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2편과 3편이 연속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부산행>과 <신과 함께-인과 연>을 포함해 천만 영화 네 편(주연 기준)을 보유하게 된 마동석은 지난 2021년에 개봉했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신작 <이터널스>에 출연했다. 마동석이 연기한 길가메시는 <이터널스>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 중에서도 가장 완력이 강한 이터널로 그동안 여러 한국영화에서 보여줬던 마동석의 강력한 이미지를 그대로 살린 캐릭터였다. 

오는 11월 개봉 예정인 <캡틴마블>의 속편은 <캡틴마블2>가 아닌 캡틴 마블(브리 라슨 분)이 미즈 마블(이만 벨라니 분), 발키리(테사 톰슨 분) 등 다른 마블 히어로들과 팀을 이뤄 <더 마블스>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 <더 마블스>에서는 한국배우 박서준이 알라드나의 왕자 얀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마동석과 박서준 이전에도 <지.아이.조> 시리즈의 이병헌이나 <루시>의 최민식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 한국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더 이상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마냥 호의적이진 않았고 이 때문에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영화도 있었다.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 때문에 국내 개봉이 무려 4년이나 늦어졌던 영화 <폴링 다운>이 대표적이다.
 
 <폴링 다운>은 한국인을 나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개봉이 4년이나 미뤄졌다.

<폴링 다운>은 한국인을 나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개봉이 4년이나 미뤄졌다. ⓒ 한국영상투자개발(주)

 
한국인-한국 제품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들

이미 김지운 감독과 박찬욱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라스트 스탠드>와 <스토커>를 연출했고 현재는 봉준호 감독이 로버트 패틴슨과 마크 러팔로 같은 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해 신작 <미키 17>을 만들고 있다. 그만큼 할리우드에서 한국과 한국 영화인들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과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계) 배우가 출연하거나 한국과 관련된 소품이 등장하면 국내에서 크게 화제가 되곤 했다.

2001년 MBC 연기대상 대상에 빛나는 차인표는 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차인표는 한국을 부정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출연제의를 거절했고 차인표가 거절한 역할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 윌 윤 리에게 돌아갔다. 그 영화는 바로 세계적으로 4억31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 007 어나더데이 >였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지난 2005년에 개봉했던 빈 디젤 주연의 코미디 영화 <패시파이어>에서는 빈 디젤의 이웃주민으로 한국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애초에 한국관객들에 대한 배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패시파이어>에서는 한국인들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한 한국어 발음이 등장한다. 이 때문일까. 세계적으로 1억98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한 <패시파이어>는 한국에서는 전국 6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 참패했다.

이처럼 한국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도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한국과 관련된 소품이나 아이템을 발견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요소다. 2002년에 개봉했던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1편에서는 빌런 그린 고블린(윌렘 대포 분)이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한국 대기업의 로고가 크게 등장한다. 이는 실제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 광고판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으로, 그 기업은 <스파이더맨>을 통해 적지 않은 간접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마블 히어로 올스타전의 시작을 알렸던 <어벤져스> 1편에도 한국 제품이 등장한다.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가 영화 초반 의자에 묶인 채로 화려하게 적들을 제압한 후 콜슨 요원(클라크 그레그 분)과 통화할 때 사용한 휴대전화가 바로 국내 제품이었다.

국내 관객들에게 괜한 미움 받았던 영화
 
 <폴링 다운>은 마이클 더글라스가 <원초적 본능> 다음으로 선택한 영화였다.

<폴링 다운>은 마이클 더글라스가 <원초적 본능> 다음으로 선택한 영화였다. ⓒ 한국영상투자개발(주)

 
지난 2020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조엘 슈마허 감독은 생전 <유혹의 선>, <의뢰인>, <타임 투 킬>, <폰부스> 같은 영화들을 만들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1997년 <배트맨과 로빈>이라는 졸작을 만들며 '배트맨을 망친 감독'이라는 비판도 함께 따라 다녔다. 슈마허 감독이 1993년에 선보인 <폴링 다운>은 그가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에 연출했던 작품으로 북미에서만 4000만 달러가 넘는 괜찮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폴링 다운>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달랐다. 초반 주인공 D-FENS(마이클 더글라스 분)의 분노가 폭발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이 바로 불친절한 한국인 슈퍼마켓 사장 '미스터 리'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폴링 다운>은 재미교포들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어줬다는 이유로 국내 개봉이 미뤄졌고 4년이 지난 1997년에 뒤늦게 개봉했지만 서울관객 2만3000명으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폴링 다운>은 미국에서 정착해 살아가는 한인들을 비판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다원화되고 복잡해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미국 소시민의 방황과 분노를 표현한 작품이다. 한국인 슈퍼마켓 사장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나온다고 해서 <폴링 다운>을 '혐아시안 영화'라고 매도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실제 한국인 슈퍼마켓 사장을 연기한 배우도 한국계가 아닌 중국계 배우 마이클 풀 챈이었다.

D-FENS를 연기한 마이클 더글라스는 현재는 70대 후반의 노장 배우가 됐지만 <폴링 다운>이 개봉했던 1993년엔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던 40대 중반이었다. 온갖 공사로 인한 교통체증으로 화가 쌓인 D-FENS는 불친절한 한국인 사장을 통해 분노가 폭발하고 우연찮은 기회에 총기가 가득 담긴 가방을 얻으면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폭력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결국 그에게 돌아온 것은 허무한 '추락'뿐이었다.

<폴링 다운>에서는 D-FENS가 점심시간에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아침메뉴를 만들어 달라며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지난 1984년 샌디에이고의 햄버거 가게에서 있던 총기난사사건이었는데 당시 사망자 22명과 부상자 19명이라는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바 있다. 당시 범인도 영화 속 D-FENS처럼 실직 당한 백인남성이었는데 <폴링 다운>에서는 실제사건과 달리 햄버거 가게에서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은퇴 앞둔 형사 연기한 로버트 듀발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으로 유명한 로버트 듀발은 <폴링 다운>에서 은퇴를 앞둔 형사를 연기했다.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으로 유명한 로버트 듀발은 <폴링 다운>에서 은퇴를 앞둔 형사를 연기했다. ⓒ 한국영상투자개발(주)

 
올해로 만 92세가 된 1931년생 원로 배우 로버트 듀발은 1984년 <텐더 머시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지난 2005년에는 미국 국가예술훈장을 받기도 했다. 대중들에게는<대부> 시리즈에서 콜레오네 집안의 전속 변호사이자 카운슬러 톰 헤이건, <지옥의 묵시록>에서 전쟁광 빌 킬고어를 연기했던 배우로 유명하다. 듀발은 작년에도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넷플릭스 영화 <페일 블루 아이>에 출연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듀발은 <폴링 다운>에서 은퇴를 앞둔 형사 마틴 프렌더게스트를 연기했다. 갱년기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극성스러운 아내(투즈데이 웰드 분) 때문에 현장에 나가기 보다는 내근을 주로 하는 마틴은 동료형사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진 않지만 은퇴를 앞두고 D-FENS의 행적을 쫓으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는 결투를 제안하는 D-FENS가 꺼낸 장난감 총을 진짜 총으로 오해해 그를 총을 쏴 다리 밑으로 '추락'시킨다.

듀발과 함께 <지옥의 묵시록>에 출연했던 프레드릭 포레스트가 연기한 군인용품 상점의 주인 닉은 나치를 찬양하고 유대인을 증오하는 심각한 인종주의자로 가게에 찾아온 성소수자 커플 손님을 매정하게 쫓아낸다. 뉴스를 통해 D-FENS의 소식을 접한 닉은 D-FENS에게 동지의식을 느끼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D-FENS의 '참교육'이었다. 영화 속에서 한 번도 직접 사람을 죽인 적이 없었던 D-FENS는 유일하게 닉을 직접 살해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폴링 다운 고 조엘 슈마허 감독 마이클 더글라스 로버트 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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