이 지지부진하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특히, 9, 10호기는 꼭 막고 싶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5년 전부터 시작한 농사일과 함께 이규봉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를 잃지 않고 존재 자체를 지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내 고향에서 이익을 얻으려고 그동안의 활동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하고 한결같이 변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나의 삶, 나의 존재 자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운동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도 알아요, 그들 눈에는 제가 눈엣가시이자 독종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 사람은 운동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인정해주는 거지.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활동이 돈을 벌려고 한 게 아니니까. 사무장이나 대표를 맡은 것이나, 다양한 시민·사회·반핵운동을 해온 것들 모두가.

그래서 이제는 시민(사회·반핵)운동가답게 마무리도 잘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물론 지금은 원전에 대한 확대가 강력한 상황이다 보니 이 힘든 순간에 자신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나를 잃지 않고, 또 쉽게 포기도 하지 않는 또 다른 운동을 하는 셈이에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탈핵 잇_다'(https://brunch.co.kr/@wcvictory/6)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울진핵발전소, #한울원전, #이규봉, #핵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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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수료생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련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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