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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석탄화력발전소 반대 집회 다음날 고흥 생태모임 '느티나무' 사람들이 우리집에 모여 두부 만들기를 했습니다.
 고흥석탄화력발전소 반대 집회 다음날 고흥 생태모임 '느티나무' 사람들이 우리집에 모여 두부 만들기를 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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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화력발전소 관련 기사에 코를 박고 있는데 김부일 성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물 좀 끊여 놔야 겠어! 콩을 갈아오면 곧바로 뜨거운 물에 넣어야 한다네."
"물? 물유? 아, 그류..." 

아내에게 구원요청을 하려고 컴퓨터를 등지고 다락방 문을 빼꼼 열고 거실을 내려다 봤더니 일손 빠른 아내가 걱정 말라며 손짓합니다.

"나도 연락 받았어, 지금 가마솥에 불 지피려고 준비하고 있어."

지난 22일은 녹색평론 독자모임을 겸하고 있는 고흥생태모임 '느티나무'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입니다. 매달 한 차례씩 모임을 갖고 있는데 저는 참석을 못했지만 지난달에는 전교조 사무실에서 생태 비누를 만들었고 이 번 달에는 우리 집에서 모여 콩두부를 만들어 먹기로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오마이뉴스>에 원고를 입력하는데 인터넷이 심하게 버벅거렸습니다. 기사를 올리고 사진을 입력하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바닷가 오지라서 인터넷 선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스마트 폰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폰을 컴퓨터에 연결해 인터넷에 접속 하고 있는데 오후가 되면 그 속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사람들이 몰려올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시기를 놓치게 되면 그만큼 현장성이 떨어지는 기사이기에 마음이 조급합니다. 사진 한 장 올려놓고 5분 이상을 기다려도 영 입력이 되지 않습니다.

"어이 씨, 이 놈의 컴퓨터, 왜 이러는 겨. 바뻐 죽겠구먼."

컴퓨터가 뭔 죄 있다고 투덜투덜 혼잣말을 쏘아 붙이는데 집 마당 안으로 트럭 엔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부일이 성님이었습니다.

"어이~ 나 왔네!"
"잠깐 만유."

사진입력을 뒤로 미루고 밖으로 나와 보니 최한선·임진희 부부의 자동차도 뒤따라 들어오고 있습니다. 헌데 부일이 성님의 트럭에는 콩물이 아니라 물에 담긴 멀쩡한 콩이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부일 성님이 농사지은 검정콩입니다. 가톨릭 농민회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오고 있는 부일 성님은 고흥의 생태운동을 이끌어 오고 있는 고흥 토박이 농사꾼입니다. 

부두를 만들기 위해 가져온 김부일 성님이 농사 지은 검정콩.
 부두를 만들기 위해 가져온 김부일 성님이 농사 지은 검정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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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에서 못 갈아 주겠다네, 콩이 덜 불어서 갈아 줄 수 없다네."
"왜요?"
"덜 불은 콩을 넣고 돌리면 기계가 고장 난다고 하더라구."

그렇다고 가정용 믹서기로 그 많은 콩을 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감했습니다. 구하기 힘든 맷돌 얘기까지 꺼내고 있는데 때마침 박철순 회원 집에 콩 가는 기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박 선생이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기계를 급히 공수해왔습니다. 그 사이에 회원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그 기계로 콩을 갈았지만 입자가 곱지 못했습니다. 산 너머 산이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몇몇 회원들이 그걸 가지고 면소재지로 나가 방앗간에 가서 곱게 갈아왔습니다. 그 사이 몇몇 회원들은 집 앞 바다에 나가 두부 만들 때 쓰이는 응고제, 간수로 쓰기 위해 바닷물을 떠 왔습니다.

박철순 선생 집에서 급 공수 해온 콩 가는 기계. 입자가 곱지 못해 이것을 다시 방앗간에 가서 갈아왔습니다.
 박철순 선생 집에서 급 공수 해온 콩 가는 기계. 입자가 곱지 못해 이것을 다시 방앗간에 가서 갈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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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갈아온 콩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입니다.
 곱게 갈아온 콩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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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 만드는 솜씨가 좋다는 유 선생이 가마솥에 콩물을 넣고 두부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을 무렵 느티나무 회원들은 작은 도서관에 둘러 앉았습니다. 이전에는 녹색평론에 실린 글을 발췌해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오늘은 두부 만드는 데 그 의미를 두고 새로 들어온 신입회원과 서로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고흥에서 유일한 생태 모임인 '느티나무'는 그동안 고흥만 철새 보호 운동을 비롯해 고흥핵발전소 건설을 물리치는데 힘을 보탰고 지금은 석탄 화력발전소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 날 있었던 반대 집회에도 거의 모든 회원이 동참했습니다.

느티나무 회장을 맡고 있는 김부일 성님은 고흥화력발전소 반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공동위원장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복현 회원은 '대책위'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사비까지 털어가며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강을 볼 때마다 큰 힘을 보태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느티나무 회원들의 직업은 다양합니다.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어민을 비롯해 몇몇 전교조 선생님들과 소록도 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회원, 저처럼 고흥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 여럿 농사꾼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가입한 회원은 주유소 일을 맡아 하고 있다 합니다.

석탄 화력발전소 반대 운동에 관한 간략한 얘기를 나누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다들 두부 만들기에 마음이 쏠려 있었으니까요. 보통 때 같으면 생태적인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누곤 했지만 직접 두부를 만들어 먹는 일이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생태적인 삶, 그 자체가 아니겠습니까. 회원들은 부두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가마솥이 걸려 있는 집 뒤로 몰려 갔습니다.

가마솥에 끓인 콩물을 천에 걸려 내고 있습니다.
 가마솥에 끓인 콩물을 천에 걸려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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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물을 걸러내고 남게 되는 것이 바로 콩비지입니다.
 콩물을 걸러내고 남게 되는 것이 바로 콩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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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만들기를 주도 하고 있는 유 선생이 가마솥에 끊인 콩물을 천에 걸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멀건 콩물이 천에서 걸러 나왔습니다. '저 게 어떻게 두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원들의 신기한 표정이 콩물에 쏠렸습니다. 천으로 걸러 낸 콩물을 다시 가마솥에 붓고 자근자근 불을 지펴가며 바다물 간수를 넣어 저었습니다.  

그 사이에 아내와 몇몇 회원들은 도화면 발포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회원이 아침에 잡았다는 싱싱한 전어로 회를 준비하고 돼지고기 수육을 준비했습니다.

이날 두부 만들기 모임에는 비회원들도 참석했습니다(느티나무 모임은 그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지난 봄 고흥에 정착해 헌책 도서관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최종규(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한 그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우리말과 헌책에 관한 책을 비롯, 많은 책들을 펴냈습니다)씨가 큰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찾아왔습니다.

거기다가 느티나무 회원인 이경준, 명인 부부(직장을 그만두고 두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지난 겨울 고흥에 빈 집을 얻어 생활하면서 정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와 인터넷 카페에서 만났다는 부산 사람 넷이 합세했습니다. 거기에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까지, 집 안팎은 잔치 날처럼 시끌벅적 했습니다.

마지막 단계로 간수를 넣고 2차로 끓린 콩물을 두부판에 천을 올려놓고 받아 두부처럼 응고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하지만 콩물이 응고되지 않아 콩 두유만 나왔습니다.
 마지막 단계로 간수를 넣고 2차로 끓린 콩물을 두부판에 천을 올려놓고 받아 두부처럼 응고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하지만 콩물이 응고되지 않아 콩 두유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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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 회,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와 고흥 막걸리를 준비해 놓고 두부를 기다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눈이 빠지게 두부를 기다렸는데 두부 대신 검은콩 두유가 나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을 너무 많이 붜서 그런 거 같은디..."
"간수가 안 맞아서 그런 거 아녀요?"
"간수를 좀 더 넣어 보랑께."
"불을 더 지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두부를 어떻게 말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두부 모판에 천을 깔고 콩물이 굳어지기를 기다렸지만 소용없습니다. 두부 모양은 나오지 않고 두부 모판 밑에 받쳐 놓은 커다란 양푼에 콩물만 쏙쏙 빠져 나갔습니다. 말 그대로 질 좋은 콩 두유가 생산되어 나왔던 것이지요.

두부 대신 콩두유는 막걸리처럼 마시고 콩비지는 김치와 함께 곁들여 먹으니 그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먹는데 정신이 팔려 전어회며 돼지고기 수육 김치등을 사진기에 담아 놓지 못했네요.
 두부 대신 콩두유는 막걸리처럼 마시고 콩비지는 김치와 함께 곁들여 먹으니 그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먹는데 정신이 팔려 전어회며 돼지고기 수육 김치등을 사진기에 담아 놓지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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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두부는 만들어 내지 못했지만 고기잡이를 하는 회원이 가지고 온 전어회와 돼지 고기 수육. 거기에 막걸리 까지 곁들여 푸짐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비록 두부는 만들어 내지 못했지만 고기잡이를 하는 회원이 가지고 온 전어회와 돼지 고기 수육. 거기에 막걸리 까지 곁들여 푸짐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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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한 두부를 기다리며 입맛만 쩝쩝 다시다가 콩 두유를 막걸리 잔에 부어 마시면서 다들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어디 그거 뿐이겠습니까. 두부 대신 건진 게 또 하나 있었습니다. 콩물로 빠져 나가고 남은 콩비지. 고소한 콩비지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부두 대신 김치를 곁드린 콩비지를 안주삼아 마시는 막걸리 맛은 또 어떻고요.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기분으로 먹는다고 하질 않습니까?

최한선 선생은 막걸리를 마실 생각은 않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막걸리 잔을 채웠습니다.

"얼릉 마셔, 얼릉."
"아따 성님은 마시지 않고 어째 술잔만 채워주는 겨."
"다 이유가 있다니께."
"뭔 이유가?"
"막걸리 통을 비워야 거기다가 콩 두유를 담아가지."

그 덕분에 다들 집으로 돌아갈 때 두부 대신 말끔히 비운 막걸리 통에 고소한 검은콩 두유를 담아갈 수 있었습니다.

막걸리 통이 비워져 갈수록 어둠이 짙어졌습니다. 하늘에는 반달이 맑게 떠올랐습니다. 고흥을 위협하는 석탄 화력발전소는 잠시 접어두고 다들 노래 한 자락씩 뽑았습니다. 강복현 선생은 얼마 전 펴낸 <모두가 기적 같은 일>이라는 제 책에 대한 늦은 출판기념회를 대신한다며 먼저 명인 회원에게 반강제로 기타를 떠맡겼습니다.

한때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이기도 했던 명인씨의 자작곡 '붉은 거북이'라는 듣기 좋은 노래를 시작으로 저마다 한곡씩 뽑아내 흥겨운 잔치 분위기를 냈습니다. 두부 맛은 못 봤지만 사람 사는 맛을 보았던 날이었습니다.
 한때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이기도 했던 명인씨의 자작곡 '붉은 거북이'라는 듣기 좋은 노래를 시작으로 저마다 한곡씩 뽑아내 흥겨운 잔치 분위기를 냈습니다. 두부 맛은 못 봤지만 사람 사는 맛을 보았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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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였다는 명인 회원은 자작곡인 '붉은 거북이'이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습니다. 가사도 곡도 좋았습니다. 가수 목소리도 일품인 참 좋은 노래였습니다. 그렇게 명인 회원의 노래를 시작으로 저만치 맑게 뜬 반달을 조명 삼아 다들 기분 좋게 한 곡씩 뽑아냈습니다.

어려서부터 객지 생활을 하면서 노동현장에서 뼈가 굵었다는 김동관 성님은 마이크도 없는데 '마이크'를 놓지 않습니다. 덩실덩실 춤까지 추어가며 흥겹게 노래 가락을 뽑아내고 나면 끝말을 덧붙입니다.

"내가 뭐랬어! 메들리라고 했지! 메들리!"

그렇게 한번 노래를 시작하면 서너 곡을 연속으로 뽑아냅니다. 박노해 시인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동관이 성님. 노동운동을 하면서 불렀을 법한 그 많은 노래들의 가사를 어떻게 다 일일이 외우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동관이 성님의 노래는 어께 춤이 절로 나게 합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성님이 견뎌왔던 아픔 세월과 외로움이 묻어 있습니다. 마복산 자락에 정착해 생태 마을을 꿈꾸다가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서 홀로 살아가면서 농사일과 1톤 짜리 작은 배를 끌고 다니며 고기잡이에 재미를 붙이고 있습니다. 요즘은 전어 그물을 놓고 있다고 합니다.

뱃일이 처음이라서 그물을 놓게 되면 남들은 수십 마리의 전어를 잡는데 열 댓 마리 정도가 고작이랍니다. 그럼에도 철부지 아이처럼 싱글벙글, 흡족해 합니다. 지난  여름에는 집에서 기르던 돼지를 잡아 회원들을 섬으로 불러들여 진탕 먹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섬에서 전어 축제를 열자고 합니다. 싸가지 없는 인간들을 만나면 버럭 화를 내며 미워하기도 하지만 동관이 성님처럼 회원들 모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무언가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자락 하나라도 말입니다.

회원들의 흥겨운 노래 가락에는 삶의 쉼표가 찍혀 있습니다. 어제는 고흥 석탄 화력발전소 반대에 핏발 선 목소리를 높였지만 오늘은 여유가 있습니다. 그 여유로움으로 자신들의 일상을 쪼개 아름다운 고흥의 바다를 감싸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틈에 끼어 술잔을 기우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원고 올리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회원들과 어울려 술 마시다가 까무러기게 잠 들어 이른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문득, 부두 만들기는 실패했지만 다들 고단한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고 한자리에 모여 사람 사는 맛을 보았던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 사는 맛이야말로 각박한 세상을 좀 더 맛나게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이 않을까 싶습니다.


태그:#고흥 생태모임 '느티나무', #두부 만들기, #두부 응고제 간수, #콩 두유, #사람 사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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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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