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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우울증이 혼재된 정신질환)로 진단 받은 뒤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환자는 2021년 기준 국내에 1만 2435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며,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글쓰기를 시작하신 게 가지고 계신 정신질환과 연관이 있을까요? 어쩌다가 글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조현병적 증상이 나타나고 1년 반쯤 뒤, 처음으로 단편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그 이후로 몇몇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질문들을 받았습니다. 조현정동장애 정신질환을 가진 글쓴이가 많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조금 묘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뇌기능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아예 없거나, 무언가에 아주 특출난 천재라는 편견이 대중들에게 각인이 되어서일까요. 저는 그 두 경우 중 어느 쪽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지만요. 

저와 비슷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 또한 어릴적부터 시작만 잘하고 끝맺음을 좀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살면서 하다가 중단한 일들만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많습니다. 심지어 간신히 들어간 대학을 적응하지 못해 자퇴한 적도 있고요.

처음에는 칭찬을 받거나 의욕이 앞서 열심히 하다가,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거나 어려운 난이도의 일이 닥치면 거기서 멈추고 포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하더라도 어중간하게 잘하고 평범한 결과를 내놓게 되었어요.

글쓰기를 포기 하지 않은 결과
 
항상 실패와 포기를 하던 저에게는 글쓰기도 실패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과의 연결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었기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실패와 포기를 하던 저에게는 글쓰기도 실패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과의 연결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었기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 Michael Dziedz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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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도 그렇게 중간까지 가다가 포기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학창시절 교내에서 개최한 백일장에서 한 번 입상한 것 빼고는 눈에 띄는 활동도 없었어요. 책읽기를 좋아하다보니 소설 창작에도 관심은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도무지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지 못했습니다.

결국 10대 중반 이후부터는 소설이나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아예 손을 놓아버렸어요. 조현병 증상이 나타난 직후에는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 글쓰기는 생각도 꺼내지 않았고요.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았죠.

하지만 발병 후 글 읽기를 연습하던 어느 날, 이야기를 통해서라면 세상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너무 유명해서 한번쯤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해요. '세상과 단절하고 말았다'라는 완곡한 어투의 말이 자살을 은유하기도 하는 만큼, 세상과 연결감을 가지는 건 누구에게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발병 직후 저에게는 당시에 그런 감각이 희미했어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어렵고 집 밖에 나서기도 무서웠죠. 전에도 얼마 없던 인간관계는 대부분 사라졌고요. 회복기와 휴식기에 있는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그렇듯이, 혈연을 제외하고 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소통창구가 없는 상황은 상당히 고통스럽고 외롭습니다.

그 날부터 단편소설 한 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이 흐지부지 되었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글을 쓰는 동기가 확실하고 강해서 끝맺음을 할 수 있었어요. 생애 처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습니다.

그렇게 완성만 하고 저 혼자 소설을 간직하려 했는데 막상 완성하고 나니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완성한 글을 온라인에 업로드하였고 운이 좋게도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셨습니다. 그런 경험이 지금까지 창작과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
 
정신질환자로서 타인과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은 중요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가치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정신질환자로서 타인과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은 중요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가치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 Remi Walle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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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로서 세상과 연결되어있고 세상의 일원으로서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은 무척 중요합니다. 조현병을 가진 정신질환자의 자살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는, 그만큼 당사자들이 소외되어 있고 이 세상과의 이어짐이 약하다는 걸 보인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조현병 정신질환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고,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보면 '조현병에 걸린 사람의 이상하고 무서운 말' 같은 제목이 붙은 사진이나, 조현병이 있다고 추측되는 사람이 남긴 논리적이지 않은 내용의 게시글들이 괴담처럼 여겨지는 걸 보곤 합니다.

참 슬프고 화가 나는 일이지요. 조현병 당사자들이 남기는 말이나 글은, 그들이 어떻게든 세상과 이어지려고 노력하는 행동이잖아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라고해서, 그 글들을 소음으로 치부하거나 웃기고 이상한 현상으로만 여기는 건 부조리해요. 모든 발화는 (자기자신이 그 대상일 때도) 누군가에게, 세상을 향해 가 닿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더 많은 조현병 스펙트럼 정신질환자들이 내는 목소리로 세상이 시끄러워지기를 바랍니다. 대중들에게 지금 이곳에 정신질환자가 실존함을 알리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당사자들이 자기표현을 통해 타인이나 세상과 연결되면 좋겠어요. 정확하고 논리적인 문장과 단어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말할 수 있는 걸 말해주세요. 그렇게라도 살아가주기를 바랍니다.

태그:#조현정동장애, #조현병,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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