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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0여 년간 세계 여러 곳을 다녀 보았다. 인권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 공부의 전제로서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다. 도대체 인간은 왜 문화와 문명에 따라 달리 살아 왔는가, 그럼에도 무엇인가 유사성은 발견되지 않는가 등등의 의문을 푸는 방법으로 여행만한 것이 없었다.

이런 의문을 품고 여행을 한지라 편한 여행은 될 수 없었다. 사전에 공부를 해야 했고, 돌아 온 다음에는 무엇인가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여행은 고역이 되리라. 하지만 나는 이런 여행을 행복 중의 행복으로 여겨왔다. 앞으로 힘이 닿는 한 이런 여행은 계속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연재할 글들은 나의 문명기행을 정리한 것이다. 거창하게 세계문명기행기라 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저 박아무개 교수가 직접 다녀 본 곳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정도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관심 있는 독자의 일독을 기대한다. - 기자 말

왜, 문명기행을 하는가

10여 년 전 한 가지 꿈을 꾸었다. 세계문명 발상지를 돌아보겠다는 꿈이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면 그 꿈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보다 근원적으로 하고 싶은 나의 지적 열망이었다. 천 년 전, 이천 년 전, 아니 그 이전의 인간들도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며 오늘날까지 살아 왔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솟구쳐 올랐다. 법학을 하는 내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 것은 법학이 지극히 현재의 상황에만 매몰되어 있어 근본으로서의 학문에 못 미친다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법학의 뿌리를 알고 싶었다. 왜 사람들은 이런 법을 만들어야만 했을까, 과거의 사람들도 이런 규범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런 규범은 역사와 공간을 초월하여 보편성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하나의 방법이 문명 기행이었다. 인류가 이룩한 찬란한 문명을 눈으로 확인하면 보편적 인간의 모습이 내 머리에 잡혀 내가 공부하는 법학에도 도움을 주리라는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 몇 년간 주요 문명을 관찰하였다. 2006년 이후에만 앙코르 와트 문명기행을 비롯하여, 페르시아 고대문명기행, 실크로드 문명기행, 르네상스 문명기행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문명기행은 내게 큰 안목을 가져다주었다. 세계문명이 점점 내 머리 속에서 정리되어 하나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명기행의 꽃으로 이야기되는 나일문명을 하루라도 빨리 탐험하고 싶은 욕망이 점점 올라 왔다. 2011년 1월 나는 그 꿈을 실현하였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드디어 9박 10일의 나일투어를 감행한 것이다.

문명기행 준비를 도운 몇 권의 책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C.W. 세람 저/안경숙 역) 겉그림.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C.W. 세람 저/안경숙 역) 겉그림.
ⓒ 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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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문명 기행은 사실 오래 전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나는 이 여행을 위해 일찌감치 관련 서적을 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책은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C.W.세람 지음, 안경숙 옮김)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내게 문명기행의 동기를 부여하신 최영도 변호사님의 추천에 의해 보게 되었다. 최 변호사님은 법조계에서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인데(국가인권위원장 역임), 다양한 인문학적 취미를 가지신 분이다. 그 분은 과거 세계 곳곳을 누비며 문명기행을 하셨으며 몇 권의 책을 내시기도 했다. 내겐 언제나 롤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분이다.

최 변호사님께서 추천하신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고학 발굴을 실감나게 묘사한 책인데, 저자의 조국인 독일에서는 대표적인 인문학 서적이라고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하워드 카터가 1922년 투탕가문의 묘를 발견하는 감동적 순간을 접했다. 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한 샹폴리옹이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그 난공불락의 상형문자를 해독하였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의 해독에 의해 이제 현대인들은 조금만 공부하면 상형문자를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왼쪽부터 책 <파라오의 비밀문자 :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브리지트 맥더모트 저/권영진 역/예경), <이집트 신화>(베로니카 이온스 저/심재훈 역/범우사), <로마제국을 가다 1, 2>(최정동 저/한길사)
 왼쪽부터 책 <파라오의 비밀문자 :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브리지트 맥더모트 저/권영진 역/예경), <이집트 신화>(베로니카 이온스 저/심재훈 역/범우사), <로마제국을 가다 1, 2>(최정동 저/한길사)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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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문자에 대한 나의 관심은 마침 시중에 번역되어 나온 <파라오의 비밀문자>(브리지트 맥더모트 지음, 권영진 옮김)을 보면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상형문자의 베일이 점점 벗겨지면서 나일문명이 내 손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일문명 기행에서 진짜 필요한 지식은 나일신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대 나일문명에서 신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나일문명 기행을 한다는 것은 내 눈에 그 찬란한 고대문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음을 의미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문명기행에서 하나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배경지식을 얻기 위해 <이집트 신화>(베로니카 이온스 지음, 심재훈 옮김)을 구입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집트 신화는 서양 신화의 모체임을 들어났다. 어쩌면 중동지역에서 발생한 유일신앙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뿌리도 바로 나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독서를 했다 해서 나일문명의 전모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현지에 직접 가보지 않고 책상 앞에서 문명기행을 하는 것의 한계이리라.

이런 즈음 2008년 <한겨레> 신문의 최정동 기자가 쓴 <로마제국을 가다>라는 책(상/하)를 접했다. 최 기자는 오래 전부터 로마제국의 유적을 찾아 여행에 나서 두 권의 책을 썼다. 최 기자는 책 하권에서 나일투어를 다루었는데 이것이 대체로 내가 가고자 하는 유적지와 일치하였다. 기자다운 문체로 나일문명의 이모저모를 다루어 읽는 이의 이해를 도왔다. 이런 준비 끝에 나의 나일문명 기행의 그림은 그려졌다.

9박 10일의 '나일문명 기행' 여정 스케치

나일문명 기행의 여정은 9박 10일의 일정이었다. 시간적 제한만 없었다면 자유여행을 하면서 나일문명 유적을 충분히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방학 중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어 열흘 이상의 시간을 내기는 무리였다. 그러니 품이 많이 드는 자유여행은 포기하고 여행사 프로그램을 물색하였다. 우선 믿을만한 여행사를 선택하고 프로그램 중 내 바람을 그런대로 충족할 수 있는 상품을 골랐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한 여행사의 9박 10일 나일문명 기행을 찾아냈다.

2011년 1월 15일 일행은 인천을 떠나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를 경유하여 카이로에 도착했다. 그 다음 날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카이로 구시가지에 있는  곱트교 예배당을 본 다음 카이로 국립박물관을 둘러보았다. 그날 밤 비행기로 아스완으로 이동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300킬로미터 떨어진 아부심벨로 가서 람세스 2세의 대신전과 네페르타리 소신전을 방문했다. 아스완으로 돌아와 시내의 유적지를 돈 다음 본격적으로 이번 여행의 꽃인 나일 크루즈를 시작했다. 선상에서 휴식을 취하는 한편, 카이로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나일강변에 위치한 유적지를 하나하나 탐방했다.

콤옴보 신전과, 에드푸의 신전을 본 다음 여행의 절정은 룩소르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에서 우리일행은 나일문명의 최고의 신전인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에서 문명기행의 최고의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룩소르 서안의 왕들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을 가보았다. 1월 15일 일행은 룩소르를 떠나 카이로를 경유하여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피곤한 몸이었지만 가보지 않을 수 곳이었다. 이것으로 사실상 나일문명 기행은 끝이 났다. 그런데 이 여행은 덤으로 사막투어의 재미를 선사했다.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킬로미터를 가다 보면 나타나는 백사막, 바하리야, 나는 이곳 사막에서 별을 헤면서 하루 밤을 지냈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태그:#나일문명기행, #세계문명기행, #이집트, #인류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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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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