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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우울증이 혼재된 정신질환)로 진단 받은 뒤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환자는 2021년 기준 국내에 1만 2435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며,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저 사람 우울증이라 안쓰러워서 데리고 있어요."

20대 후반, 회사 일로 어느 회의에 갔다가 다른 회사 대표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사장님들은 그 말에 '대표님이 참 노고가 많으십니다'라던가, '대표님 마음이 넓으시네요'라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했죠. 우울증을 오래 앓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던 저는 슬픈 제 본심과 달리 웃는 표정을 하느라 애를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신질환자'라서 퇴사한 건 아닙니다
 
정신질환자의 업무 능력의 한계는 사람들의 편견이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정신질환자니까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요. 이런 고정관념이 정신질환자의 노동을 거부하는 악습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질환자의 업무 능력의 한계는 사람들의 편견이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정신질환자니까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요. 이런 고정관념이 정신질환자의 노동을 거부하는 악습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 Nadine Shaa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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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인 저는 일을 하면서 정신질환이 저를 규정짓고 제 행동의 한계를 만드는 듯한 말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는 조현정동장애를 가졌으니까 당연히 승진할 수 없다는 말 같은 거요. 동정 섞인 비하의 말들도 끔찍하게 싫었고요. 정신질환자인 저를 고용하고 인내하는 회사가 너그럽고 착하다는 건 말 같지도 않은 말이죠.

그래서 듣기 싫은 말을 피하기 위해 다른 직원들이 인정할 정도로 열심히 업무에 임했어요. 운이 좋게도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제게 정규직 계약 제안을 했습니다. 계약직 계약을 11개월 단위로 하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새로운 계약서로 계약해 연장 고용을 하는 기업들의 꼼수가 만연한 현실에서 정말 잘 된 일이었죠. 

당연히 정규직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관리직으로 승진하면서 일거리와 책임이 늘었죠. 힘들었지만 얼마 없는 기회를 놓치기 싫어 일에 더 집중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했어요. 하지만 점차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잠을 두 시간에 한 번씩 깨고, 신경성 방광염이 생겨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일상이 이어지니 정신적으로도 견디기 힘들었어요. 결국 저는 정규직으로 일하는 걸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정규직을 포기하고 계약직 계약 기간이 끝나 퇴사하자 우울감에 휩싸였습니다. 제가 정신질환자라는 한계를 가졌기 때문에, 그 한계를 무시하고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매일 들었습니다. 하지만 쉬면서 몸 건강을 챙기다 보니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다니던 회사는 환경적으로 열약했고, 관리직 직원도 많지 않아서 자연적으로 제가 맡은 일의 업무가 과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수인계를 해 줄 사수도 없었고 처음부터 전부 맨땅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하나하나 일을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즉, 정신질환자가 아닌 사람이 일을 해도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 환경이었던 거죠.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뼈 아픈 실패를 겪고 나서 정신질환자로서 저의 정신과 몸 상태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사회인으로서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정신질환자라고 쉽게 밝힐 수 없는 현실이 씁쓸했어요.

정신질환자라고 해서 일을 엉망진창으로 하거나 업무 효율이 무조건 평균보다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 편견입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원이 회사에서 상정하는 '비질환자'의 업무 수행 능력에 맞추어 업무를 수행하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질환자'의 기준부터 정확하지 않고 애매해요. 한 사람이 살면서 어떤 질환도 앓았던 적이 없거나, 앓았다고 해도 완벽히 전과 같은 업무 수행 능력을 가지기란 어렵습니다. 게다가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이 널리 퍼진 시대에 여전히 '비질환자'를 기준으로 업무 목표를 정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온 힘을 다해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
 
노동자의 정신질환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 한국의 노동 조건과 업무 정도가 가혹하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모두가 행복한 노동 환경을 위해 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자의 정신질환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 한국의 노동 조건과 업무 정도가 가혹하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모두가 행복한 노동 환경을 위해 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Luis Villas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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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나가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의문이 들곤 합니다. 적은 시간 안에 최대한 빨리 많은 일거리를 해결하는 걸 목표로 하는 업무 프로세스나, 야근 수당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많은 업무를 강요하는 노동 조건에서 다들 어떻게 이렇게 꿋꿋이 견디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이런 노동 조건이나 업무 프로세스는 비질환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게 분명하지만, 그들도 견디기에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른 나이에 퇴사를 하고 직장을 자주 옮겨 다니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는 뉴스 기사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늘어난 듯한 게 제 기분 탓은 아닐 겁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주 69시간 근무제라는 제도 개편이 추진되면서 걱정이 앞서요.

그렇기에 사회의 정신질환자의 업무 능력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행복한 노동을 위해서는 각 기업의 업무 시간과 목표를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고 주장해봅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이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회사에 밝히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저도 선뜻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고요. 그 대신 정신질환을 가지고서 일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정신질환자이기 때문에 인정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무리하게 일을 해 건강이 악화되거나, 칭찬이나 인정을 받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 없길 바라요.

정신질환자인 당신은 이미 충분히 온 힘을 다해 일을 하고 있을 테고, 서 있는 자리에서 꾸준히 업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자기 자신을 응원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편견과 비하에 맞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노동을 하는 세상의 모든 정신질환자분들을 응원합니다.

태그:#조현정동장애, #조현병,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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