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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이 지난 고흥촛불화재 참사현장. 전기요금 15만7천740원을 내지 못해 단전된 상태에서 어린 손주와 함께 전기장판도 사용하지 못하고 촛불을 켜고 잠을 자다가 참사를 당한 김씨 할머니, 평소 쓰던 양은 솥과 항아리만 남아 있다. 말끔하게 정리된 참사 현장처럼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열흘이 지난 고흥촛불화재 참사현장. 전기요금 15만7천740원을 내지 못해 단전된 상태에서 어린 손주와 함께 전기장판도 사용하지 못하고 촛불을 켜고 잠을 자다가 참사를 당한 김씨 할머니, 평소 쓰던 양은 솥과 항아리만 남아 있다. 말끔하게 정리된 참사 현장처럼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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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대다수는 가장 많이 가진 부유한 극소수를 위해 상대적으로 적게 가진 사람들을 제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로 잡지 못하면 대다수는 극소수의 가진 자들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한 세상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꼭두각시로 살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시선이 온통 대통령 선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대통령 후보들은 저마다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전남 고흥 나로도 우주센터에서는 3차 나로호 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11월 29일. 나로호 우주발사체에 엄청난 연료를 퍼부어 가며 발사 예정 시간인 오후 4시가 임박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후 3시 44분경에 카운트다운을 하던 시계가 멈춰버렸다.

2002년, 나로호 개발에만 5000억 원, 우주센터 건설에 3000억 원이 투입됐고 2009년 8월 실패한 '나로호(KSLV-1)' 발사 때 들어간 비용만 5000억 원 수준이다. 2번의 실패와 10번의 연기를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어댔던가? 그럼에도 나로호를 악착같이 발사하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한 것이라 답할 것이다.

그렇게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좀 더 잘 살아 보겠다며 나로호 발사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인 지난 11월 21일 새벽, 고흥군에서 끔찍한 참사가 있었다. 6개월 동안 밀린 전기요금 15만7740원을 내지 못해 단전된 상태에서 할머니와 어린 손자가 촛불을 켜고 잠을 자다가 화마로 처참히 죽어갔다.

전기 요금 15만7천740원을 내지 못해 단전된 상태에서 생활하던 할머니와 어린 외손주가 촛불을 켜고 잠자다가 참사를 당한 현장. 고흥군 도덕면 신양리.
 전기 요금 15만7천740원을 내지 못해 단전된 상태에서 생활하던 할머니와 어린 외손주가 촛불을 켜고 잠자다가 참사를 당한 현장. 고흥군 도덕면 신양리.
ⓒ 고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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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모임을 겸하고 있는 고흥 생태모임, '느티나무' 회원들은 뒤늦게 언론을 통해 이 처참한 소식을 접하고 부끄러운 머리를 맞댔다. 전기요금 15만7740원을 내지 못해 촛불화재 참사를 당하고 있는 이웃에서 우주발사를 준비하는 OECD국, 대한민국이 부끄러웠다. 그 이웃에 살면서 뒤늦게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회원 모두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로도 우주발사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던 지난 11월 25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흥군은 전기 공급이 중단된 채 떨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법적 제도적 근거의 미비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또 얼마인지 시급한 실태 파악과 한전에 전류제한조치를 해제할 것을 강력히 요청할 것, 그 밖에 필요한 지원 대책 마련에 즉각 나설 것, 또한 정부는 전력난을 우려해 전기 생산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공급되는 전기를 국민 모두가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복지 방안을 수립할 것" 등을 촉구했다.

성명서 발표와 함께 회원들이 번갈아 가며 1인 시위를 벌이기로 했고 마지막 날에는 촛불집회를 열기로 했다. 1인 시위 첫날, 피켓을 들고 군청 앞에 나섰다. 추위에 겁먹고 옷을 두툼하게 입었지만 찬바람은 불지 않았다. 온몸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등줄기에서 땀이 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두툼하게 껴입은 옷이나 햇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기장판도 없는 추운 방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촛불을 켜고 잠들다가 화마에 휩쓸려간 할머니와 손자. 세상 저 편 어딘가에서 누군가 굶주리고 헐벗어 죽음을 당하면 그만큼 누군가는 호의호식을 누리며 생명을 연장해 나갈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 있는 내내 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손 들고 있듯 내내 '뻐정다리'로 움직일 수 없었다. '대기업에 수백억 할인, 극빈층에 단전조치', '법과 제도 핑계 말고 빈곤층 지원조례 제정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그 누구도 이번 참사에 책임을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전의 전류제한조치... 할머니와 손자, 촛불 켜고 자다 '참변'

11월 27일~11월 30일. 사진 속의 장준환씨를 비롯한 고흥생태문화 모임 '느티나무' 회원들이 번가라 가며 고흥군청 앞에서 빈곤층에 대한 전류제한조치 해체와 근본적인 생태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11월 27일~11월 30일. 사진 속의 장준환씨를 비롯한 고흥생태문화 모임 '느티나무' 회원들이 번가라 가며 고흥군청 앞에서 빈곤층에 대한 전류제한조치 해체와 근본적인 생태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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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촛불 화재참사를 다룬 각종 언론보도 기사를 들췄다. 사실 나는 이번 참사가 있기까지 전류제한조치의 속내를 잘 몰랐다. 그만큼 전기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가난한 이웃들에 큰 관심을 쏟지 않았던 것이다.  

전류제한조치란 전기요금이 2개월 이상 미납된 경우 전기사용계약을 해지하는 대신 전력을 제한적으로 공급하는 전류제한기를 설치하여 순간 사용량이 220w를 넘거나 일정 전력 이상 사용하면 차단기가 내려가 전력 공급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형광등의 소비전력이 36w, 소형냉장고 200w, 텔레비전이 200w 정도임을 감안했을 때 제한조치가 취해지는 220w는 최소한의 생활이 불가능한 전기공급량이다. 이번 고흥 촛불화재참사를 당한 할머니와 손주는 그조차 쓰지 못했다. 전류제한조치가 전기를 전혀 쓸 수 없는 것으로 알고 형광등조차 사용하지 못해 촛불을 켜고 지내다가 참사를 당한 것이다.

각 언론들은 저마다 촛불참사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대부분 언론들은 촛불화재참사와 관련해 한전과 지자체와 정부의 복지 정책을 비판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일보> 기사(11월 23일자)는 남달랐다. <"정부서 전기료 내주기로 했는데…" 한 발 늦은 '촛불 화재 祖孫' 지원>이라는 기사 제목부터 달랐다. 장례식장을 취재했다는 기자는 참사를 당한 피해자 가족의 딱한 사연을 전하면서도 피해자의 딸이자 6살 난 아들의 엄마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전날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자다 할머니와 함께 화재로 숨진 주모(5)군의 어머니(28)였다. 어머니는 혼전 임신으로 낳은 아들을 부모에게 맡기고 재혼해 자녀 둘을 낳았다.

처참한 죽음 당한 망자들 앞에서 '혼전 임신으로 낳은 아들'이라는 것을 꼭 밝혀야 했을까? 화마 속에서 화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가벼운 심신 장애가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2010년 9월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다. 자활 근로가 조건이었다. 면사무소가 할아버지에게 근로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단 한 차례 근로에 참여했다. 수급 자격을 잃은 작년 6월까지 10개월 동안 할아버지가 받은 생계비는 모두 2만6440원이었다. 할머니가 식당 일로 벌어온 월수입 10만~50만 원도 소주를 사는 데 주로 썼다는 것이 주민들 얘기다.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전기요금을 벌수 있는 기회조차 저버리고 할머니가 벌어온 돈을 소주로 탕진한 것처럼 언급하고 있다. 이웃 사람들의 입을 통해 확인한 결과, 할아버지가 소주에 의지해 생활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가벼운 심신 장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신장애와 더불어 뺑소니 사고로 두 다리가 불편해 일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거기다가 <조선일보>는 한 술 더 뜨고 있다. "이들이 화재에 휩쓸린 것은 고흥군이 전기요금을 내주기로 결정한 다음 날 새벽이었다"라고 밝히면서 "조문객은 관공서 직원 10여 명이 전부였다. 고흥군 사례관리팀 관계자는 '(숨진 주군 집의) 밀린 전기요금을 내주기로 지난 20일 결정했는데…' 하며 허탈해 했다"는 것이다. 고흥군 입장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는 <조선일보>의 논조는 초지일관으로 매듭짓는다.

숨진 주군에게 온정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흥군 주민복지과는 지난 9월 주군 가정을 자활을 유도하는 '사례 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그 일환으로 이달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매달 10만 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또 30만 원 상당의 생필품과 수산물 세트, 책 등이 국비로 지원됐다. 하지만 너무나 늦은 온정이었다.

기사 제목처럼 정부에서 할 만큼 잘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잘 하고 있는 복지정책'을 은근슬쩍 칭찬만 하기가 민망스러웠던 것일까? "너무나 늦은 온정이었다"라고 애처롭게 끝맺음을 한다. 기사에는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이나 촛불화재 참사의 도의적인 책임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정책을 잘 펼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참사가 벌어졌다는 논조다.

거기다가 다른 언론 기사들과는 달리 피해자들이 형광등조차 쓰지 못한 것에 대한 한국전력의 책임은 단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조선일보> 기사는 전기를 차단한 한국전력이나 극빈층에 대한 배려를 소홀한 고흥군의 책임보다는 '혼전 임신으로 낳은 아들을 부모에게 맡기고 재혼해 자녀 둘을 낳은 딸'과 '할머니가 벌어온 돈을 소주를 사는데 주로 쓴 할아버지'의 책임이 더 커 보인다.

에너지요금 긴급지원 공문, 한 달 전에 받고서 이제야...

촛불은 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힌다.
 촛불은 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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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의 복지 정책이나 한전과 고흥군청은 이번 참사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그리고 <조선일보> 기사에서처럼 고흥군은 화재참사 전날에 전기세를 내주겠다고 결정했을까?

"이들이 화재에 휩쓸린 것은 고흥군이 전기요금을 내주기로 결정한 다음 날 새벽이었다"라고 밝히고 있는 <조선일보>와 같은 날짜에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11월 23일자)에 따르면 고흥군의 한 관계자는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세태에서 지원대상도 워낙 많아 규정에 없는 현금을 지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현금을 지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고흥군은 무엇으로 지원하려 했을까? 화재참사 과정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지방정부에는 전기제한 조치를 당한 극빈층에게 50만 원 한도 내에서 체납전기료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흥군은 바로 이 긴급지원금을 지급하려 했던 것일까? 고흥군청에 전화를 걸어 사회복지과 주무관과 통화를 했다.

- 체납전기료를 지원할 수 있는 긴급지원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화재참사를 당한 분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나?
"사례관리사업비로 지급하려 했다. 긴급지원금은 전기체납료만 지원할 수 있지만 사례관리 사업비로 지원하면 전기요금과 더불어 생필품까지 지원해줄 수 있다."
- 돈으로 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밀린 전기요금은 돈으로 직접 지급하지 않고 대납해주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사례관리 사업비를 언제 지원해주려고 했던 것일까? 주무관의 말은 <조선일보> 기사와 동일했다. 화재참사 사고 전날 결정해서 다음 날 지원해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왜 하필이면 사고 전날 결정하고 사고가 발생한 날에 지급하려 했을까? 화재참사 이전에도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고흥군청의 주장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또 다른 우연의 일치가 있다. 고흥군청의 사업과는 다른 한국에너지재단의 긴급지원사업이 있었는데 고흥군이 이 사업을 각 읍면에 알리게 된 시점은 우연찮게도 화재사고가 난 바로 직후였다.

촛불화재 참사는 11월 21일 새벽 3시 50분경에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그날, 고흥군은 각 읍면에 2012년도 전기·가스요금 긴급지원사업을 알리는 공문을 날렸다. 공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너지재단에서 전기·가스요금 미납으로 고통받는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사업을 별첨과 같이 추진 계획이니 읍면에서는 전기 단전·가스 단전의 위기에 처해 있는 가구에서 신속히 신청할 수 있도록 홍보 및 대상자 발굴에 만전을 기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별첨 내용은 "3개월 이상 전기 또는 가스 요금을 미납하여 전기단전, 가스단전 위기에 처해 있는 기초생활수급가구 및 차상위계층"에게 가구당 최대 20만 원 한도 내에서 미납요금을 지원 하겠다는 것이며(한국에너지재단에 따르면 전기요금 지원사업은 2010년 1576가구, 2011년 1349가구를 지원했다) 신청기간은 2012년 10월 22일~2013년 1월 31일(예산 소진 시 조기 종료될 수 있음)로 되어 있다.

공문서에는 분명 신청을 서두르라는 '예산 소진 시 조기 종료될 수 있음'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럼에도 거의 1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각 읍면에 알린 것이다. 전기·가스 요금 미납 가구에 대한 긴급지원사업을 벌이는 한국에너지재단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에게 11월 30일 현재 신청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현재 신청자들은 1000여 명쯤 된다. 지원금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빨리 신청해야 할 것이다."
- 지원금은 얼마나 되나?
"1억8000만 원 정도다."
- 신청하면 바로 지원을 받을 수 있나?
"긴급한 일이기 때문에 심사를 거쳐 며칠 내로 지급된다."


고흥군에서 좀 더 빨리 공문서를 보내 실태 파악하고 미지급한 전기요금을 지원받았으면 어떠했을까? 할머니와 손주는 형광등 대신 화재참사의 원인이 된 촛불을 켜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대기업 전기요금 감면, 3년간 1조5000여억 원... '에너지복지'는 어디로 

11월 30일 고흥 생태모임 느티나무, 고흥군 농민회, 고흥작가회 사람들이 고흥군청 앞에 모여 촛불화재참사를 당한 김씨 할머니와 그 어린 손주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를 열었다.
 11월 30일 고흥 생태모임 느티나무, 고흥군 농민회, 고흥작가회 사람들이 고흥군청 앞에 모여 촛불화재참사를 당한 김씨 할머니와 그 어린 손주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를 열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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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전력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고흥군청이 실태파악 부실로 사고피해자들이 전기가 끊어진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치자, 하지만 전류제한조치를 취한 당사자인 한국전력만큼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국전력은 전기요금 체납으로 인한 전류제한조치 가정에 대해 고흥군에 통보하지 않았다. 또한 한국에너지재단으로부터 얼마간의 지원금을 받아 전류제한 조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어느 기관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너지재단의 전기 및 가스 요금 긴급지원 사업을 후원한 업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전된 채로 생활하다가 참사를 당한 김씨 할머니 가정에 긴급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뒤에서는 전류제한조치를 내리고 앞에서는 후원금으로 생색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11월 28일. 한국 전력은 뒤늦게 전력 공급 제한에 대한 개선 여론에 떠밀려 동절기 저소득층 가구에 에너지를 지원하기 위해 내년 3월까지 전기요금 체납가구의 전기공급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요금 체납 가구의 전류제한기를 모두 철거하고 내년 3월까지 신규 부설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한전은 추위가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4월부터 10월까지는 요금 체납가구에 다시 220W의 전력만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온이 떨어지는 11월부터 2014년 3월까지는 사용량을 660W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희소식이긴 하지만 전류제한기의 용량을 늘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국가차원에서 에너지 빈곤층 가구에게 실제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화재참사를 당한 김씨 할머니 가정은 전기요금 15만여 원도 내지 못하는 극빈층이면서도 매달 얼마간의 생활비를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딸이 셋이 있어 부양의무자기준에 적용되기 때문이다(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된 빈곤층은 2008년 정부 통계 기준 전국적으로 103만 명).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의 성명서를 보면 이번 화재 참사는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사각지대로 내몰린 이들이 겪은 불평등한 재앙"이며 "저소득층일수록 전기요금의 부담이 가계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현 상황이 빚어낸 비극"이라 밝히고 있다.

통계청(2008년 기준)에 따르면 소득 50만 원 미만 가구의 경우 소득 대비 광열비 비율은 평균 38.2%로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광열비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 부담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납 되면 '전류제한조치'로 에너지 인권을 침해당한다.

반면 한전은 대기업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감면해주고 있다. 민주당 노영민 의원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경우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9조8000억 원의 세금을 감면 받았고, 2010년엔 현대제철이 796억 원, 포스코가 636억 원, LG디스플레이가 451억 원의 전기료를 할인받았다.

전기사용 상위 10대 기업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1조4847억 원의 전기요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없는 호혜로운 처사가 가장 잘 나간다는 글로벌 기업들에게만 집중되어 왔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이번 참사는 에너지 복지에 눈감고 있는 정부와 사업자의 합작품'이라며 우리나라의 에너지 복지 실태를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 에너지기본법(현행 에너지법)을 제정하여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게 에너지가 보편적으로 공급되도록 기여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전력산업의 공공성과 보편성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법은 제 4조의 위와 같은 조항 이외에 구체적인 방향이 전혀 마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전력기금 내에서도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지원이 전력효율향상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고효율 조명 기기 보급' 사업의 100억 원으로 전력기금의 총 지출사업비 1조 5856억 원의 0.6% 수준에 불과하여 에너지복지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오늘의 일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한 조손가정의 실수 탓이 아니다. 이는 에너지 복지에 눈감고 있는 정부와 사업자의 합작품이다. 정부는 에너지빈곤층의 에너지 복지를 위해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을 내어 놓아야 한다. 전력난을 우려해 전기 생산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공급되는 전기를 국민 모두가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복지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고흥군의원, '빈곤층 에너지복지' 조례 제정 약속... 이제 시작이다

촛불화재참사 추모제와 대통령 선거를 알리는 고흥군청 광고판
 촛불화재참사 추모제와 대통령 선거를 알리는 고흥군청 광고판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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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고흥민주시민단체 사람들이 군청 앞에 모여 전기요금 15만7740원을 내지 못해 추위에 떨다가 촛불화재로 숨져간 할머니와 어린 외손자의 넋을 추모하는 촛불추모제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빈곤층을 위한 기본적인 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추모제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화재로 참사를 당한 할머니와 어린 손주에게 부끄럽습니다. 촛불을 들고 한 시간 정도 서 있는데도 이렇게 추운데 전기장판도 없이 추위에 떨면서 생활했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그 부끄러움으로 다 함께 촛불을 들고 '밥은 하늘입니다'를 노래 불렀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행사를 마치고 정리하는데 누군가 그랬다. 촛불 추모제를 지켜보던 고흥군의회 의원 중 한 사람이 빈곤층을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해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촛불추모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문득 고흥군청에 설치한 대형 광고판이 잡혀왔다. 대통령선거를 알리는 광고였다. 대통령 후보자들 모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그래왔듯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정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전기요금 15만7740원을 내지 못해 처참하게 죽어 나갈 때 '전기사용 상위 10대 기업 3년간(2008년부터 2010년까지) 1조4847억 원의 전기요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조선일보> 논조로 촛불화재 참사를 바라보는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우리는 하늘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명박 정부를 통해 충분히 실감했지 않은가.


태그:#고흥 촛불화재 참사, #전기요금 15만7천740원, #조선일보 기사, #전기요금 긴급지원사업, #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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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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