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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심벨 신전의 전경, 왼쪽이 람세스2세 대신전, 오른쪽이 네페르타리 소신전이다. 원래의 위치에서 수백만 개의 조각으로 잘라져 현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아부심벨 신전의 전경, 왼쪽이 람세스2세 대신전, 오른쪽이 네페르타리 소신전이다. 원래의 위치에서 수백만 개의 조각으로 잘라져 현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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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 남쪽 300km 지점에 있는 아부심벨 신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1월 16일 오후 9시 반 카이로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오후 11시경에서야 아스완에 도착했다. 일행 중 한 분의 짐이 도착하지 않아 마냥 기다리는 바람에 호텔에 도착하니 자정을 넘겨 새벽 1시다.

이제 2시간만 눈을 붙이고 아부심벨로 길을 떠나야 한다. 아부심벨은 아스완에서 버스로 4시간 이상 사막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그리고 이 길은 경찰 차량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십수 년 전 관광객에 대한 테러 사건이 있은 이후 이집트 당국이 만들어 놓은 관광절차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새벽 4시 아스완 경찰 당국의 콘보이 차량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이동해 다른 차량과 함께 아부심벨로 향했다. 몇 시간을 가다 보니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막 저쪽에서 떠오르는 태양, 한 마디로 장관이다. 언제나 사막에서의 일출은 아름답다. 바다에서 보는 일출과는 또 다른 태양이다. 2010년 여름 실크로드 여행을 하면서 돈황에서 우루무치를 가는 도중에서 들른 투무타크 사막의 일출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일생일대에 가장 장엄한 일출이라 생각했다.

아부심벨은 신왕국 제19왕조의 람세스2세가 세운 신전으로 이곳에는 두 개의 신전이 암굴 속에 있다. 하나는 자신의 대신전과 왕비 네페르타리의 소신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200년 전의 작품이다. 아부심벨은 이집트 나일강 최상류에 위치한다. 수단 국경에 있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 낫세르 호수에 면해 있는 이곳은 과거 누비아의 심장부였다. 신왕국의 수도였던 멤피스에서 보면 1000km 이상 떨어진 곳이다.

람세스 2세는 이곳에 이렇게 거대한 신전을 만들었을까

카데시 평화협정문,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카데시 평화협정문,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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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는 왜 이곳에 이런 거대한 신전을 만들었을까. 사가들은 대체로 누비아 땅에 사는 이민족에 대한 경고로 해석한다.

카데시 전투, 이 부조 그림이 나일유적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카데시 전투, 이 부조 그림이 나일유적 곳곳에서 볼 수 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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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람세스 2세는 중동의 맹주 힛타이트와 일대 격전을 치렀고(그것이 바로 람세스 2세와 관련하여 이곳저곳에 나오는 카데시 전투다), 그 후 평화관계를 수립하였다(람세스 2세는 힛타이트의 하투실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고 하는데, 혹자는 이것이 인류최초의 국가 간 평화협정이라고도 한다. 그 내용은 현재 터키 이스탄불의 고고학박물관에 있는 점토판 평화협정문으로 알 수 있다).

그의 치세에는 땅을 넓혔고 문화는 번성했다. 그런 상황에서 남쪽에서 간간히 침입해 오는 이민족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내릴 필요가 있었다. 신전 앞에서 보는 람세스 2세와 신들의 거상을 보노라면 이민족들은 그것만으로도 전의를 상실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위대한 람세스 2세의 작품은 오래 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특별히 관리하는 사람 없이 3000년을 보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유적이 파괴되지 않은 것은 사막 기후와 그곳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19세기에 들어 이 신전은 세인들의 눈에 들어온다. 그 당시 세인들의 눈에 이 신전의 모습은 어땠을까.

아부심벨의 신전에 닥친 위기, 신전 보호 방안은?

이쯤해서 데이비드 로버트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 보자. 그는 영국의 풍경화가였다. 어린 시절 가난해서 특별히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배운 그림 실력으로 마침내 일급 화가가 되었다. 그는 1840년대 이집트에 온다. 그래서 곳곳에 있는 고대 이집트 유적을 생생한 필치로 정확하게 묘사한다. 사진술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마치 사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9세기 이집트의 대표적 유적지의 모습은 지금 데이비드 로버트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아부심벨 신전
 아부심벨 신전
ⓒ 데이비드 로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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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국길에 카이로 공항 선물가게에서 그의 그림집을 구입했다. 150년 전의 이집트 유적이 데이비드 로버트의 섬세한 붓놀림으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이렇게 해서 내 연구실에는 지금 아부심벨 신전 그림이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1840년대 아부심벨 신전은 바로 나일강변에 있으면서 거대한 모래산이 대신전과 소신전 사이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신전 내부도 모래가 차서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지만 아부심벨의 신전은 1960년대 초 아스완 하이댐의 공사로 위기를 맞이한다. 만일 이 공사가 완공되어 담수호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 나일강변에 위치한 신전도 무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가 대책을 세웠다. 신전을 보호하는 방안이 무엇이었을까.

원래는 신전을 원래의 장소에 그대로 두고 그 주변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방어막을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포기하고 하나하나 해체되어 원래 유적지보다 63m 높은 북서쪽 210m 떨어진 곳에 인공의 언덕을 만들어 다시 조합하기로 결정됐다.

그 작업은 1963년에 시작되어 1972년에 끝났다. 세계문화유적의 보호사에서 획기적 사건이었다. 이 해체복원 작업은 대단한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지식 없이 아부심벨 신전을 가면 원래의 유적지로 알고 올 것이다. 그만큼 정교한 기술에 의해 해체복원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조각들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20m 넘는 4개의 대형 조각상, 신전 입구를 압도하다

아부심벨 신전 중 람세스2세의 대신전
 아부심벨 신전 중 람세스2세의 대신전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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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람세스 2세의 대신전으로 가보자. 신전 전면을 보면 높이 20m가 넘는 4개의 대형 조각상이 신전 입구를 압도하고 있다.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왼쪽에서 두 번째는 많이 손상되어 얼굴을 알아 볼 수 없다. 아마도 람세스 2세 치세 기간 중에 있었던 지진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 개의 상을 보면 람세스 2세가 상하 이집트의 왕관을 쓰고 있고, 이마에 우라에우스라는 뱀의 형상이 있고, 가짜 수염을 단 모습으로 옥좌에 앉아 있다. 신전 내부로 들어가면 큰 홀이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8개의 석상이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모두 오시리스상으로 나타나는 람세스 2세다.

벽면에는 람세스 2세의 최대의 치적인 카데시 전투가 묘사되어 있다.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마지막에 지성소가 있는데 여기에는 4명의 좌상이 보인다. 3명은 상하 이집트의 대표신들인, 테베의 지배자 아몬-라, 헬리오폴리스(지금의 카이로 근처, 하이집트의 고대도시)의 지배자 라-호라크티, 멤피스의 지배자 프타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파라오 자신인 람세스 2세다.

이곳 지성소는 일 년 두 번(2월 20일과 10월 20일) 태양 광선이 신전을 가로질러 미친다. 그러나 4조각상 하나는 태양이 비추질 못한다. 프타의 조각상이다. 프타는 장인의 주인이요 말씀에 의한 창조신이기 때문에 빛 속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부심벨 신전 중 네페르타리 소신전
 아부심벨 신전 중 네페르타리 소신전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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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페르타리의 소신전으로 가보자. 대신전에서 북쪽으로 백여 미터 가면 람세스 2세가 가장 사랑한 아내 네페르타리를 위해 만든 신전을 볼 수 있다. 절벽에 붙어 있는 대형 조각상 6개가 퍽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6개 중 4개는 람세스 2세의 화신이고, 2개는 왕비의 화신이라고 한다. 왕비의 조각상은 두 개의 높은 깃과 뿔이 나있고 그 사이에 태양이 보인다. 이것은 그녀가 여신 하토르의 화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전 내부로 들어가면 대신전에 비하면 간단한 구조인데 사각기둥과 천정 등에 모두 다양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신전 입구에서 람세스 2세는 하토르에게 꽃을 바치고 있고, 왕비는 이시스에게 꽃을 바친다. 기둥에도 신들에게 꽃을 바치는 부조가 많다. 전반적으로 위압적인 분위기보다는 우아함으로 가득 차 있다.


태그:#세계문명기행, #나일문명기행, #아부심벨, #네페르타리,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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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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