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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호는 1967년에 이어 1971년에도 대통령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웅지(雄志)를 접어야 했다. 대단히 그릇이 크고 호쾌한 성품에 용량이 무척 넓은 정치인이었으나 혁신과 민주사회주의라는 팻말은 그의 행동반경과 대중성에 족쇄가 되었다. 한국사회의 후진성이 담보된다.

국민적 기대를 모았던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패배하고, 5월 25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도 석패하였다. 옥중에 있을 때에도 압도적으로 당선시켜주었던 고향 선거구에서 이번에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총선 참패의 아픔을 딛고 새 활로를 찾았다. 

해방이후 정계에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 그리고 대선후보에 나서면서 항상 관심의 첫 자리를 차지한 통일문제에 전념하고자 하였다. 낙선을 계기로 국회의원의 신분보다 자유로운 신분으로 이에 전념하고자 한 것이다. 

1971년 12월 27일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사단법인 '통일문제협회'를 창립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 45번지에 사무실을 두었다. 학계·실업계·정계·언론계·종교계·체육계·군 출신인사·기타 인사 등 69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전문가와 저명인사들도 함께하였다. <발기선언문>에서 협회의 창립 의미가 담겼다.

                                    발기선언문

조국통일! 그것이 장차에 가능하건 또는 한낱 국민의 뜨거운 열망으로 그치고 말건 간에 한국의 남북통일 문제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민족적 과제라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과 더불어 전후 수습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비롯된 한반도의 분단은 국제적 여건이라는 피동적 역사성에 얽매인 채 장기간 한민족에 숱한 비운을 안겨주었다. 

당초 미·소 양대국의 태두리 안에서 맴돌던 남북분단의 상태는 단순한 국토분단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복잡한 동서라는 이념을 분계로 한 집단적 이익의 대결로 양상이 바뀌어 지리한 민족적 숙원으로 침전된 채 어언 4반세기가 지났다.

한반도의 통일은 한민족의 당위적인 역사적 과제이면서도 분단의 원인과 그 후의 사태에서 주·객관적인 현실적 여건 때문에 통일에 대한 국민의 불같은 열망은 쉽사리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고도경제성장의 결실로 국민소득이 중진국의 첨단에 서게 되어 단독의 힘으로 북괴에 대처하는 내적 여건의 우위상황에 놓이게 될뿐더러 미일안보조약·소련과 북괴의 군사동맹·바르샤바조약 등이 만료되고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정책의 현실화, 일본의 재무장과 중공의 핵위협팽창 등 한반도를 둘러싼 외적 환경이 급격한 가변성은 통일문제에 대한 어떤 모멘트를 제기해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과연 통일의 가능성이 엿 보일 것인가? 또 통일의 전망이 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최근의 국제정세는 오히려 강대국의 평화공존 추세속에 안정화의 길을 치닫고 있어 남북분단의 상태가 더욱 고착화할 우려성이 짙기 때문에 결국 한국통일 문제는 어디까지나 전후 분단국가군의 공동운명을 저울질 하는 중대한 전후처리 문제의 일환으로 미결상태에 있고 민족의 자체정비와 국제정세의 유리한 전개가 잘 배합되어 져야 해결될 수 있으므로 장차의 국내외 여건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이에 대응하여 설혹 통일의 가능성이 엿보이게 되던지 또는 통일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헛되게 되든 간에 통일문제가 국내외 여건에 달려 있다고 체관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여 통일기반을 한발자국이라도 더 구축하는 것과 아울러 통일의 예비적 준비로 전국민적 동의에 입각한 통일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국민적 토의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터부시되었던 통일논의를 양성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중공·일 3국관계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한반도의 힘의 균형관계가 불리한 상태로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한 면밀한 정세추이의 분석과 다각적인 외교능력의 발휘로 있을 수 있는 갭을 카버 하는 한편 그와 같은 전환기적 위험요소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자주적인 국방력을 갖추는 일과 대결과 긴장의 촉진이란 외적 조건에만 대응, 형성되어온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질서를 긴장완화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외적 정세에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탄력성 있는 국내체제를 확립함으로써 국내적 혼란과 국제적 고립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민족통일 문제와 직결되는 전제적 작업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첫째, 이같은 열강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우리가 바라는 통일을 실현할 수 있도록 어떻게 외교역량을 자기확장적으로 전개해 할 수 있느냐 하는 국제정치적 측면과 이와 관련해서 통일을 위한 국내정치적 여건 조성에 있어서 항상 본원적인 문제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 문제인데 남과 북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란 각기 상이한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이항체제 속에서 분단 25년을 살아왔다.

이같은 남북의 상이한 이데올로기에 의한 상이한 통일정책은 마침내 이데올로기 이전의 단일민족으로서의 일체감과 통일에의 의욕 그리고 세대간의 사고의 동질성을 상실케 하고 남북 민족간의 이질성과 소외감과 그리고 민족의식의 퇴색 등을 발생케 함으로써 통일의 자주적 여건 조성을 위한 기반을 근저로부터 파괴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우리는 무분별한 감상적 매진도 금물이지만 위대한 민족적 성업을 잠시도 중단시킬 수는 더욱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강력한 통일에의 의지를 바탕으로 민족적 일체감을 고취시키면서 자체역량을 배양, 자유를 최대한으로 확보할 수 있는 이른바 통일의 구심점을 어디까지나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민족자주통일에의 길을 차분히 일보일보 전진해야 한다.

이 길은(……확인 불가)에 주체적 여건 성취를 위한 노력으로서 우리는 각계각층을 총망라하여 '통일문제협회'를 결성하고 종래와 같은 일당일파나 특수집단의 정략적 통일논의와는 달리 건전한 의미에 있어서의 민간주도형의 대중적 토의에 입각한 민족적 차원에서의 통일방안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제반 노력을 연구 실천할 것을 전국민 앞에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주석 1)


주석
1> <자료집03>.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서민호, #월파_서민호평전, #월파서민호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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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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