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 벼농사는 망쳤지만 가뭄 태풍 병충해에 잘 버틴 볍씨를 건졌다. 내년에는 메뚜기가 뛰어는 벼논을 기대해 본다.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바른 선택이야 말로 '병충해'에 망가진 대한민국을 회복시킬수 있다.
 올해 벼농사는 망쳤지만 가뭄 태풍 병충해에 잘 버틴 볍씨를 건졌다. 내년에는 메뚜기가 뛰어는 벼논을 기대해 본다.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바른 선택이야 말로 '병충해'에 망가진 대한민국을 회복시킬수 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배추 꼬갱이가 차지 않고 있습니다. 속상합니다. 아무리 전남 고흥, 남쪽 지방이라지만 늦어도 12월 하순까지는 김장을 담가야 합니다. 볏짚으로 묶어 놓은 배추 속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속 찰 생각을 않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느린 성품 따라 다른 농가에 비해 보통 한 달에서 20일 정도 늦게 심습니다. 찬바람을 맞을수록 배추가 고소하기 때문입니다.

배추를 너무 늦게 심은 게 아니냐구요? 같은 시기에 심었던 지난해 배추는 이맘때 속 알갱이가 꽉 차 고소한 김장김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올 여름 날씨는 참 요상했습니다. 볼라벤을 비롯해 한꺼번에 세 차례의 태풍이 몰아쳤습니다. 태풍으로 심하게 몸살을 앓던 낙엽송들이 늦가을 그것처럼 누렇게 변하고 산 벚꽃 나무에서 난데없이 꽃이 피고 감나무에서 새순이 돋았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수확을 앞둔 들깨는 태풍에 죄 털리고, 작년에 수십 덩어리를 수확했던 늙은 호박은 열댓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콩 수확도 시원찮아 메주조차 쑤지 못하고 있습니다.

토란 등 몇몇 밭작물을 제외하고 올해 농사는 한마디로 깡그리 망쳤습니다. 가뭄으로 물을 제대로 대지 못해 열 마지기의 천수답 중에 세 마지기도 채 안 되는 벼농사를 지었는데 그마저 병충해에 헌납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라는 '병충해'로 망가졌듯이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농민들에게 '병충해'나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FTA 체결로 불안에 휩싸여 있는 농민들을 물가안정의 희생양으로 삼았고, 사료값 비료값 등 농자재 가격은 치솟았는데 쌀 직불금 목표가격과 고정 직불금은 2005년 이후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다방에서 보조금이나 타먹는 농민'(2010년 12월 13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이 한미FTA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수산업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 "농업의 생산성은 많이 떨어진다"며 "다방농민이라는 말이 있다. (농민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답했다)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병충해로 망친 올해 농사... 대한민국 꼴도 똑같네 

가뭄과 태풍, 거기다가 병충해로 망가진 벼논. 푸르게 보이는 곳은 병충해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부분. 하지만 너무 늦어 알곡이 맺히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 벼농사에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병충해를 견딘 녀석들을 낫으로 수확하여 겨우 볍씨를 얻을수 있었다.
 가뭄과 태풍, 거기다가 병충해로 망가진 벼논. 푸르게 보이는 곳은 병충해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부분. 하지만 너무 늦어 알곡이 맺히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 벼농사에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병충해를 견딘 녀석들을 낫으로 수확하여 겨우 볍씨를 얻을수 있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낫으로 벤 나락을 집 마당에 옮겨 놓고 훌태로 일일이 털었다.
 낫으로 벤 나락을 집 마당에 옮겨 놓고 훌태로 일일이 털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그 책임은 이명박 정부를 세운 우리 농민들에게도 있습니다. 올해 제 농사가 그랬습니다. 벼농사를 망친 원인에는 병충해 탓이 가장 크지만 모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제 탓도 있습니다. 하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희망이듯이 내년 농사에 희망이 있습니다. 병충해와 아무리 가뭄이 극심하고 무시무시한 태풍이 몰아쳐도 오롯하게 살아남은 종자가 있었으니까요.

병충해로 전멸하다시피한 벼논에서 살아남은 녀석들이 있습니다. 애초에 가뭄과 잘못 선택한 모판 때문에 수십 개의 모판이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하여 고육지책으로 육묘장에서 비싼 돈 들여 어린 벼를 구입해 모내기를 했습니다.

남들보다 한 달 늦게 육묘장 모를 심었는데 모내기 한 지 보름도 채 안 돼 벼들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육묘장에서 반강제로 자란 부실한 녀석들이었기에 그만 병충해에 된통 당했던 것입니다. '농약을 칠 바에는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모내기하기 전에 어린 모에 농약을 쳐야 한다는 우리 동네 농민회원의 충고를 깡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용케 살아 남은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녀석들은 제가 소독약 없이 냉온탕 법으로 볍씨를 틔워 논 못자리를 만들어 키웠던 녀석들이었습니다. 가뭄과 잘못 쓴 모판에서도 살아남았던 녀석들은 그 극심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그만큼 병충해에 강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농약을 필요로 하는 육묘장에서 키운 녀석들과는 달랐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았음에도 끄떡없이 잘 자랐던 것입니다. 내년 벼농사의 튼실한 종자가 될 것입니다.

그 녀석들과 함께 내년 벼농사에 도움이 되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병충해로 고사 직전, 다시 뿌리를 박고 푸른 벼잎을 틔운 녀석들입니다. 너무 시기가 늦어 알곡을 맺지 못했지만 녀석들은 내년 벼 농사에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올해 농사는 인건비는 애시 당초 포기하고, 가뭄에 둠벙 파놓겠다고 굴삭기까지 동원했고, 거기다가 농기계 임대비에 종자, 우렁이, 거름 등에 들어간 비용을 따지자면 완전 파산을 한 셈이지요.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병충해에서도 살아남은 든든한 종자며 농약의 유혹을 뿌리쳐 땅을 살렸고 또한 인건비 없이 몸 굴릴 만큼 제 몸을 살렸으니까요.

농사 망쳐놓고 뭔 정신없는 소리냐구요? 그렇습니다. 좀더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분명 정신없는 소리지요. 내친 김에 정신없는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마누라가 열 좀 받겠지만 망친 농사만큼 우리 식구가 덜 먹으면 될 것입니다.

나를 살리고 우리 가족을 살리려면 농약을 쳐서 좀 더 많이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게 먹더라도 땅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농약을 안 친 만큼 땅에 힘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병충해 또한 덜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만큼 질 좋은 먹거리를 먹게 될 것이니까요.

황폐한 '땅'을 살리는 대통령이 민주주의도 살린다 

훌태로 나락을 털면서 알곡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훌태로 나락을 털면서 알곡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내가 농사를 짓는 논은 모두 네 다랑이, 2000평 정도. 천수답인 관계로 가뭄 때문에 세 다랑이를 포기하고 세 마지기가 채 안되는 한 다랭이만 농사 지었다. 그마저 병충해에 헌납하고 건진 것이 40킬로그램 한 가마. 올해 벼 농사의 전부다.
 내가 농사를 짓는 논은 모두 네 다랑이, 2000평 정도. 천수답인 관계로 가뭄 때문에 세 다랑이를 포기하고 세 마지기가 채 안되는 한 다랭이만 농사 지었다. 그마저 병충해에 헌납하고 건진 것이 40킬로그램 한 가마. 올해 벼 농사의 전부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새로운 시대를 좌지우지 할 대통령을 뽑는 일 또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를 통해 상식 이하의 시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저는 죽어가는 땅을, 자연환경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는 대통령 후보야말로 황폐한 민주주의를 살릴수 있다고 봅니다.

자연환경이 살아나면 사람살이도 살아나고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환경과 사람살이는 한 몸입니다. 자연환경이 죽어가면 사람살이도 죽어갑니다. 안보 따위가 위협하고 돈과 권력이 판칩니다. 민주주의가 죽어갑니다.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자본주의만 남게 됩니다.

자본이 판치는 풍토에서는 어떤 일을 해도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입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돈벌이를 하는 것이 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궁긍적으로 자연환경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환경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은 거짓입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입니다.

제가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이번 대통령 후보들이 친환경농업에 관해 어떤 공약을 내놓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친환경 공공급식 확대, 2020년까지 친환경 농업 비중 20% 확대'하겠고 합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의 친환경 농업 정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숱한 '병충해'를 겪는 과정에서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 고난을 겪은 만큼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은 새로운 시대를 좌지우지하게 될 투표에 달려 있습니다.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병충해 심한 논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산전수전 다 겪은 모를 심는 마음으로 투표할 것입니다. 농약의 유혹을 물리치고 친환경 종자를 선택하듯이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 민주화를 뒷걸음질 치게 하는 '병충해'를 이겨낼 만한 대통령을 선택할 것입니다. 설령 죽어가는 이 땅과 사람살이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는 대통령을 선택할 것입니다.


태그:#망친 농사, #이명박 정부와 병충해, #절망속에 건진 볍씨, #친환경 농업 정책, #친환경 종자 선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