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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의원들이 걸핏하면 ‘의원직 사퇴’를 내걸고도 유야무야되기 일쑤였던 정계에서 그는 끝내 의원직을 내던진 소신파였다. 독불장군이면서도 대의를 위해서는 대통령후보를 양보하고 온갖 시련과 탄압에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민주사회주의’라는 텃밭을 지켰던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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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51]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50]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투사였던 월파 서민호 선생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49] 통일문제연구협회를 창립했지만 운영은 쉽지 않았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48] 민족주의 세력의 결집이 거족적으로 요청되는 때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47] 1971년 12월 27일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사단법인 '통일문제협회'를 창립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46] 서민호는 격동의 현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위치를 안타까워하였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45] "왜 나는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지 않았는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44] 서민호는 이 책의 서문에서 기술한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43] 1969년까지 겪고 생각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42] 서민호는 현안보다는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이슈를 중심으로 회견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41] 대의를 따르는 청렴, 결백하고 과감한 인격의 소유자가 요구되고 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40] 대충 넘어가거나 적당히 해치우는 일이 없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39] 박정희 집단은 합법적인 절차도 밟지 않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38] 서민호는 누구보다 박정희의 3선개헌을 반대하였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37] 그는 1968년 11월 8일 등원을 결행했다. 신민당에서 날선 비판이 나왔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36] 국회는 6.8부정선거 후유증으로 장기간 개원하지 못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35]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위해 후보를 사퇴하고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34] 서민호가 후보를 수락하게 된 다섯가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