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에 개봉한 영화 <짝패>는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이 직접 주연을 맡은 충청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통 액션영화다. 영화의 힘을 화려한 액션 장면에 치중했기 때문에 배우의 노출 등 선정적인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짝패>는 영상물 등급 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청소년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반면에 2019년에 개봉해 전국 1620만 관객을 동원(이하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하며 역대 흥행 2위 기록을 세운 <극한직업>은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물론 욕설이 난무하는 이무배(신하균 분)와 테드 창(오정세 분)의 대화가 청소년 교육에 좋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영등위는 몇몇 욕설장면보다는 코미디를 추구하는 영화의 색깔에 더 주목했다. 만약 <극한직업>이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면 천만영화가 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의 제작사와 배급사에서는 영화의 등급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영화의 등급에 따라 흥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1년에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는 폭력성과 거친 대사들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친구>는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 속에 800만관객을 끌어 모으면서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2년 넘게 유지했다.
 
 800만 관객을 모은 <친구>는 천만영화 <실미도>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영화 최고흥행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800만 관객을 모은 <친구>는 천만영화 <실미도>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영화 최고흥행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 코리아픽처스

 
한 때 송강호, 최민식보다 잘 나가던 배우

많은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가던 유오성은 1997년 영화 <비트>에서 이민(정우성 분)의 친구 태수를 연기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유오성은 <비트> 이후 <간첩 리철진>, <주유소 습격사건>을 통해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고 2001년 드디어 자신의 대표작 <친구>를 만난다.

<친구>에서 조직폭력배 준석 역을 맡은 유오성은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극찬을 받았고 <친구>는 청소년 관람불가의 불리함을 이겨내고 전국 8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유오성은 2002년 곽경택 감독과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찍은 <챔피언>으로 170만 관객을 모았지만 박진희와의 멜로 영화 <별>, 서세원 감독의 <도마 안중근>이 나란히 흥행 참패하면서 승승장구하던 행보에 오점을 남겼다.

최고의 흑역사로 꼽히는 <도마 안중근> 이후 2년의 공백을 가진 유오성은 2006년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형사 역으로 열연하며 연기변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반가운 살인자>, <챔프>, <돈 크라이 마미> 같은 영화들이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하면서 <친구> 시절의 명성을 되찾진 못했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2012년에는 홍콩 영화 <7인의 암살단>에도 출연했다.

유오성은 <챔피언>을 둘러싼 초상권 문제로 '절친'이었던 곽경택 감독과 맞소송을 하면서 사이가 멀어졌지만 2013년 <친구2>로 재회하며 갈등을 풀었다. 그리고 <친구2>는 296만 관객을 동원하며 곽경택 감독과 유오성의 자존심을 살렸다. 수 년 전부터 영화보다는 드라마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유오성은 오는 9월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검은 태양>에 출연할 예정이다.

조폭 미화물로 오해 받은 정통 누아르 
 
 고등학교때까지 단짝이었던 네 친구는 어른이 되면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고등학교때까지 단짝이었던 네 친구는 어른이 되면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 코리아픽처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두 주인공 준석(유오성 분)과 동수(장동건 분)는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격 인물이다. 그리고 <친구>가 엄청난 흥행 스코어를 올리면서 비슷한 설정의 조폭영화가 범람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친구>는 조폭 미화물이라기 보다는 죽마고우였던 친구 사이가 깨지면서 친구들의 운명이 비극으로 치닫는 정통 누아르에 가깝다. 관객들도 성인 시절의 분량보다는 아역 시절(특히 고교시절)의 분량을 더 많이 기억한다.

무명 배우였던 김광규의 인생을 바꿔준 "아부지 뭐하시노?" 신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친구>의 초반 명장면이다. 당시 유오성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은 아역을 쓰지 않고 직접 고등학생으로 출연했는데 영화 개봉 시기를 기준으로 유오성이 36세, 서태화가 35세, 장동건이 30세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등학생으로 나온 유오성이 선생님으로 나온 김광규보다 한 살 더 많았다는 점이다(김광규는 1967년 1월에 태어난 '빠른 67년생'이다).

학교를 다시 다니기로 한 준석과 친구들이 극장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는 장면은 부산의 자갈치 시장과 범일동, 국제시장 부근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장면이다. 로버트 팔머의 노래 < Bad Case Of Loving You >도 영화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영화가 워낙 많은 인기를 얻은 만큼 명장면도 많고 명대사도 많지만 뭐니 뭐니 해도 <친구>를 대표하는 장면은 유오성과 장동건의 카리스마가 충돌하는 준석과 동수의 마지막 대면이다. "원래 키는 내가 더 컸다 아이가, 니 시다바리할 때부터", "간단하게 말할게" "복잡하게 말해도 된다" "하와이로 가라 준비는 내가 해줄게" "니가 가라 하와이" 같은 명대사가 쏟아져 나왔고 일일이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된 장면이다.

<친구>가 개봉된 지 8년이 지난 2009년 MBC에서는 다시 한 번 곽경택 감독이 각본과 연출에 참여한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 20부작으로 제작·방영됐다. 2004년 드라마 <아일랜드>에 함께 출연했던 현빈과 김민준이 각각 동수와 준석 역에 캐스팅되면서 방영 초기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주말 드라마로는 불리했던 방영시간(밤10시50분)과 시청등급(19세 미만 관람불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 자리 수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진짜 깡패로 오해 받은 차상곤과 도루코
 
 차상곤을 연기한 배우 이재용은 8년 후 드라마판에서도 그대로 같은 배역을 연기했다.

차상곤을 연기한 배우 이재용은 8년 후 드라마판에서도 그대로 같은 배역을 연기했다. ⓒ 코리아픽처스

 
<친구>는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출연하는 출연하는 배우들이 모두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서울 출신의 주연배우 유오성과 장동건은 곽경택 감독으로부터 따로 사투리 과외를 받았을 정도. 대신 조연들은 대부분 부산 출신들을 캐스팅했는데 그중 일부는 워낙 실감나는 사투리 연기를 구사하면서 실제 조폭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배우가 차상곤 역의 이재용과 도루코 역의 김정태다.

준석의 어린 시절, 준석의 아버지(주현 분)가 이끄는 조직 2인자 콧수염(기주봉 분)의 차를 운전하던 상곤은 준석의 아버지가 은퇴한 후 힘을 잃자 조직을 배신한다. 자신이 모시던 보스 아들의 얼굴을 칼로 그은 상곤이 "괜찮다, 소독했다"라고 말하며 비열하게 웃는 장면은 <친구>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 중 하나다. 동수를 돈으로 포섭해 조직에 끌어들인 상곤은 결과적으로 준석과 동수의 사이를 파탄 나게 한 장본인이다.

<친구>에서 소름 끼치는 악역 연기를 선보인 이재용은 <친구> 이후 <피아노>의 조폭두목, <야인시대>의 미와경부, <제5공화국>의 이학봉, <주몽>의 부득불 등 악역 연기에서 뛰어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재용은 <친구> 드라마판에서도 차상곤 역으로 출연했는데 곽경택 감독이 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이재용만큼 차상곤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친구>의 영화판과 드라마판에 같은 배역으로 출연한 배우는 이재용이 유일하다.

김정태는 <친구>에서 준석의 오른팔 도루코를 연기했는데 도루코는 준석의 만류에도 동수의 살해를 교사하다 실패했고 결국 동수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이는 준석과 동수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친구>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본명인 김태욱을 썼던 김정태는 2006년부터 김정태로 활동명을 바꿨고 <7번 방의 선물>, <박수건달>, <해바라기> 등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친구 곽경택 감독 유오성 장동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