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4월에 발매된 아이유의 정규1집 < Growing Up >에는 12곡의 노래(편곡 및 AR 버전 제외)가 들어 있지만 아이유가 작사나 작곡에 참여한 노래는 단 한 곡도 없다. 하지만 지난 2021년에 발매된 아이유의 정규 5집 <LILAC>에는 아이유가 모든 노래의 가사를 직접 썼고 작곡에도 두 곡 참여했다. 그만큼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유가 가수로서는 물론이고 뮤지션으로서도 더욱 성장했다는 뜻이다.

물론 김동률이나 이적, 장범준처럼 데뷔할 때부터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직접 만드는 가수들도 많지만 아이유나 박효신 등 커리어가 쌓이면서 앨범의 작사나 작곡, 프로듀싱에 참여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가수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수들은 대중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나 시도해 보고 싶었던 음악 장르를 직접 만들고 싶은 욕심이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이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송강호처럼 연기에만 집중하는 배우들도 많지만 연기경력이 늘어날수록 자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대한민국 '최연소 1억 배우' 하정우도 배우로서 한창 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30대 중반 시절 자신이 직접 연출과 각본을 맡은 영화 <롤러코스터>를 통해 처음으로 감독에 도전장을 던졌다.
 
 <롤러코스터>는 출연하는 영화마다 흥행가도를 달리던 하정우의 첫 연출 도전작이었다.

<롤러코스터>는 출연하는 영화마다 흥행가도를 달리던 하정우의 첫 연출 도전작이었다. ⓒ CJ ENM

 
방은진-문소리-김윤석-이정재, 배우들의 연출도전

할리우드에는 <용서 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만든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킹 메이커>,<모뉴먼츠 맨:세기의 작전>의 조지 클루니,<타운>,<아르고>의 벤 에플렉 등 감독을 겸하는 배우들이 꽤 많다. 홍콩에서는 주성치와 성룡 등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직접 연출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연출에 도전하는 배우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박철수 감독의 <301 302>로 1995년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방은진은 배우와 감독 활동을 가장 슬기롭게 병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영화인으로 꼽힌다. 배우로 활동하다 2005년 엄정화 주연의 스릴러 <오로라 공주>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한 방은진은 <용의자X>와 <집으로 가는 길>,<메소드> 등을 연출했다. 배우로는 2019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윤세리(손예진 분)의 어머니 역으로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다.

2002년 베니스영화제 신인배우상에 빛나는 문소리 역시 지난 2017년 자신이 각본과 연출,주연을 모두 맡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선보였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문소리가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만들었던 세 편의 단편 <여배우>와 <여배우는 오늘도>,<최고의 감독>을 묶어 개봉한 영화다. <여배우는 오늘도>에는 실제 문소리의 남편인 <1987>의 장준환 감독과 동료배우 이정현,전여빈 등이 조·단역으로 출연했다.

<타짜>에서 아귀와 <황해>에서 면정학, <도둑들>에서 마카오 박 등을 연기했던 김윤석도 2019년 <미성년>이라는 영화를 만들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미성년>에는 김윤석과 <전우치>에 함께 출연했던 염정아와 2017년 <더 킹>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김소진, 드라마 <킹덤>과 <구경이>,영화 <싱크홀> 등으로 얼굴을 알린 김혜준 등이 출연했다. 연출을 맡은 김윤석은 김소진과 바람을 피는 염정아의 남편 역으로 출연했다.

연출에 도전했던 배우들이 대부분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한 가운데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과를 남긴 영화를 만든 배우는 단연 <헌트>의 이정재다. 이정재는 <헌트> 촬영 시기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작년 8월에 개봉한 <헌트>는 전국 435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작년 여름 <외계+인 1부>가  153만, <비상선언>이 205만 관객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선전한 셈이다.

'최연소 1억 배우' 하정우의 독특한 블랙코미디
 
 정경호는 군에서 전역하자마자 대학선배가 연출한 독특한 코미디 영화를 통해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정경호는 군에서 전역하자마자 대학선배가 연출한 독특한 코미디 영화를 통해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 CJ ENM

 
<롤러코스터>가 제작될 당시 하정우는 <국가대표>로 848만,<외뢰인>으로 239만,<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로 470만, 심지어 로맨틱코미디 <허브픽션>으로도 172만 관객을 동원했다. 일단 출연만 했다 하면 흥행이 보장되는 충무로 최고의 '흥행보증수표'라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런 하정우가 <베를린> 촬영을 끝낸 후 <더 테러:라이브> 촬영에 들어가기 전 약 6억 원의 제작비로 만든 영화가 바로 그의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였다.

<롤러코스터>는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촬영기간이 말해주듯 상당히 짧은 시간에 다소 급하게 만들어진 영화다. 이 때문인지 배우들도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대사를 소화하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재난상황의 소동을 그린 <롤러코스터>의 CG와 특수효과는 작년에 개봉했던 <비상선언>은 말할 것도 없고 90년대 영화인 <패신저57>이나 <다이하드2> 등과 비교해도 조악하기 그지 없다.

<롤러코스터>는 비행기에서 벌어지는 재난상황을 비튼 코미디 영화라는 점에서 지난 1980년 35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7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던 할리우드 영화 <에어플레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에어 플레인>은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세 편에 걸쳐 제작됐던 <총알 탄 사나이>의 주인공 고 레슬리 닐슨이 본격적으로 코미디 연기를 시작한 작품으로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본다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비행 재난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롤러코스터>는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도 적지 않다. 특히 뜻하지 않은 사정으로 경쟁업체의 비행기를 타게 된 타 항공사의 회장(김기천 분)과 그 비서(손화령 분)가 승무원들에게 갑질을 하는 장면은 마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땅콩회항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한 가지 재미 있는 사실은 '땅콩회항사건'은 2014년에 있었지만 <롤러코스터>는 2013년에 개봉한 영화라는 점이다.

비록 흥행성적(전국 27만)은 다소 아쉬웠지만 <롤러코스터>를 통해 범상치 않은 연출감각을 뽐낸 하정우는 2015년 중국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두 번째 장편영화 <허삼관>을 선보였다. 100억 원에 가까운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허삼관>은 하지원과 전혜진, 성동일, 이경영, 조진웅, 김성균 등 인기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하지만 <허삼관>은 전국 95만 관객에 머물렀고 하정우는 이후 감독활동을 접고 배우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스마트한 매력의 배우 정경호는 어디로?
 
 한성천(오른쪽)과 임현성은 비행기의 기장과 부기장으로 뛰어난 연기호흡을 선보였다.

한성천(오른쪽)과 임현성은 비행기의 기장과 부기장으로 뛰어난 연기호흡을 선보였다. ⓒ CJ ENM

 
하정우는 <롤러코스터>를 연출하면서 '학연'을 십분 활용했다. <롤러코스터>의 주인공이자 욕쟁이 슈퍼스타 마준규 역을 맡은 정경호는 하정우의 중앙대 연극영화과 후배다. 정경호는 2012년 9월 군생활을 마친 후 곧바로 <롤러코스터> 촬영에 들어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김준완 교수나 <일타스캔들>의 최치열을 보고 정경호의 팬이 된 관객이라면 <롤러코스터>의 욕쟁이 스타배우 마준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정우가 주연을 맡았던 윤종빈 감독의 데뷔작 <용서 받지 못한 자>를 인상 깊게 본 관객이라면 비행기의 기장과 부기장을 연기한 배우 한성천과 임현성을 기억할 것이다. <용서 받지 못한 자>에서 각각 심대석 상병과 마수동 병장을 연기했던 한성천과 임현성은 <롤러코스터>에서 바비항공 한국행 비행기의 기장과 부기장 역을 통해 코믹연기를 선보였다. 한성천과 임현성 역시 하정우와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동문이다.

드라마 <미스코리아>와 <야경꾼 일지>,<당신이 잠든 사이에>,<마더> 등을 통해 얼굴을 알린 고성희는 신인 시절이던 2013년 <롤러코스터>에서 한국어가 서툰 일본인 승무원 미나미토 역을 소화했다. 당시 고성희는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녀를 진짜 일본인이라 생각한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영화에서 마준규는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미나미토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며 관객들의 빈축을 샀다.

<롤러코스터>에는 하정우의 동료배우들이 대거 우정출연으로 얼굴을 비췄다. 김성수는 초반 엉뚱한 게이트로 들어오는 배우 역할로, 마동석은 김성수를 데려가는 공항직원으로 출연했다. 김성균은 의사가 필요한 상황에서 화장실을 찾는 승객으로 나왔고 하정우의 군대선임인 개그맨 강성범은 김포공항의 관제사로 출연했다. 하지만 정작 하정우는 영화 내내 한 번도 얼굴이 나오지 않고 인천공항의 관제사로 목소리 출연만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롤러코스터 하정우 감독 정경호 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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