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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기가 좋은 옆 논은 이미 벼들이 푸른게 자라 있는데 우리 논은 가뭄의 진통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25일 모내기를 할수 있었습니다.
 물대기가 좋은 옆 논은 이미 벼들이 푸른게 자라 있는데 우리 논은 가뭄의 진통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25일 모내기를 할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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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극심한 가뭄으로 천수답에 물을 잡지 못해 포기하려던 모내기를 구사일생으로 마쳤습니다. 지난 5월 1일. 볍씨를 물에 담군지 거의 두 달 만에서야 모내기를 한 셈입니다. 가뭄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 해 양식만큼의 모내기를 하면서 인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두 배로, 2000평 분량의 볍씨를 준비했는데 파종할 무렵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잘 나가는가 싶던 통합진보당에서 비례 대표 경선 부정선거가 터져 나왔습니다. 고흥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 꼬박꼬박 당비를 내고 당 대표를 뽑는 선거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민주노동당이야말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믿었건만 부정선거라니 촌부로서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올해는 찹쌀농사도 함께 짓기 위해 마복산에 사는 이승헌씨네 집에서 나락을 얻어와 인상이와 함께 손으로 일일이 훌텄습니다.
 올해는 찹쌀농사도 함께 짓기 위해 마복산에 사는 이승헌씨네 집에서 나락을 얻어와 인상이와 함께 손으로 일일이 훌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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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 볍씨
 찹쌀 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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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의 진통처럼 양파자루에 담긴 볍씨는 싹을 틔우기 위해 조금씩 몸을 불리는 진통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찬물에 넣었다가 저녁이면 물기를 빼서 따로 보관해 두기를 일주일, 드디어 몸을 불린 볍씨에서 싹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볍씨 한 톨 한 톨에서는 손톱만큼 한 희망의 싹을 내 보이고 있었지만 통합진보당의 진통은 싹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정선거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충돌로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통합진보당 진통을 아프게 지켜보면서 싹이 튼 볍씨를 모판에 옮겨 그걸 차곡차곡 쌓아 놓기를 사나흘. 손가락 마디만큼씩 뿌리와 싹을 틔운 볍씨를 미리 만들어 놓은 논 가장자리 못자리에 옮겼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가뭄에 모판을 엎어버렸습니다

모판에서 싹을 틔워 뿌리를 내밀고 있는 볍씨가 마치 사람 모양같습니다.
 모판에서 싹을 틔워 뿌리를 내밀고 있는 볍씨가 마치 사람 모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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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흘 싹을 틔운 모판을 논 못자리에 옮겼습니다. 가뭄과 잘못 선택한 모판 때문에 거의 모든 모판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사나흘 싹을 틔운 모판을 논 못자리에 옮겼습니다. 가뭄과 잘못 선택한 모판 때문에 거의 모든 모판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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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못자리에 폭과 간격을 맞춰 옮겨놓고 남은 모판이 모두 60여 개나 되었습니다. 그걸 다 논바닥에 뒤엎어버렸습니다. 애초에 2000평에 해당하는 모판을 준비했는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가뭄 때문에 도저히 산 아래 천수답에 물을 댈 자신이 없었습니다. 내가 소작을 하고 있는 천수답은 모두 네 개의 다랑이인데 그중에서 두 개의 다랑이를 포기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늘어난 농사일에 글을 써가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바다에 나가 찬거리까지 마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올해는 아이들과 글쓰기 공부하는 시간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꽉 잡혀 있었습니다. 유기농으로 밭농사 1000평에 논농사 2000평은 천성이 느려터진 내게 무리였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과신이었습니다. 귀농 16년 차. 그동안 조금씩 농사일을 늘려왔습니다. 귀농 첫해는 30여 평의 작은 텃밭으로 시작했습니다. 매년 50평, 100평, 300평, 500평, 1000평 식으로 늘려나가 급기야는 2천 평으로 늘려나갔습니다. 

올해는 욕심을 좀 부렸습니다. 작년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이 더 많이 늘어났음에도 1000평을 더 늘려 3천 평의 농사를 짓겠다고 작정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평수를 늘리면서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농사가 아니라 자급자족하겠다고 시작한 농사였지만, 통합진보당의 사태가 그렇듯이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고흥에 이사 와서는 바다에 나가 찬거리를 마련하는 동시에 오로지 농사에만 전념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농사짓는 일이 점점 힘에 부쳤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농사일에 매달리게 되면서 부터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그만큼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들이 늘어났습니다.

글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산전수전이라는 연재 타이틀을 걸어놓고 오랫동안 단 한 줄의 원고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바다에 나가 찬거리 낚시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두 개의 다랑이 논을 포기하기로 작심하고 애써 준비한 모판을 뒤엎었던 것입니다. 논바닥에 한 판 한 판 모판을 뒤엎을 때마다 가슴이 쓰렸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했습니다. 논농사를 줄이는 만큼 아이들에게 좀 더 살갑게 다가가 재미있는 글쓰기 교실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내 자신과 싸워가며 두 눈 질끈 감고 모판을 뒤엎었지만 통합진보당 내부갈등은 여전히 극에 치닫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역시 내부 갈등 속에서 한바탕 가슴 쓰린 '뒤집어 엎기'를 통해 제 자리를 찾아 갈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극심해져 가는 통합진보당의 내부 갈등처럼 '모판 뒤집기'는 가뭄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못자리에서 어린 벼가 자라지 않고 바싹 말라버린 것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새로 구입한 모판 때문이었습니다. 새로 구입한 모판은 그 바닥에 물구멍이 적게 뚫린, 육묘실에서 모판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놓고 물을 줘서 키우는 모판이었던 것입니다. 그 모판으로 논 못자리를 하기 위해서는 물을 높게 잡아야 했던 것입니다.

물을 잡기 위해 굴삭기까지 동원에 논 곳곳에 둠벙을 파놓고 모터 펌프를 이용해 물을 퍼 올렸지만 결국 가뭄 때문에 네 다랑이 중에서 세 다랑이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물을 잡기 위해 굴삭기까지 동원에 논 곳곳에 둠벙을 파놓고 모터 펌프를 이용해 물을 퍼 올렸지만 결국 가뭄 때문에 네 다랑이 중에서 세 다랑이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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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가뭄까지 겹쳤습니다. 2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굴착기까지 동원해 두둑을 치고 논 구석구석에 둠벙(웅덩이)까지 파놓았지만 가뭄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벼를 심기로 했던 두 다랑이 중에 아래 다랑이는 어느 정도 물을 잡을 수 있었지만 윗 다랑이가 문제였습니다.

아래 다랑이의 둠벙에 고인 물을 퍼 올려보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습니다. 하루 두 차례에 걸쳐 둠벙에 바닥이 드러나도록 물을 퍼 올려놓고 다음날 가보면 본래 상태로 논바닥이 말라버렸습니다. 그 사이 잠깐 비가 내렸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 다시 논바닥에 물이 말라 버렸습니다. 그렇게 열흘 가까이 물대기를 하다가 결국 윗 다랑이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무렵 공교롭게도 통합진보당은 '통합'은 고사하고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비례 대표자들 대부분이 사퇴했지만 구당권파들이 반발하고 나섰고 급기야는 검찰에 의해 중앙당사가 압수수색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민심은 점점 등을 돌렸습니다.

우리 논 사정도 절망적이었습니다. 트랙터를 몰고 다니는 논두렁 친구 최공식씨가 일손이 많아 우리 논에 써레질은 고사하고 쟁기질조차 못하고 있었고 그나마 남은 어린모는 점점 자라 이앙기로 모내기를 할 수 없을 만큼 커 버렸습니다. 다른 논에서는 이미 모내기를 다 마친 6월 중순에 접어들었기만 하늘은 여전히 구름만 오락가락할 뿐 비를 뿌리지 않았습니다.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아래 다랑이마저 포기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극심한 가뭄으로 올해 논농사를 포기하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고 있는데 때마침 우리 동네 농민회 회원인 고건씨가 구원투수처럼 찾아왔습니다. 그는 평소 유기농을 하고 있는 나를 좋게 보아주고 동네 아이들을 위해 지어 놓은 우리 집 작은 도서관을 고맙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축사에서 나온 유기농 소똥에서 쌀겨에 이르기까지 밭 거름에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구원투수의 등장, 인심에 천심까지 얻다

대학원 까지 공부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 일에 전념하고 있는 고건씨. 우리 동네 농민회원 고건씨가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올해 논농사를 포기할 뻔 했습니다. 수십마리의 소에 논농사, 작은 어선까지 보유한 고건씨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부지런한 총각입니다.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고 합니다.
 대학원 까지 공부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 일에 전념하고 있는 고건씨. 우리 동네 농민회원 고건씨가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올해 논농사를 포기할 뻔 했습니다. 수십마리의 소에 논농사, 작은 어선까지 보유한 고건씨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부지런한 총각입니다.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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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논에 물을 못 잡으셨네요이?"
"그러게요. 올해 논농사는 접어야 할 것 같네요."
"기본 식량은 하셔야죠, 포기 하시면 안 되지요."
"아적 쟁기질도 못하고 있는디요."
"아, 그건 걱정 마세요. 저도 트랙터가 있으니께 물이 어느 정도 잽히는 대로 갈아 드릴께요."
"모판이 다 타버리고, 심을 모도 장만하지 못했는디요."
"농민회에서 운영하는 육묘장이 있는디, 모는 거기서 구입하면 될 것 같은디요."
"아이구 고맙습니다. 올 농사 포기하려던 참이었는디."

그렇게 구원투수로 찾아온 고건씨의 말처럼 며칠 후 단비가 내렸고 쟁기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쟁기질을 하고 나서도 써레질 할 만큼의 논물이 잡히지 않아 한참을 방치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제법 논물이 찰 정도로 단비가 내려 써레질을 했고 사나흘 흙물을 가라앉혀 고흥 농민회 육묘장에서 모를 구입해 바로 6월 25일 모내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모내기 하던 날, 고흥군 포두면 농민회 지부장 송기환씨와 고건씨가 육묘장에서 사용하고 있던 이앙기를 끌고 왔습니다. 세 마지기도 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논에 이앙기 작업조차 쉽지 않은 구불통한 논이었는데 고맙게도 먼 걸음을 했던 것입니다.

"아이구 참, 괜히 농사짓는다고 여러 사람 고생시키네요."  
"아, 무슨 말씀을요. 도와 드려야지요."
"죄송하고 고맙고 그러네요."

지난 6월 25일 고건씨와 함께 송기환씨(고흥군 포두면 농민회지부장)가 이앙기를 몰고 손바닥만한 우리 논 모내기를 위해 먼 곳에서 달려왔습니다.
 지난 6월 25일 고건씨와 함께 송기환씨(고흥군 포두면 농민회지부장)가 이앙기를 몰고 손바닥만한 우리 논 모내기를 위해 먼 곳에서 달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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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네 다랑이의 천수답을 소작하고 있는데 가뭄 때문에 세 다랑이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모두 네 다랑이의 천수답을 소작하고 있는데 가뭄 때문에 세 다랑이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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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네 다랑이 중에 우리 식구 겨우 일 년 먹을 양식, 한 다랑이에만 모내기를 했지만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가뭄으로 천심은 잃었지만 인심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한 해 농사를 망치면 다음해 다시 시작하면 그만인데 한 번 인심을 잃게 되면 다시 인심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욕심을 줄여 생각해 보면 천심을 잃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단비가 내려줘 한 다랑이라도 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 다랑이 논을 포기하고 한 다랑이만 선택했기 때문에 그나마 하늘이 도왔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극심한 가뭄에 세 다랑이 전부 농사를 짓겠다고 욕심 부려 매달렸다면 아직도 모내기를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고 하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이니, 따지고 보면 인심과 천심을 잃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모내기를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내 준 우리 동네 젊은 총각 고건씨의 인심이 내게는 바로 천심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뒤늦은 모내기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린모가 줄지어져 심어진 논을 흡족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뭔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둠벙 옆에 설치해 놓은 모터펌프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모터펌프를 도둑질 해 갔던 것입니다. 논바닥 물이 채워지면 둠벙이 비워지기 마련이듯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겨우 모내기를 기분 좋게 마쳤더니 이번에는 둠벙 물을 퍼 올리는 모터 펌프가 사라졌던 것입니다.

가뭄에 죽어라 물대고 있는 모터펌프마저 슬쩍하다니, 가뭄에 목 타는 논바닥보다 더 가난에 목 타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려, 나보다 더 목 타는 사람이 있는 게로구나"라고 애써 여유를 부렸지만 허허로운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허허로운 웃음 끝에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둠벙 물은 무엇으로 퍼 올리지......."

모터 펌프 대신 다행히 저만치서 비 소식이 날아들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곳곳의 논바닥에 목마름을 적셔주는 장맛비가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은 대체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까요? 논바닥은 장맛비가 해결해 주겠지만 한미FTA 협상 체결 등으로 '농촌 죽이기'를 작정하고 나선 이놈의 썩어 빠진 정부에 대한 농민의 타는 목마름은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태그:#가뭄, #통합진보당 사태, #모판 갈아엎기, #모내기, #인심과 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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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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