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라는 개념조차 없었지만 당시에도 엄연히 'PC통신'이라는 SNS가 존재했다. 비록 컴퓨터 사용에 익숙하고 엄청난 전화요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용자들이 제한되긴 했지만 그 시절 PC통신 유저들은 채팅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각종 커뮤니티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공유하며 SNS를 즐겼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PC통신은 자연스럽게 소멸의 길에 접어 들었다.

오늘날 세계 SNS를 지배하고 있는 회사는 단연 지난 2004년에 설립된 미국의 메타 플랫폼 주식회사(MPI)다. 메타는 전 세계 30억 명에 육박하는 사용자를 자랑하는 페이스북과 100조가 넘는 가치를 가진 사진 콘텐츠에 특화된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 세계 최대의 인스턴트 메신저 서비스 메신저, 유럽일대에서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는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 등을 보유한 미국의 종합 IT기업이다. 

지난 2021년 미국에서 5번째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달성한 글로벌 기업 메타도 사실은 2000년대 초반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었던 어느 하버드 대학생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8번째 장편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세계적인 IT기업 메타의 CEO이자 '세계에서 가장 젊은 억만장자'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 대학에 다니던 시절 친구,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메타의 모태가 된 '페이스북'을 개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소셜 네트워크>는 20대의 젊은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 제작비의 5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소셜 네트워크>는 20대의 젊은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 제작비의 5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워터홀컴퍼니(주)

 
코믹과 호러, 드라마 모두 가능한 젊은 배우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제시 아이젠버그는 지난 1999년 TV드라마를 통해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에는 코미디 영화 <로저 닷저>에 출연해 샌디에이고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잠재력을 인정 받았다. 2004년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에 조연으로 출연한 아이젠버그는 2009년 코미디 영화 <좀비랜드>에서 주인공 콜럼버스 역을 맡으며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젠버그는 이듬 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신작 <소셜 네트워크>에서 페이스북의 개발자 마크 저커버그역에 캐스팅됐다. 400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소셜 네트워크>는 세계적으로 2억2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아이젠버그라는 젊은 배우를 관객들에게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아이젠버그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2011년 애니메이션 <리오>에서 블루의 목소리 연기를 한 아이젠버그는 2013년 의미 있는 두 작품에 출연했다. 2013년 상반기에는 엘렌 페이지(현 엘리엇 페이지)와 페넬로페 크루즈, 로베르토 베니니 등과 함께 우디 앨런 감독의 <로마 위드 러브>에 출연했다. 그리고 여름에는 마크 러팔로, 모건 프리먼 등과 함께 마술을 소재로 한 범죄스릴러 영화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으로 국내에서 271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14년 <더블:달콤한 악몽>에서 1인 2역을 소화한 아이젠버그는 2016년 D.C. 확장 유니버스에 합류해 <슈퍼맨 vs. 배트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저스티스 리그>에서 슈퍼맨의 숙적 렉스 루터를 연기했다. 2019년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공포영화 <비바리움>의 주연과 제작을 맡은 아이젠버그는 같은 해 <좀비랜드:더불탭>을 통해 10년 만에 콜럼버스로 돌아왔다(<좀비랜드:더블탭>은 전편에 이어 연속으로 세계흥행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아이젠버그는 평소 진보적이면서도 소신이 뚜렷한 배우로 유명하다. 아이젠버그는 지난 2016년 런던에서 열린 시위현장을 지나가다 "동성애자들은 죄인이며 신이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는 연설을 한 시위자가 그에게 동의를 구하자 욕설을 하며 지나갔고 그 이야기가 뉴욕 언론에 실리기도 했다. 작년 클레어 데인즈와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에 출연한 아이젠버그는 내년 <나우 유 시 미3>를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억만장자의 이야기
 
 제시 아이젠버그는 <소셜 네트워크>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소셜 네트워크>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 워터홀컴퍼니(주)

 
<소셜 네트워크>는 벤 메즈리치가 쓴 마크 저커버그의 전기 < The Accidental Billionaires >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를 <어 퓨 굿 맨>과 <머니볼>,<스티브 잡스> 등의 각본을 썼던 작가 겸 감독 애런 소킨이 시나리오로 완성했고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천재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제시 아이젠버그와 앤드류 가필드 등 20대의 젊은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 만든 작품이 바로 영화 <소셜 네트워크>다.

실제로는 아이젠버그보다도 한 살 어린 1984년생 마크 저커버그는 <소셜 네트워크>가 개봉한 2010년을 기준으로 만 26세에 불과했다. 핀처 감독이 자신보다 22살이나 어린 20대 중반 청년의 성공신화를 영화화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핀처 감독은 저커버그의 유치한 영웅담이나 대학생의 치기를 그리는 대신 적절한 균형과 긴장감을 불어넣어 영화를 완성했다. 

실제로 <소셜 네트워크>는 지난 2021년 미국작가조합(WGA)이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각본 101편'에서 <겟 아웃>, <이터널 선샤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공교롭게도 4위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다). 그만큼 <소셜 네트워크>는 탄탄한 각본을 토대로 스릴러 장인 핀처 감독의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일부 관객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핀처 감독 커리어의 최고 명작으로 꼽기도 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2011년 1월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휩쓸며 약 한 달 후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주요부문 수상을 기대케 했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는 주요 4개 부문(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을 휩쓴 <킹스 스피치>에 밀려 각색상, 편집상, 음악상 수상에 그쳤다. 이 때문에 <소셜 네트워크>를 외면(?)한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논란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소셜 네트워크>의 북미포스터를 보면 "You Don't Get to 500Million Friends Without Making A Few Enemies"라는 카피가 있다. 직역하면 "약간의 적을 만들지 않고서는 5억 명의 친구를 얻을 수 없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포스터에는 "5억 명의 온라인 친구. 전세계 최연소 억만장자. 하버드 천재가 창조한 소셜 네트워크 혁명"으로 변형됐고 '젊은 천재의 성공스토리'처럼 의미가 변하면서 핀처 감독의 연출의도가 다소 퇴색됐다.

5년 후 '칸의 여왕' 되는 마크의 전 여자친구
 
 <소셜 네트워크>에서 에리카를 연기했던 루니 마라는 2015년 <캐롤>로 '칸의 여왕'에 등극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에리카를 연기했던 루니 마라는 2015년 <캐롤>로 '칸의 여왕'에 등극했다. ⓒ 워터홀컴퍼니(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틱,틱... 붐!>,<헥소 고지> 등으로 유명한 앤드류 가필드는 신예 시절이었던 2010년 <소셜 네트워크>에서 페이스북의 창업자 중 한 명인 에두아도 새버린 역을 맡았다. 초반에는 마크와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페이스북의 탄생과 확장에 크게 기여하지만 사이트를 키우는 과정에서 의견차이를 보이며 결국 마크와 소송까지 간다. 물론 실제로는 소송전이 끝난 후 다시 페이스북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탄생 당시 '더 페이스북'이었던 이름에 '더'를 떼라는 결정적인 조언을 해주는 인물 숀 파커는 가수와 배우를 겸하는 미국 최고의 만능 엔터테이너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연기했다. 숀 파커는 오만하고 뻔뻔한 캐릭터지만 사업감각이나 투자를 유치하는 능력 만큼은 단연 발군이다. 재미 있는 사실은 '원조 소리바다' 냅스터의 최대피해자였던 NSYNC의 멤버 출신인 팀버레이크가 냅스터의 창업자 중 한 명인 숀 파커를 연기했다는 점이다.

<소셜 네트워크>에는 대부분의 캐릭터가 실존 인물을 연기하며 영화에서도 그들의 본명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마크의 전 여자친구는 실존인물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에리카 올브라이트라는 예명으로 등장했다. 에리카는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는 답답한 마크를 차버리지만 결국 영화 후반에는 그녀도 마크가 개발한 페이스북을 이용한다. 에리카를 연기한 배우 루니 마라는 2015년 토드 헤인스 감독의 <캐롤>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소셜 네트워크 데이비드 핀처 감독 제시 아이젠버그 앤드류 가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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